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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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02일 주일 오전예배(사도행전 5:33-42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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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04-02 00:00 조회3,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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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33-42]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

기독교는 고난 속에서 성장해 온 생명의 종교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 가운데 크게 부흥한 반면 환난 핍박이 가장 심했습니다. 동일한 환난과 핍박 중에도 잘 감수하는 신자가 있는 반면 환난을 피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환난은 아무나 감수하는 것이 아니고 자격이 구비되어야 가능합니다. 혹자는 ‘고난 받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한가?’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한 고난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고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사도들이 심문을 당함”(29-32)

본문은 기독교 수난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장소는 유대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의회입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의 유명한 율법사, 학자, 서기관, 장로들 등 당대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회원들입니다. 피고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전했는데, 제자들의 증거는 그 자리에 모인 공회원들을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29-33).

예수를 죽인 장본인들에게 예수가 살아났다고 하고,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거나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그들의 명령과 권위를 무시한 채 오히려 회개를 촉구하니 화가 단단히 난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죽였기 때문에 제자들을 죽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2) “가말리엘의 등장”(33-39)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교법사이고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자였습니다(34). 그는 유대 유전 작성으로 유명한 힐렐의 손자이고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는 것으로 보아 그는 양심적인 학자였습니다.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나가게 하고 변호했습니다(33-34).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악인들의 발악을 하나님이 어떻게 제지시키는지 볼 수 있습니다. 가말리엘이 아니었으면 이 계획을 중단시킬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드다와 유다의 종교운동이 실패한 것을 예를 들어 사도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35-39). 가말리엘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치에 합당한 말을 했고 모든 공회원들이 수긍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가말리엘을 감동시켜 말하게 하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죽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결국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놓아주되 분풀이로 실컷 채찍질 하고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합니다(40).

하지만 사도들은 매를 맞고도 기뻐했습니다. 41절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했는데, 사도들의 기쁨은 석방의 기쁨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주를 위해 능욕 받는데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능욕 받는데 합당한 자입니까?

(3)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

①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행 9:15-16). 주님을 위한 고난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자라야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고 자격과 기회가 주어질 때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능욕 받는데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자는 고난 받을 때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의 이유는

주님 위해 받는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5:58).

그리고 주님 위해 받는 고난은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세상 역사,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근심과 고난의 반복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겨도 걱정 근심이 많습니다. 세상 고난이 고통스러운 것은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가치가 있다면 고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너무 걱정 근심 하면 안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맡기십시요. 주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맡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를 ‘주’라 부른다면 주님께 걱정 근심을 맡기십시요. 밤새 걱정해서 뭐가 달라진다면 걱정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 맡기십시요. 근심은 아무리 많이 해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근심이 있습니다. 고후 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내 믿음이 왜 이리 자라나지 않을까”, “왜 나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할까” 이런 근심은 좋은 근심입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은 너무나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롬 8:18). 주님을 위한 고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의 가치와 영광과 상급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것이 완전하고 영원한 성공입니다. 땅에서의 성공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성공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따라서 고난이 올 때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요. 피하지 마십시요.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요. 다음에 한다고 하면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우리 위해 고난을 감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면 아낌없이 감수하는 자가 되십시요.

② 주님 위해 모든 것, 생명까지 버릴 각오가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주님의 소유입니다(고전 6:20).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와 멸망과 사탄의 종의 자리에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따라서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알면서 마지못해 고난당하거나 피할 길만 있으면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조금의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참 성도는 고난 받을 각오, 순교자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 일평생 헌신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한 자가 있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이 기쁨과 감동을 주십니다. 고난 받을 각오하고 순교자의 자세로 살겠다고 결심하면 주님이 기쁘시니까 감동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자에게 영광스러운 고난의 기회도 주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데 생활의 변화가 없고 만족이 없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자기를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만족하기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기독교에 부활이 없다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고난, 수고, 헌신, 전도, 예배, 봉사, 찬송, 순종이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기독교의 힘은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만큼 피를 많이 흘린 종교가 없습니다. 진리가 진실하기 때문에 순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반동안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다 도망하고, 예수님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했습니다(29下). 그리하게 된 것은 주님의 부활을 보고 듣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루 먼저 죽으면 천국에 하루 빨리 가는 것입니다. 땅에서 100년 누린 영광이 천국에서의 하루만도 못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장차 왕 노릇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딤후 2:11). 세상 왕은 되기도 어렵고 오래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하는 왕 노릇은 영원한 것입니다(계 20:6).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 왕권이 더 커집니다. 이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주를 위해 살다가 죽는 죽음은 헛되지 않고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죽음이 됩니다.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택함 받은 자, 순교의 각오를 가진 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히 살려고 하지 마십시요. 어짜피 늙고 병들고 죽을 것입니다. 몸을 아끼지 말고 주님 위해 헌신하십시요. 영원한 영광을 위해 희생하십시요.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고난이 없으면 오히려 주님께 따져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고난의 기회를 주십니다. 목적을 주의 영광을 위해 두십시요. 삶과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를 위해 희생적인 삶, 순교적인 삶을 사십시요. 제자들은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살았습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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