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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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일 주일 오전예배(고전 15:3-10 은혜의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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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10-09 00:00 조회3,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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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3-10] 은혜의식을 가져라

참되고 진실한 성도의 표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영을 살려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천국영생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은 자는 참 신자가 아닙니다.

믿음 생활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세가지에 대해서 증거하겠습니다.

1. “은혜의식을 가져라”(3-10)

텔레비전 채널 가운데 강아지가 시청하는 채널이 있습니다. 강아지를 위한 문화가 많이 발달해서 개 목욕, 개 병원, 개 레스토랑, 개 호텔 등이 있고 심지어 유산도 물려준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고 대접합니까? 개는 배신을 모릅니다. 개는 은혜를 알고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데, 개보다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은혜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는 구속에 관한 모든 것으로, 구속할 때 거저 주시는 선물이 은혜이고, 자격이 없는데 받은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것이 믿음 생활의 우선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모르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존 칼빈의 사상을 두가지로 요약하면, “전적타락”과 “불가항력적 은총”입니다. 우리는 다 죽고 멸망 받을 존재였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자들을 구원하실 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으로 죄의 대가를 치루셔서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은 “나의 모든 행위, 모든 생각, 모든 말 가운데 죄 아닌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10上에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한 것, 그리스도를 위해 환난과 핍박을 받은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수고한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에 감사 감격한 사람이었습니다. 8上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라고 했는데, 자신은 변변치 못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9),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 3:8), “죄인 중에 괴수”(딤후 1: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수록 자기가 누군지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변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런 감격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받은 것과 건강, 가정, 직장, 지식, 성공과 실패, 질병까지도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 나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사용해주십니다.

은혜를 알려면 먼저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격이 없는데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았다는 것을 알고, 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헬라어와 라틴어에 능통하고 로마시민권을 가진 이방인 사도로 합당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그를 사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태어나기 전부터 아시고 사랑하셨습니다(갈 1:15)(엡 1:3-5).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참아주셨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도 참아주셨습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셔서 직분을 주셨습니다. 자격이 없는데, 우리들을 인정해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8下에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는데,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행 9장), 삼층천에 올라가서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고후 12:2). 성경을 배우고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조금만 나아져도 교만해지고, 게을러지고, 오만불손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시가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고,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히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님이 발걸음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은혜를 알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합니다. 은혜를 알면 항상 감사할 수 있고, 고난 중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련 중에도 은혜를 믿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요 15:5-8)

요 15:5上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했는데, 예수님과 성도는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목적은 열매입니다. 믿음생활의 목적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다른 과일나무들은 한 가지에 열매가 하나씩 맺히는데 포도나무는 한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들도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성령의 역사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요 15:8).

열매 맺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요 15:7上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했는데, 거한다는 것은 주인으로 모시고 교제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스스로 살 수 없고,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 맺는 것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가지에 붙어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살전 5:17). 열매를 맺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주님과 성도는 생명적 관계이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죄 때문에 주님과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 속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떠나 살게 되면 교회 나오는 것이 짐이 되고,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 말씀 한절만 붙들고 살면 됩니다. 주님께 붙어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3. “자기를 다스리라”(고전 9:25-27)

고전 9:25上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했고, 27上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라고 했습니다. 절제하는 이유는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절제는 “나무를 자른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나무를 전지하는 이유는 마음대로 뻗어나가는 가지를 잘라줘야 꽃과 열매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려면 절제해야 합니다. 자기의 잠재력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집중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목표를 정하고 집중할 때 잠재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가만 두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절제는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가 성공합니다. 자기를 다스리고 이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영적 성장의 최고봉이 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마지막이 절제입니다(갈 5:23). 유혹이 많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성경에 흠없이 기록된 사람이 요셉과 다니엘인데 절제한 사람들입니다. 노자는 말하기를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있는 자이고, 자기를 이기는 자는 참으로 강하다”고 했습니다. 훈련을 통해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서 캔들러는 “나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부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자기를 이기고 욕망을 이기고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한 왕이었던 징기스칸은 “나를 극복하는 순간 이미 칸이 되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 최대의 승리가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 절망적인 나, 쉽게 포기하는 나, 고집과 게으름에 타성이 된 나, 인내하지 못하는 나를 이기는 것이 승리자의 기본 자질입니다. 평생 원수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왜 실패합니까? 실패할 때 교훈이 있습니다. 실패한 후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식을 갖고 주안에 거하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는 자가 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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