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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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일 주일 오전예배(히 9:11-22 영원한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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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10-16 00:00 조회3,6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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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11-22] “영원한 속죄”

영원한 속죄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을 하면 되는데, 헌옷은 아무리 세제가 좋아도 원래대로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양잿물로 삶으면 아주 깨끗해집니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녹슬고 더러워졌을 때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한번 더러워지면 무엇으로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인간 편에서는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육신에 그대로 남고, 쌓이다가, 그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많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죄를 짓는 자는 죽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본문은 오직 한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죄는 피로써 깨끗하게 됩니다(22).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해도 알지 못하다가 최근에 생명이 피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3,500년 전에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레 17:11)(레 17:14).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대속의 종교입니다. 죄 많은 나 대신 예수님이 죽어주셨습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씻겨지고 용서받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기독교 외에는 자력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계시종교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주셨고, 예수님의 피를 통해 구원받는 대속의 종교, 피의 종교입니다.

1. “그리스도의 보혈은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13-14)(18-22)

양심으로 죽은 행실은 영혼이 죽은 가운데서 나오는 행실입니다. 죄로 인해 영혼이 죽으면 양심이 같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가 되면 양심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성도의 양심과 불신자의 양심은 다른데, 성도의 양심은 진리의 비판을 받기 때문에 죄를 미워합니다. 이것이 중생한 자의 특징입니다. 불신자는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을 모르고, 양심으로 죽은 행실이 나타나서, 그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더럽습니다. 사람은 매일 매일 죄를 짓고 삽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또는 어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잘하는 것이 죄짓는 것입니다.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나오는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사 1:18)(사 44:22)(시 103:12).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예수님의 피의 가치가 어떠한가를 알면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인정하십니다(벧전 1:18-19). 지극히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의 죄를 깨끗하게 하기에 만족스럽고 충분하기 때문에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대로 믿고 죄씻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의 피를 믿지 않는 자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생축의 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18-22).

피 뿌리는 의식을 통해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했는데, 모든 더러운 것이 피로써만 사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피를 뿌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축의 피가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20절에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라고 했는데, 언약의 피는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흘리실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마 26:28).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의 경중을 따라 소, 양, 염소와 같은 짐승을 성막 앞에서 죽였는데, 성막은 하나님의 처소를 상징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잡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생축을 데리고 성막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죄를 고하고, 생축에게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킵니다. 그리고 양을 죽일 때 범죄자는 양이 죽는 것을 바라봅니다. 양을 죽이고 그 피를 제단 앞에 뿌리고 그 양을 불에 태웁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사람이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면 범죄자는 안심하고 무거운 죄의 짐과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축이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이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법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그 이유는 제물이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생축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시되 다만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기 때문에 죄 없이 나셨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나셨으며, 예수님의 흘린 피는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에 그 효과와 능력이 무한합니다. 구약시대에 생축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는데, 하물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못하겠습니까?

이제 생축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하신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은혜이고 복음입니다.

문제는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는 지옥갈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죄는 한가지만 지어도 죽을 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배워야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용서 받는 것을 기본회개라고 합니다. 생활 가운데 지은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것을 중복회개라고 합니다. 성도는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특히 예배 드리기 전에 회개하십시요. 주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깨끗해지고 말씀 들을 때 은혜가 됩니다.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말씀을 들으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성령은 예민하시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감동하시지 않습니다. 회개만 잘해도 은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보혈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11-12)

참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우리가 직접 교통하고, 주님이 우리의 실생활에 간섭하시고 인도받고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대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장막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 피흘리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11-12). 주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성도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성도는 주님의 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10:19). 따라서 천주교의 고해성사는 잘못된 것입니다. 직접 주를 만나고 용서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낄 수 있지만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나아가면 됩니다. 자기 공로가 아니고 오직 보혈을 흘리신 주의 공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원수가 마귀입니다. 마귀는 밤낮으로 성도를 괴롭히고 송사하고 참소합니다(계 12:10). 마귀는 우리가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는 것처럼 시험합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속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마귀의 참소를 이기게 해줍니다. 예수의 피를 외치면 마귀는 도망갑니다. 오직 예수의 피로만 성도의 위로와 만족과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게 합니다”(15)

15上에 “그는 새언약의 중보니”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시키셨습니다. 중보의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첫 언약 때에”는 구약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15下에 “영원한 기업의 약속”은 성도가 받을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을 말합니다. 땅의 기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입니다(벧전 1:4).

성도는 이 기업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 이 기업을 누릴 자격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하늘의 기업을 누릴 자격을 갖추는 것이 성도가 이 땅에 거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들은 기업을 사모함으로 그것을 얻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말씀을 잘 배우고 순종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성도는 천국을 상속받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어깨 펴고 사십시요. 살면서 어렵고 힘들 때가 있는데 주님 오시면 다 해결됩니다. 역사상 가장 큰 능력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피의 능력을 생각하십시요. 회개함으로 항상 깨끗한 가운데 거하십시요. 부지런히 천국 기업을 얻기 위해 수고하고 힘쓰고 노력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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