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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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일 주일 오전예배(롬 8:12-17 종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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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11-26 00:00 조회3,4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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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2-17] “종의 영”

성경을 대할 때 좋은 말씀, 유익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생활에 적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 저자들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본문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겪게 되는 영적 침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종의 영이란”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그리스도인은 양자의 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15절에 “종의 영”을 말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하고 복된 믿음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패배와 낙심의 영인, 종의 영으로 인해 우울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육신의 만족과 쾌락과 세상 명예와 영광을 누릴까 하고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죄용서 받고 새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에게 반드시 실망과 낙심이 찾아옵니다. 자기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고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바울도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7:19-20). 그리고 우리들도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낙심이 찾아오고 반복되면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일은 정말로 잘 믿어보겠다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와 닿습니다. 겉으로는 봉사를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잘하지만 그 안에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고 기뻐하던 처음 은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체험도 있고, 이신칭의의 교리도 알고, 자기 노력으로 율법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자기도 모르게 종의 영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2. “종의 영의 상태”

종의 영의 상태에 빠지면 걱정과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종의 영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오는 올바른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알고 겁을 내는 두려움은 잘못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일꾼에 대한 무서운 감독자로 알고, 말씀을 주시고서는 잘 지키는가 팔짱 끼고 지켜보는 하나님으로 아는데, 이런 자는 자기를 책망하고 깎아 내리고 정죄하고 못살게 굽니다. 믿음 생활은 즐겁고 고상한 생활인데, 우울하고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는다!”(15上). 이미 종의 영의 상태에서 건짐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종의 영의 상태에 빠집니다. 믿음은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진리를 주신 목적은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깨달았으면 사용해야 되는데 그 좋은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항상 죄의식에 눌려서 지내는 사람, 낙심과 좌절과 실패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은 종의 영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것입니다. 성도 자신이 이런 상태를 만들고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작은 걱정을 큰 걱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3. “종의 영에서 자유하는 길”

15下에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종의 영에서 자유하는 방법입니다. 성도 안에는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양자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입니다. 성령과 성도가 연합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고전 3:16)(갈 2:20).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혼이 거듭난 사람에게 성령이 그 속에 거합니다. 성도 안에 성령, 즉 양자의 영이 거하는 증거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바”는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이 본래 죽었는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났고,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다니다가 잘 안다닐수도 있고, 옛날에 믿음이 좋았다가 믿음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일 년에 한 번만 나와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 하나님이신데,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오시고, 성자 예수님에게서 나오십니다(9). 성령이 하시는 일은 창조와 구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만물 창조를 예정하시고, 성자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성령께서 운영하십니다. 성부께서 구속을 예정하시고, 성자께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성령께서 구속을 적용하십니다. 즉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임무를 위해서 사람을 영감시키시고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은 성경을 영감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책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확장시키십니다. 성도를 보호하시고 진리 안에서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불신자로 있던 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내 힘으로 성화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주님을 닮아가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도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 순종의 생활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다가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자책하고 영적 부작용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지키지 못할 율법을 주셨습니까?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영이 거듭나고, 성령이 그 속에 거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는데,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셔서 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시기 때문에 죽으실 필요가 없는데 우리 죄를 대신하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기 때문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함받고 의롭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수 있도록 우리 속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4. 자유함을 얻은 성도의 생활

9下 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계시는지 여부입니다. 빌 2:12下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는데, 우리가 받은 구원이 너무 큰 것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성도가 온전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도는 낙심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도 안에 성령이 계심을 확실히 알고 믿는 것이 두려움을 없애는 비결입니다.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죄를 이길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도 주님 안에 있었던 성령과 똑같습니다. 기도할 때 감동하시는데,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5下-16).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 첫마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친 아버지에게 말씀 드릴 때 미사여구가 필요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죄의 유혹이 올 때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을 수 있나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후사입니다(17).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능력과 권세까지 주십니다. 성도는 새로운 신분과 약속과 영광스러운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17下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잠깐의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자는 날이 갈수록 천국 소망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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