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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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일 주일 오전예배(요 6:22-35 일하는 자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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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12-03 00:00 조회3,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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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22-35] “일하는 자의 축복”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에게 맡겨진 해야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1. “이적과 표적”

22절에 “이튿날”이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다음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신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 다음 날에도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 이 말은 “너희가 나를 찾는 목적이 표적의 참 뜻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적(異蹟), 기적(奇蹟)은 겉으로 나타나는 기이한 능력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면 표적(表迹)은 무엇입니까? 이적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적을 보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 신령한 진리, 즉 표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다면, 그 속에 표적은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주장하시는 능력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메시야,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병 고침을 받은 자는 이제부터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입니다.

표적을 발견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표적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저 “병 나서 좋다”고 하면서, 감사 조금 하다가 제 갈길로 갑니다. 이런 사람은 이적은 봤지만 표적은 발견하지 못한 자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고침받았지만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하며 사례하였고, 나머지 아홉명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한 사람만 표적을 본 것입니다. 문둥병이 나을 때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오병이어 이적의 표적”

오병이어의 이적은 역사상 없었던 굉장한 이적입니다. 특히 성인 남자만 오천명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의심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적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저 배가 고프니까 불쌍해서 먹이신 것이 이적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신 데에는 세가지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구주이십니다. 떡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그것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살리실 것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떡(물질)을 보고 살지 말고, 떡(물질)을 만드시고 주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35).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주신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따르는 자가 표적을 보고 따르는 자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당시 사람들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

썩는 양식은 얼마 못가 다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적을 보고 신기한 능력을 기이히 여겨서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교회 나오다가 말씀을 듣고 신앙이 바로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욕심으로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왜 주님을 믿고 따르는가? 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3. “썩는 양식을 하여 일하지 말라”

27上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썩는 양식이고, 잠시 있는 것으로, 이 땅에 잠시 살 동안 건강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떡(음식) 뿐 아니라 돈, 직장, 명예, 출세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원리를 압니다(알렉산더 대왕이 유언으로 관에 구멍을 뚫어 손을 내밀게 함). 이 땅에서 ‘돈을 얼마나 벌 것인가, 얼마나 출세할 것인가’에 목표를 세우는 것은 썩는 양식을 목표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때 허무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4.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27中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라고 했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한마디로 예수님이십니다(35,48,53). 예수님은 참되고 영원하신 양식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는데, 베들레헴은 떡집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일어난 일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실 생명의 떡으로 떡집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일을 하려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혼이 잘되고, 그 삶이 가치가 있게 되고, 심령에 참된 만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자 무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28).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54-56).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듯이 확실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형편없는 죄인이었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는 순간 모든 죄가 다 사라지고, 구원받아, 재림 때 다시 살리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자는 예수님과 연합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우리 생활에서 매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예수님을 매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생명과 힘이 나옵니다. 은혜가 떨어졌습니까? 십자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있습니까? 먹지 않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힘이 생깁니다.

나에게 주신 말씀과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는 중에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예수님을 발견한 여인이 동네에 들어가 “와 보라”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떡을 드시라고 할 때 예수님은 배가 부르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의 영이 살아서 전도하는 것을 보시고 배가 부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을 듣고 하나라도 순종하면 만족이 있습니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귀만 높아지게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인줄 믿고 주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전도, 교회 봉사, 가르치는 일을 가치 있는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줄 믿고 사명감을 갖고 주를 위해서 하면 주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를 생업(生業)이라고 합니다.

의무감에 하는 일이기 때문에 원망 불평이 많고, 힘들고 따분하고 괴롭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감사함으로 해야 하고 내가 선택한 일이면 즐기면서 해야 합니다. 그 일이 소질과 재능에 맞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직업(職業)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인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면 천직(天職)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생업입니까, 직업입니까, 천직입니까?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면 그만둬야 합니다.

왜 삶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믿음으로 일하지 않고, 영적침체에 빠지니까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일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니까 주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믿음으로 하면 성직(聖職)이 되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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