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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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일 주일 오전예배(에베소서 4:30-32 용서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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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7-12-10 00:00 조회3,5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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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30-32] “용서와 사랑”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위로는 하나님 사랑, 부모님 사랑, 윗사람을 존경하고, 옆으로는 형제, 자매, 친구, 동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 속에 임할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동시에 두려움을 없게 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요,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뿌리는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중심이 사랑입니다. 성도는 사랑하기 위해서 새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또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빼면 생명 없는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의 중심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사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가 우리 삶에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성도가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입니다(30上).

1. “용서의 이유”(30-31)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형제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나옵니다. 임금은 그 빚진 자에게 모든 소유와 몸과 가족을 다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로 명령합니다. 빚진 자는 엎드려 절하면서 참아주시면 다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모든 빚을 탕감해 줍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 많은 빚을 탕감받은 자는 죄용서 받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가 기뻐하며 나오는 길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서는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방금 빚을 탕감받은 자와 동일한 모습으로 엎드려서 참아주면 갚겠다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빚을 갚게 하려고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은 60만 분의 1차이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일만 달란트는 6조 정도 되고, 백 데나리온은 1천만원 정도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아 놓고서 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은 것은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 삶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일만 달란트보다 더 큰 죄를 사함받았는데, 60만 분의 1밖에 안되는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용서하라고 했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원리입니다.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와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혹시 형제가 잘못을 회개하지 않더라고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형제가 죄 가운데 있으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회개하도록 기도해줘야 합니다.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용서받은 자와 용서하는 자 모두를 자유하게 만듭니다. 임금이 악한 종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영적인 감옥에 갇힌 것처럼 심령이 답답하고 편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잘 안되고, 하나님과 교통이 잘 안되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면 하나님과 형제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 남을 미워하다가 무덤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삶은 비극적이고 패배자의 삶입니다. 용서와 사랑이 승리자의 삶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미워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기가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모기 한 마리 잡겠다고 온 집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황폐해지고,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면 남도 자유하고 자기도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③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이루게 합니다. 용서는 예수님을 본받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이루는 첫째 조건이 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첫째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인데 3下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의미가 없고, 큰 능력과 체험이 있고, 방언을 말해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5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것이 능력입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용서 받을 조건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용서하십시요.

그런데 이단도 사랑해야 합니까? 이단은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이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딛 3:10-11). 잘못된 것을 옳다고 우깁니다. 이단은 멀리하되 그 영혼을 위해서, 회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의 삶을 살려면 먼저 자기 속의 악독을 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31). 옛사람의 성품을 한마디로 하면 악독입니다. 사람을 악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악독입니다. 악독은 노함과 분냄과 떠는 것과 훼방하는 것과 모든 악의로 나타납니다. 성도는 무엇을 보던지 항상 선하게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어도 우리의 깊은 곳에 옛사람의 성품이 남아 있는데, 이것을 상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반대로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악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좁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사랑 없음을 스스로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입었는지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 “용서의 적극적 방법”(32)

① 서로 인자하게 해야 합니다. 인자는 친절과 호의를 말합니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이해심, 남의 고통과 슬픔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 주위의 형제 중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보고 내가 당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실수하고 어려운 일 당할 때 내가 당하는 것처럼 이해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책망보다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에게 손해 주는 악한 자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문제와 고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는 거의 없고, 말과 행동에 실수나 습관화 된 것이 많습니다. 남이 실수 할 때 이해해주고, 우리 자신의 실수나 습관화 된 것을 고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③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남의 잘못을 덮어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줘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을 들춰내면 안되고,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끝까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 안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이 아무리 커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의 실수와 죄를 용서하십시요.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면 평생 불행하게 살게 되고, 자기에게 분노를 품게 되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며, 마귀에게 이용당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용서하고, 잘못과 실수가 있으면 회개하고 자유하십시요. 자기의 감정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과 용서의 사랑을 의지하십시요. 자기를 용서한 후에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 못한 사람이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모두를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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