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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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일 주일 오전예배(계 3:7-13 적은 능력으로 닫힌 문을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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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방교회1
작성일18-01-08 00:00 조회3,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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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7-13] “적은 능력으로 닫힌 문을 열라”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편지 내용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받은 교회였습니다.

1. “예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심”

본문에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① “거룩하고 진실하사”라고 했는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을 거룩하고 진실한 분으로 모셨다는 말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거룩은 깨끗하고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룩해질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원래 거룩한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거룩의 표준은 성경말씀입니다. 성경대로 살면 완전해지고 깨끗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표준과 목표는 알아도 그것을 이룰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기도할 때 성령께서 능력을 주심으로 말씀대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예수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룩한 분을 마음에 모셨기에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거룩을 계속 유지하고,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가 잘 안됩니다. 늘 생각이 있지만 육신과 마귀가 방해합니다.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②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리스도 왕국의 주권자이십니다. 열쇠는 권세를 말합니다.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세상 모든 만사를 예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고집을 꺽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고집은 거룩한 고집인데, 합리적이고 의롭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 의지도 완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과 모든 우연도 주장하십니다(마 13:44-밭에 숨겨진 보화 발견)(룻 2:3-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름). 세상에 우연히 일어난 일 같은 일들은 사실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성도가 믿음을 가진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인간은 전적무능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깨달은 사람은 만사를 놓고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있을 때 자기 권력으로 동족을 구원하려다가 이집트 사람 때려 죽이고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는 가운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로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짐승이 살아있는 채로는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릴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이 문을 열어주셔야 함”

주님이 문을 열면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문을 열어주실 때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간지 70년 만에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1,900년 후에 독립하게 하셨습니다. 나라가 사라지고 1,900년 후에 다시 선다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앞에 열리지 않은 문들이 많습니다. 진학의 문, 직업의 문, 결혼 문, 자녀 문, 사업 문, 건강 문들이 열려야 합니다. 이 모든 문의 열쇠를 주님이 쥐고 계십니다. 문이 열리지 않을 때 열쇠를 쥐고 계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당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열쇠가 운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의 열쇠를 주님이 가지셨다는 것은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을 열기 전에 반드시 열어야 되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이 열려야 합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두가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8上).

① 첫째는 하늘문, 즉 기도문입니다(계 4:1). 이 문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늘문이 열리게 되니까 신령한 세계와 인간 역사의 미래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미래문을 열어주시니까 요한이 미래를 다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0:9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신령한 꼴을 얻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교통할 때 양이 꼴을 얻는 것처럼 만족을 얻습니다. 신자에게는 영적인 문, 하늘문이 열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만, 참고 기도하면 “여기가 좋습니다”하게 되는데, 하늘문이 열린 것입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기도가 술술 잘되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자기 영혼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다른 닫힌 문들도 열립니다. 그리고 다른 문들이 안 열려도 걱정이 없습니다. 심령에 만족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기도의 문이 닫히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심령이 답답하고 감사가 사라집니다. 육신적으로 잘 되고, 좋은 환경에 있어도 영적 평강이 없고 심령이 곤고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교통하면 일이 잘 안되고, 홀로 단칸방에 있어도 감사하고 만족하게 됩니다. 환난과 궁핍 중에서도 가치가 있고 즐겁습니다(단 6:16-다니엘 사자굴)(행 7:55-스데반 순교)(행 16:25-바울 실라 옥중 찬송).

둘째는 구원에 이르는 문, 즉 전도문입니다(골 4:3). 교회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서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고인 물에 생수가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고인 물에 생수가 들어와야 물고기가 힘을 얻습니다. 전도가 안돼서 우리끼리만 있으면 힘이 없습니다.

전도문이 열리면 기쁘고, 찬송이 커지고, 같이 기도하게 되고, 만족이 있습니다. 전도문이 열려야 성도가 살고, 교회가 삽니다. 교회에열정과 생명력이 없어지면 즐거움이 없습니다. 교회에 하늘문과 구원의 문, 즉 기도문과 전도문이 열리면 만족하고,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3.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을 열어주셨을까요?

8下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① 적은 능력은 인간에게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인간에게는 적은 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다 기울여서 감사하면서 주님을 위해 힘써 사용하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적은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이 힘을 써서 말씀을 지키고 예수를 배반하지 않을 때 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힘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 적은 힘만 제대로 쓰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능력이 커집니다. 내 능력이 크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능력이 적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내 능력이 아무리 적어도 부족한 것을 다 채워주십니다. 능력이 적다고 낙심, 절망하면 안됩니다.

내가 가진 적은 능력을 사용해서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십니다(고전 1:27-28).

②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는데, 고난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니까 하늘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내 능력이 크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은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적은 능력을 쓰면서 해야 합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면서 기도하면 안 열립니다. 자기 힘을 주님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 육신을 위해서 쓰면 피곤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일은 하면 할수록 힘이 더 붙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며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수를 물리쳐 주시고(9), 시험을 면케 하시며(10), 면류관을 주시고(11), 교회의 요긴한 존재로 세워주시며(12上),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게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12下). 적은 능력으로 닫힌 문을 여는 우리 모두가 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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