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181125 주일오전예배(민 11:1-9 / 진노 중의 긍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8-12-01 13:11 조회3,692회 댓글0건

본문

[민수기 11:1-9] “진노 중의 긍휼

본문은 원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원망은 자신이 무엇인가 기대한 만큼 되지 않을 때의 감정의 표현으로서 가장 큰 죄는 아니지만, 가장 많이 범하는 죄 중에 하나입니다. 원망을 하면 마음이 강퍅해지고, 희망이 꺾어지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을 가난하고 병들게 만듭니다.

모든 원망은 결국 만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원망죄를 심각하게 다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네가지의 죄(우상숭배, 간음, 하나님 시험, 원망)로 인해서 광야에서 쓰러졌는데, 광야생활 중에 가장 많이 지은 죄가 원망죄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함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진행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1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불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반복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멸망시키시지 않고 진 끝만 사르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징계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원망죄를 짓습니다(4). 원망하는 것이 습관화 된 것입니다.

4섞어 사는 무리가 나오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같이 따라 나온 중다한 잡족들입니다(12:38).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서, 그저 가나안 땅을 얻을 욕심으로 따라 나온 것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이적을 목격했으나 믿음이 없으니 불평한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로부터 원망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의 원망을 배운 것입니다. 원망은 감정이 이입됩니다. 따라서 불평하는 말은 점점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만이라도 원망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자체가 전도이고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확실한대도 원망을 했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면서도 원망했습니다. 기도해도 될 것을 기도하지 않고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 아래서도 원망했습니다. 어느 집단이든 원망이 있기 마련인데, 원망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원망의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면 오히려 살기 힘듭니다. 과거에 잘한 것, 잘못한 것 다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3:13). 잘한 것을 기억하면 교만하기 쉽고, 잘못한 것을 기억하면 낙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듣고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가지 망각죄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러한 죽음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주셔서 자유하게 됐습니다.

홍해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올 때 홍해바다를 갈라주셔서 지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은혜를 기억했다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우상화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라면서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들을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오늘의 은혜의 감격을 놓쳐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조금 힘들다고 애굽에서 고통과 억압 가운데 가끔 얻어먹었던 것을 그리워했습니다(5).

그러면서 하늘의 만나에 대해 싫증을 냈습니다.

6절에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음식인데 영양소가 없겠습니까? 만나만 먹어도 영양소가 다 충족되고, 힘을 내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양 보충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나가 처음 내려올 때에는 감사하면서 좋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망은 탐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욕심에는 끝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는 자유가 없었고, 내일이 없는 삶이었고, 하나님께 예배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잊어야할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않으니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허무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노력의 결과가 사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죄로 인한 사망의 형벌을 두려워하며 살던 자가 생명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에 원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땅에서의 성공,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천국에 가는 자들입니다. 뭐가 없다고 아쉬워 할 것 없고, 있다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현재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을 잊어버렸습니다. 축복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처음 사랑 받을 때는 감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하게 생각합니다(29:21).

만나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양식이 떨어져 불평할 때 하나님이 친히 만나를 주셨습니다. 처음 만나를 먹을 때 꿀 섞은 과자와 같이 맛있다고 했는데(16:31), 나중에는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했습니다(21:5). 감사가 떨어지니까 입맛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해주십니다.

헬렌 켈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자였지만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특별한 3일을 살아 보라고 했는데, 1일째는 볼 수 없고, 2일 째는 듣지 못하고, 3일 째는 말하지 못한다면, 감사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부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질병도, 시련도 믿음 지키기에 충분하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미래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하는 순간에도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과정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만 집착하고, 약속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어버렸습니다.

호세아 6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했는데, 가장 좋은 것은 나중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이적을 베푸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가 먼저 나온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였습니다(2:10).

이 땅에서 잘 살아보려고 돈도 벌고, 집도 사지만, 가장 좋은 곳은 천국입니다. 아무리 잘 짓고, 아름답게 꾸며도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매일 천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만 집중하면 원망이 나오고, 웃음과 감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지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끝까지 원망하다가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됐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답답해도 과거의 은혜를 생각하고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어려움 중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자는 원망보다 감사의 찬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