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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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 주일오전예배(요 10:1-15 / 예수님은 우리의 무엇이 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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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8-12-20 16:45 조회3,605회 댓글0건

본문

[요한복음 10:1-15] “예수님은 우리의 무엇이 되시는가

본문은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말씀하는데, 특히, 예수님이 우리의 무엇이 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라고 말씀하는데, 요한복음에만 2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강한 의미의 전달로, 집중해서 잘 듣고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풍습을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옛적부터 목축업이 생활수단이었습니다. 양을 기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양의 우리와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내가 우리의 문이요,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문이 되신다.

구원(구속)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 사함 받아 구원 받고, 영생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천국에 가는 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 즉 그리스도의 양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데로 넘어가서 양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로서, 성경은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내에 자유주의가 들어와서 이종교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누구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 절도요 강도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유교의 공자, 통일교의 문선명, 전도관의 박태선은 모두 죽었고, 무덤이 있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도 얼마 있다가 죽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부활하셨고 무덤이 없으십니다. 인류 역사상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영적인 세계(구속의 세계)의 문이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십니다. 문을 통과해야 우리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실제로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과 깊이 사귈 때 성도의 심령이 만족하고 평안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구원의 확신 뿐 아니라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만족이 있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소망이 일어나고, 심령에 만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한 후에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양이 꼴을 먹은 것처럼 심령이 배부르게 됩니다. 이것이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밀마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이런 영적인 만족이 없으면 세상 것을 추구하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실제로 기도해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 안에 들어갈 때 만족이 있고 나와서 순종할 때 만족이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신다.

본문에 선한 목자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11, 14). 선한 목자의 가장 큰 특징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재산으로 생각해서 자기 마음대로 사고, 팔고, 죽이고, 살리는 목자가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너무 사랑해서 때로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으로 대하셨습니까?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십니다(3). 각각 불러내신다는 것은 개인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이 많아도 한 마리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아시고 이름을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한번만 부르시지 않고, 여러번, 수십번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항상 앞서 인도하십니다(4). 목자가 양을 개별적으로 다 불러 모은 다음에 앞서 인도하면 양들은 줄줄이 그 뒤를 따릅니다. 지도자는 앞장 서서 가야 합니다. 지도자 본인은 가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가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먼저 모범을 보이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원수를 사랑하시면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먼저 가르치시고 앞서가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도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며 그를 본받아야 합니다.

목자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험한 산악과 골짜기도 따라가기만 하면 주님이 보호해 주시고, 궁극적으로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23:4).

양의 영적 생명을 풍성케 하길 원합니다(10). 선한 목자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양을 좋은 꼴로 배부르게 먹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디서 풀을 먹이고 물을 먹이고 쉬게 할까 하는 것을 고민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길 원합니다.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풍성한 꼴을 먹으며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자기 가고 싶은데로 가니까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고 기도하며 말씀을 순종하며 나아가면 풍성한 꼴을 먹이시고 심령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세상적으로 돈 많이 벌고 성공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천억이 있어도 더 벌고 싶은 것이 육신의 욕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심령에 만족을 주시면 돈 없어도 만족하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양과 함께 하십니다(12-13). 선한 목자는 양을 맹수와 도적과 같은 위험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자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양이 병이 들었을 때 치료해 줍니다. 양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 형편, 지위에 있던지 함께 해주십니다.

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14-15). 안다는 것은 지식뿐 아니라 깊은 영적 관계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성도의 연합관계를 의미합니다.

생활 중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하며 괴로워하고, 외로워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기 양을 다 아십니다. 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목자는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양보다 양에 대해서 더 잘 압니다. 이것을 믿을 때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유익이 되겠는지를 잘 아십니다.

15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는데,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가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길 때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문이 되시고,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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