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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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 수요예배 설교(마 27:27-44 / 예수님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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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9-04-10 16:25 조회3,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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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파일 : https://youtu.be/JoSnG1AaP_k 

설교 음성 파일 : https://files.mycloud.com/home.php?brand=webfiles&seuuid=668e078764ee415ffd61b21d30864b27&name=190410_1939


마태복음 27:27-44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이 붙잡혀서 여러차례 심문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셨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봤지만 죄없음을 밝히 안다. 그러나 여론에 못이겨 예수님을 못박으라 내어주고 바라바를 풀어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많은 채찍질을 당하게 된다.
채찍질은 회초리로 몇번 때리는 것이 아니고 채찍 형벌이다. 무섭고 큰 고통의 형벌이다. 옷을 벗기고 손을 결박한 후에 가죽 채찍으로 때리는데 채찍 중간에 뼈나 쇠붙이를 붙여놔서 살갗이 찢기고 피가 튀는 채찍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번도 맞아보지 않은 채찍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에 채찍에 맞으시면서 무서운 고통을 당하셨다.
27-28절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군병들이 총독의 관정안으로 끌고 갔다. 군인들을 다 불러모으고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희롱하고 놀렸다.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다. 홍포는 왕의 옷으로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지만 비웃고 조롱하기 위해서 홍포를 입혔다. 
29절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가시관으로 왕관을 씌웠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다. 손에는 갈대를 들려주었다. 과거에 왕은 손에 홀을 들어서 지시하고 명령했다. 왕처럼 꾸며놓고 그 앞에서 무릎꿇고 희롱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놀렸다. 참으로 상상할수 없는 수치와 멸시를 당하셨다. 
30-31절 얼굴에 침을 뱉었다. 어떤 사람들은 갈대를 빼앗아 주님을 때렸다. 이 장면이 어떤 모습 같은가?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 쌓여서 주님 가운데 세워놓고 빙 둘러선 사람들이 욕하고 때리고 침뱉으며 희롱한다. 왕따 당하는 모습이다. 주님의 이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창피하고 고통스럽고 비참한 생각이 들겠나?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는 사람들 참을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해서 죽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무서운 일을 주님께서 겪으셨다.
우리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으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없어야하지만 혹시 주위에서 이런 힘든 일 겪으실때 주님 생각을 해봐라. 주님도 나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셨구나. 이런 멸시 천대를 당하셨구나. 이런 분노심과 수치심과 죽고싶은 생각이 드는데 주님도 이런 마음이 드셨겠구나? 주님 마음을 헤아리면 위로 받고 견딜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정도의 멸시 천대 받지 않고 산다. 침 뱉음 당하지 않고 갈대로 맞는 일도 당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빙 둘러 서서 모욕과 창피를 주는 일 겪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대신 이런 일을 겪으셨다. 
희롱당하고 옷벗김을 당하고 멸시 천대 당한후에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때 주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울면서 소리지르면서 억울하다고 복수하겠다고 했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벧전 2:22-23 주님은 욕을 들으면서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면서 위협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겼다. 자신을 향해 채찍질하고 침을 뱉으며 조롱하는 자들에게 어떤 나쁜 감정도 갖지 않으셨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셨다. 억울한 마음 갖지 않고 복수심을 갖지 않으셨다. 하나님께 다 맡기셨다. 주님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되는 일만 담당하셨다.
벧전 2:24 자신이 가야할 길 가시고 해야될 일 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이 이렇게 고난 받으시고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시고 사명을 잘 감당하셨기에 주님의 희생이 위대하신 것이다. 주님이 중간에 포기하셨다면 구속사역을 완성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주님은 참음으로 모든 것을 다 이기셨다. 고난을 이기셨다. 
사 53장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설명한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것이 주님의 고난의 이유요 목적이다. 주님의 고난은 이와같이 대속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과 형벌을 대신해서 받아주신 것이다. 주님은 조용히 말없이 이 모든 일을 참고 견디면서 승리하셨다.
31절 희롱을 다한 후에 주님이 입고 있던 옷을 다시 입혀서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갔다. 주님이 자신이 박힐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아주 큰 사형틀이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질때 로마 군병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지고 가게 한다.
32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고난을 주님이 다 받으셔야 하는데 왜 구레네 사람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을까? 예수님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시몬도 나눈 것이 아닌가? 옳지 않다. 주님은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으셨다. 우리를 위해 치뤄야할 대가를 다 치루셨다. 
33-34절 골고다 언덕까지 도달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직전에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고 했다. 맨살에 못을 박으면 그 고통을 참을수 없기 때문에 마취제 역할을 하는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거절하셨다. 고난을 온전하게 다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35절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쓰여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러나 참으로 중대한 사건이다. 드디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생살에 큰 못을 박았으니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겠나? 손톱에 가시 하나 박혀도 참기 힘든데 큰 못에 박혔으니 극도의 고통을 당하셨다.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 잘못없이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피흘려 죽어가실때 그 밑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35절 십자가 밑에서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가지고 서로 제비를 뽑는다. 어이없고 한심한 모습이 벌어진다. 이권 다툼과 욕심 챙기기에 급급하다. 로마 군인들은 늘 이런 일을 해왔던것 같다.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서는 그 밑에서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옷을 서로 나누겠다고 자기가 가지겠다고 밑에서 제비뽑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셨겠는가? 
주님은 죄인을 위해 고난당하시고 피흘려 죽어가시는데 철없는 사람들이 장난치고 있다. 욕심을 부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묵상해야 한다. 그 고난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지 깨달아 알아야 한다. 육체적으로도 말할수 없는 큰 고난을 당하셨고 정신적으로도 말할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로마군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이골이 나서 양심과 마음이 무뎌졌다. 감각이 둔해졌다. 악한 일도 자꾸 하면 악에 대해서 둔해진다. 사람 죽이는 일도 자꾸 하면 사람 죽이는 일도 겁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죄악에 익숙해지면 큰 일 난다. 죄를 자꾸 짓다보면 담대해진다. 양심이 깨어 있어야 한다. 로마 군인들처럼 무뎌지면 안된다.
37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높이 세워두고 그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붙였다. 정치적으로는 로마황제를 반역하는 반역자라는 의미로 붙여놓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다. 진리의 왕 신령한 왕이시다. 빌라도가 이 패를 붙일때에는 배신자라는 의미로 놀리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 패를 통해서 예수님이 참 왕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이 없었으면 예수님이 죄인처럼 죽으실뻔 했지만 유대인의 왕 이라는 패로 인해 온전하에 죄인을 구원하시는 왕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38절 주님이 두 강도사이 가운데에 못박히셨다. 예수님도 강도와 같은 흉악범으로 생각하도록 한 것이다. 이 두 강도는 평생 죄만 짓고 악을 행하다가 십자가 형을 받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두 강도 중 한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비방하고 욕하고 저주한다. 죽는 순간까지 죄를 짓는다. 주님이 구원사역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고 멸망길로 간다.
다른 한편 강도는 주님을 믿게 된다. 예수님은 의인이라고,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이 없다고 증거했다. 그리고 구원받아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누린다. 
둘다 죄인이고 강도이고 악을 행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천국가고 한 사람은 예수님 믿지 않고 죄만 짓다가 지옥으로 간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복된 죽음과 저주받은 죽음이 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죽음이 있고 멸망받아 지옥에 가는 죽음이 있다.
잘 살아야 잘 죽을수 있다. 예수님을 믿어야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39-44절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흘리고 고통당하시고 죽어갈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한다. 머리를 흔들며 욕을 하고,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죽는자여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신을 구원하여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며 조롱했다. 
44절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욕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하고 조롱했다.
42절에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부수고 내려오셨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겠는가? 이들은 믿고 싶어서 말한 것이 아니다. 믿으려도 진리를 찾은 것이 아니다. 주님을 조롱하며 비난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시험이며 미혹이다. 이런데 넘어지면 안된다. 나와 함께 놀러가면 다음부터 교회 나가겠다.. 나와 함께 제사 지내는데 참여하면 나도 한번 교회에 나가겠다.. 나와 함께 술먹으면 같이 교회에 나가겠다..
이것은 다 미혹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이적을 베풀어주지 않아서 믿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부족해서 안 믿은 것이 아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지만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동안 부활의 증거를 직접 보여주셨다. 
어떤 사람은 죽은 자가 살아나면 믿겠다고 한다. 진짜 믿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똑같은 장소에서 보고 믿은 자들이 있다.
54절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부수고 내려오셨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믿었다.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일곱마디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이분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진리 복음을 듣고 믿어야 바로 믿는다. 이적만 바라보면 이적 없으면 달아난다. 먹을 것만 바라보면 먹을 것 주지 않으면 다 달아난다. 참으로 주님을 바로 깨닫고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39-44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님을 멸시 조롱하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54절의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
주님을 바로 깨닫고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마음이 착해서, 머리가 좋아서 믿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믿게 하셨기에 믿게 된 것이다.
주님의 고난..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 당하고 갈대로 머리를 맞고 희롱과 조롱을 당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6시간 고통당하사시고 죽임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를 잘못 이해하고 오해해서 믿음없는 자 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 볼수록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믿음을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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