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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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주일오전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장 26-29절/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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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9-11-10 17:29 조회1,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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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GEkdLgDLzRs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만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일군을 부르실 때는 완벽하고 유능한 사람을 불러서 쓰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못합니다. 나는 안 됩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먼저 알 것은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세워서 일하시고 모세가 죽은 후에는 여호수아를 세워서 일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사사들을 세워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12제자를 세워서 일하셨습니다.
오늘날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기 원하십니다. 왜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일하실까요. 천사를 통해서 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지혜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사람은 죄인입니다. 연약합니다. 지혜나 능력도 없습니다. 허물도 많고 실수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하나는 연약하기 때문에 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5:1-2에 보면 사람들 가운데서 대제사장을 임명한 것은 그 자신도 연약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식한 사람도 미혹된 자들도 능히 용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죄인이고 연약하여 넘어질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복입니다. 영광입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세워서 일하시는 것은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까?

1.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회사나 학교나 병원이나 기업체 등 세상 단체에서 사람을 뽑아 쓸 때는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약한 자들을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부르신다는 말은 예수 믿도록 부르신다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르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7-28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 연약한 자들, 비천한 자들, 멸시받는 지들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로 부르셨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보십시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지극히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우리와 같이 약점이 많고 실수투성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내세울 것도 하나 없고, 자랑할 것도 전혀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들에서 소를 몰고 농사하다가 부름을 받았고, 아모스 선지자는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혈기가 많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성격이 불같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소심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겁이 많고,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서 전도를 겁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약하게 만들어서 쓰셨습니다. 구약의 모세가 그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모든 학문을 배우고 자신 만만하게 덤비는 그 강한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세가 광야로 보내 40년 동안 낮아지고 깨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80세가 되어 ‘나 같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때,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불러서 큰 일군으로 사용했습니다.
신약의 바울도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은 혈통으로나, 지위로나, 학벌로나, 율법의 의로나, 열정으로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남들보다 좋은 조건이 많은 바울, 힘과 능력이 뛰어났던 강한 바울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시로 인하여 약해진 바울을 하나님은 귀하게 쓰셨습니다. 이처럼 강한 사람도 일부러 약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지식이 없으면 지식을 주면 되고, 능력이 없으면 능력을 주면 되고, 필요하다면 기적이라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은 그냥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2. 약한 자를 부르신 이유

첫째, 하나님께서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사람들을 쓰시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 1:9).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식을 의지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힘을 의지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이 비록 강하다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비록 약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그는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를 부르지 않는 것은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높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이 배웠는데, 나는 부자인데, 나는 똑똑한데, 나는 잘났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님이 쓰시기가 아주 어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자기를 부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은 내 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일 하는 방법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일군, 가장 위대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천하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지혜 있는 자, 강한 자, 있는 자들이 다 부끄럽게 되고 자랑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들이 지혜 있는 자를 이기고, 연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을 이기고, 천한 자들이 세상의 높은 자들을 이겼지만 그들 역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은혜이며 영광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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