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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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주일오전예배 설교(말라기 1장 1-5절/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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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9-13 15:20 조회1,4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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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bTPL4XhcL2Q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나에 대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항상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의 과정이다’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 간혹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신다는 생각이 들고,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이 또 벌주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으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계십니까?
부부간에 가장 무서운 일은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우리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왜 불안해집니까? 왜 우리가 낙심하게 됩니까? 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고 약해집니까?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고 담대하지 못합니까? 왜 자주자주 넘어집니까? 우리가 왜 사람들을 의식하고 눈치를 봅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 밴턴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영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이 없으면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면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깨어지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고 우리의 자신감과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처럼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면 피합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면서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어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반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무지와 불신앙을 드러낸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살면서 그들의 부귀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바벨론 사람들의 대단한 문화와 부유한 삶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와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나라인 이스라엘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나 가난합니다. 자주자주 외부의 침략을 받습니다. 옛날부터 계속해서 고난만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축복을 해줘야 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왜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많이 당하게 하시고, 우리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반문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면서 신앙이 타락하고,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식어집니다. 따라서 입술에서는 원망과 불평만 쏟아져 나옵니다.
말라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니 하나님과 관계가 다 틀어집니다. 하나님 공경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제사가 무너집니다. 더러운 것, 병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를 번거롭게 여기고 귀찮게 여겼습니다. 또한 가정이 무너집니다. 학대가 심해지고 이혼이 많아졌습니다.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서 떠나고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서 떠납니다. 십일조가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내려 하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말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에게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사랑을 의심하는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합니다. 한번 택한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때로는 연약함 때문에 넘어지고 비틀거리고 방황하는 우리이지만 그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8:35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도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람이 공기 속에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에 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5장 6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번 말씀을 어겼다고 내버리거나 한두 가지 잘못했다고 지옥에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할 때는 기뻐하시면서 사랑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할 때는 안타까워하시면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포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 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자녀이기에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1. 선택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했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이고 조건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절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야곱을 사랑했다는 말은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4:37에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신명기 7:7-8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선택의 이유가 사랑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하신 것에 나타나 있습니다.
3절에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에서를 미워하였다는 말은 에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구원하지 않고, 언약을 맺지도 않고, 은혜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고 여러 가지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은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느냐?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택자 에서는 무너뜨림을 당하여 황폐해졌습니다. 그의 산업은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이 다시 쌓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헐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불택자 에서가 한 때는 더 잘사는 것 같고 번성하는 것 같지만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에서의 후손은 망하고,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강대국이던 애굽도 망하고, 바벨론도 망하고, 앗수르도 망하고, 불레셋도 망하고 다 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 일시적으로 볼 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잘되는 것 같고 앞서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복을 주시고 잘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선택받은 백성임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사랑한 증거입니다.

2.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구원하신 것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려면 독생자를 보내 죄에서 나를 구원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10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3:16에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로마서 5:8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게 한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믿으십니까? 그 십자가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모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깁니다.

3.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많이 주시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게 한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70년 간 포로 생활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는 죄를 지었으므로 그들을 회개시켜서 복을 주시려고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철없는 자녀들은 부모님이 야단치고 책망하면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도 주시고 징계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징계하지 않는 것은 참 아들로 대우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내버려 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동성연애를 하고, 죄를 지어도 내버려 두십니다.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다른 어떤 나라도 이렇게 징계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가 죄가 가득 차면 심판하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릴 자로 여기지 않고 귀한 자녀로 대우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기업을 이어갈 자로 만드시려고 연단시키고 훈련시십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어렵고 힘든 때입니다. 비참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드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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