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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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주일오전예배 설교(룻기 1장 6-14절/나오미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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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2-14 17:03 조회7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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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JvzSuioHLIQ

지난 주에 우리는 나오미의 가정의 실패와 몰락을 보았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재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10년 만에 모든 것을 잃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밑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나오미는 이 바닥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1. 나오미가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남
6절에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중요한 것은 ‘듣고’ ‘일어나’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섰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내 삶을 고치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유익이 없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려고 결심한 것은 양식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이 결심이 그의 삶을 바꿉니다. 그 가정을 회복시키고 복되게 만듭니다.
나오미는 복음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다시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일어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일어나 돌아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오미가 떠났던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모든 것을 잃고 실패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이 나오미라면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나, 죽으면 죽었지 나는 못 돌아간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체면이나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그것만이 살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다 허비했습니다. 굶어 죽을 형편이 되자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얼마나 민망하고 염치없고 갈등했겠습니까? ‘내가 큰 소리치고 나왔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내 몫의 재산을 다 가지고 와서 없애버렸는데 무슨 염치로 돌아갈 수 있는가? 내가 거지꼴을 하고 돌아가면 아버지는 뭐라고 하실까? 형님과 가족들과 이웃들은 뭐라고 하실까? 창피하고 염치없고 부끄럽고... 나는 죽어도 못 간다.’ 이런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결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게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호세아 6:1-2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만이 우리를 고칠 수 있고, 우리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되려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려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불행은 끝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2.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 함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며느리가 함께 동행 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있던 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와 함께 길을 갑니다. 그러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8절에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본문에 자세히 설명해 놓지 않았지만 나오미의 마음을 3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며느리의 앞날을 염려하는 인간적 배려
나오미는 며느리의 생각이 어떤지도 모르고 무조건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부귀영화를 얻는 길이 아닙니다.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앞날에 고난이 많을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모압 여인이기에 베들레헴에 가면 차별을 받을 것입니다. 모압 여인이 유대인 속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권하였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며느리들을 위하는 인간적인 마음에서 권면한 것입니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새로운 남편을 만나 행복한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입을 맞추며 작별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이 소리를 높여 울면서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법에 대해서 말합니다(11-13절). 나오미 자신은 이제 자식을 낳을 소망도 없고 또 남편을 얻어 자식을 낳는다 할지라도 어떻게 너희들이 그것을 기다리며 결혼하지 않고 기다리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며느리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며느리들을 편안하게 놓아주는 것입니다. 며느리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마지막 배려입니다. 나오미가 비록 모압에 살면서 고난을 겪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인격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신앙이 이렇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자기 곁에는 아무도 없는데 두 며느리를 돌아가라고 합니다. 며느리들이라도 자기 곁에 있어야 도움이 될 텐데 나오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며느리를 배려합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나오미의 이 마음이 참 귀합니다. 나오미가 거듭해서 설득하자 오르바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 나오미는 룻을 돌려보내기 위해 또 애를 씁니다. 이 가정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희망입니다.
또 나오미는 며느리의 선한 것을 기억합니다. 8절에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죽은 자들이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가리킵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한 말입니다. ‘너희는 참 착한 며느리다. 너희는 죽은 우리 가족들을 선하게 대했고 또 나에게도 선하게 대했다’ 그런 뜻입니다. 함께 살면서 왜 섭섭한 것이 없었겠습니까? 남남이 만나 살다 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많고 서운하고 섭섭한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며느리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은 점만 말합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작별을 고하면서 그들을 축복합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며느리들을 떠나보내면서 축복합니다. 나오미의 이런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둘째. 하나님만 믿고 살겠다는 의지적 결단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돌아가라 한 것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나오미가 과거에는 물질 의지하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떠나 모압으로 갔던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의지하고 살려고 했습니다. 남편 의지하고 살려고 했더니 남편이 죽고, 아들 의지하고 살려고 했더니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어리석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오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돈도 다 떨어지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며느리라도 옆에 있어야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향해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이런 마음은 불행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불행을 며느리 탓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망했다’ 이런 악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13절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무슨 뜻입니까? ‘이 불행은 나 때문이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나 때문에 너희들까지 고생한다.’ 지금 자기가 당하는 고통과 불행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나오미의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부터는 믿음을 지키겠다는 마음입니다. 나오미는 고난을 당할수록 겸손해졌습니다. 고난을 당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것이 복 받을 모습입니다.

셋째. 며느리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신앙적 시험
모압에서 데려온 며느리이기에 그들이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입니다. 믿음 없는 며느리를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것은 유익이 없을 것을 알고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해본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나오미가 걱정한 대로 오르바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도 없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따라 가봐야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신앙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믿음이 없는 며느리를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가면, 살면서 원망과 불평만 하게 될 것이고, 피차 고통만 당하게 될 것임을 나오미는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엘리야 선지자가 제자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산채로 하늘나라로 데려가려고 할 때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스승에 대한 체면이나 인정 때문에 억지로 따라오는 것인지, 아니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해서 따라오는지 시험해본 것입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마침내 갑절의 영감을 받아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습니다.
시어머니의 권면에 믿음이 없는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믿음이 있는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시어머니가 만류하고 설득해도 룻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룻의 신앙고백과 위대한 결심을 다음 주에 살피겠습니다. 나오미는 결국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그 나오미와 룻의 앞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 내용을 다음에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오미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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