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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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수요예배 설교(요나 1장 1-16절/도망하는 요나와 찾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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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2-17 21:21 조회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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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zbjaBSX5v80

어떤 사람들은 요나서를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간 있다가 나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화, 설화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딤후 3:16). 꾸며낸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될 수 없다.
그리고 요나는 실존했던 인물이다(왕하 14:25).
북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때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대로 영토를 회복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나서의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시고 인용하셨다(마 12:39-40).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동화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하나님이 기록해주신 진리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1절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다. 말씀이 임하는 것이 은혜요 복이다. 요나에게는 이 말씀을 통해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다.

2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직접 가서 말씀을 외치라고 지시하셨다. 니느웨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요나의 사역의 장소이다. 바로 일할 현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하셨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야 한다. 그 이유가 그들의 악독이 하늘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나훔 3:1-3 피의 성,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고 탈취가 떠나지 않는다.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참고 참아주시다가 더이상 참아주실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40일 후에 심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요나를 보내서 경고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냥 심판하실 수 있지만 요나를 통해서 경고의 말씀을 전하라고 한 것은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3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했다. 3절에 이 말씀이 두번 나온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다시스로 도망하려"했다. 니느웨와 반대 방향에 있는 곳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를 싫어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다. 그러므로 요나는 앗수르 나라가 심판 받아 망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니 순종하기 싫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앗수르는 매우 크고 강한 나라이다. 사람들이 포악하다.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다가 위험한 일을 당할수 있고 죽을수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먹고 도망하기로 작정했다.
욥바로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다. "마침"은 시간적으로 딱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욥바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다시스행 배를 만났다는 것은 요나 입장에서는 잘됐다고 생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배는 죽음을 향해 가는 배이다. 얼마 안가서 풍랑을 만나게 될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는 길에 일시적으로 잘되고 형통할수 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재앙이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나에게 직접 명령하셨다.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을 어기고 가는데 일이 잘 되고 있다.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다.  
요나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는 결정을 했다. 선지자가 이럴수 있는가? 누구보다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생명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면서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다.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다.
이런 요나의 길을 성경은 "내려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욥바로 내려갔더니", 5절에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17절 "물고기 뱃속", 2장에 스올로 내려갔다고 했다. 요나가 실제로 내려가는데, 그의 심령상태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믿음이 올라갈때가 있고 내려갈때가 있다. 내려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기를 힘쓰고 말씀 듣고 순종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길로 걸어가야 믿음이 올라갈수 있다. 요나처럼 하나님을 피하고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면 내려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망치는 사람이 요나뿐이 아니다. 우리도 그런 길 갈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주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는데 자기는 바쁘다고 한다.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전도하며 선교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할일이 많아서 못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성경대로 살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옛날에 있었던 요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1:18 바울은 언제나 말씀에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었다고 했다.
예수님도 말씀에 항상 예만 하셨다.

4절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는 길을 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를 추격하신다.
"큰 바람, 큰 폭풍" 그냥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큰 바람이다.

시편 48: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왜 이런 바람을 일으키셨나? 요나의 길을 막으시고 그를 징계하고 회개시켜 돌이키게 만드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오미에게는 10년만에 풍랑이 왔다. 요나에게는 즉시 풍랑이 왔다. 다시스로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나가 탄 배는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 불순종하고 죄악의 길을 가면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징계하시고 벌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다 고난을 당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스로 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고통을 당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류가 다 고통가운데 빠져있고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했다.

5절
큰 풍랑이 일어나자 사공들은 각각 자기의 신을 불렀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믿는 신, 여러종류의 우상들을 부르고 간청했을 것이다. 죽게되니 신을 찾고, 기도하고, 부르짖는다.
그 다음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 먹을 양식, 장사할 물건, 값비싼 보물들도 있었을텐데 죽게되니 다 던졌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죄인은 언제나 어두운 곳에 숨는 법이다. 육신적으로 잠자는 것이지만 그의 심령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 죽은 것은 아닌데,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구원의 확신도 있고 직분도 받았으면서도 신앙의 잠이 들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말씀을 잘 듣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신령에 잠든 상태이다. 육신의 잠은 필요하지만 영이 잠드는 것은 큰일 나는 것이다.
잠자는 자의 특징은 자기가 자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깨어난 다음에 아는 것이지 자는 동안에는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볼때 다 자는 줄로 아는데 자기는 모른다.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의 잠 드는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해야 하고 말씀 붙들고 생명길로 가야 한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여기까지 떨어졌다. 사명 감당하지 않고 도망치다가 흑암의 자리에 떨어졌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고 기도할 때이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졌다.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졌다. 기름 준비하면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6절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자 망하지 아나히게 하시리라"
선장에 잠자는 요나를 깨웠다. 불신자가 신자를 깨우면서 기도하라고 말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종을 깨우면서 왜 기도하지 않냐고 책망하고 있다. 원래 요나는 지금 쯤 니느웨로 가서 그들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어야 하는데 잠을 자다가 선장에게 책망을 듣고 있다.
잠 자는 사람을 깨우면 좋아하나? 싫어하나?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깨워야 한다. 그래야 살수 있다. 계속 잠자고 계속 도망가는 길을 갔더라면 요나는 죽었을 것이다. 선장이 깨우기는 했는데 기도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깨우신다. 사명 감당해야 할 사람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깨우신다. 사람과 환경과 사건을 통새서 깨우신다. 인생의 배를 깨뜨리셔서 깨우셔서 일하게 만드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7절
아무리 노력해도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으니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요나가 뽑혔다(잠 16:33).
요나는 자기가 뽑혔을때 많이 놀랐을 것 같다. 하나님을 피할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 같다. 도망치다가 다시 잡히는 상태가 되었다.

민수기 32:23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8절
사람들이 요나를 둘러싸고 질문했다. 누구 때문에 이 일이 임했는가? 생업과 나라와 민족이 어디인가?

9-10절
요나가 사실대로 고백한다. 부인하지 않고 모른다고 하지 않고 잡아 떼지 않고 다 인정했다. 요나의 이 고백 때문에 요나가 살고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 만약 요나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 부렸으면 다 죽었을 것이다.

11-12절
요나가 중요한 말을 한다.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나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내 탓이라고 했다. 정직한 고백이다. 진실하게 자백했다. "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풍랑을 내리신 것입니다"라고 자백했다. 어려움 당할때 남 탓하는 경우가 많다. 요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자백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고 말했다.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준비하셨다가 자기를 살려줄줄 알고 말한 것이 아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책임지겠다는 자세이다. 놀라운 것은 요나가 죽기를 각오하자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참으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13절
선원들은 힘써 노를 저어서 배를 육지로 돌리려고 했다. 선원들이 착했던 것 같다. 요나 때문에 죽을 고생하고 물건들도 다 집어 던졌는데 그 요나를 살리려고 한다. 참 착한 사람들 같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고 육지로 갈수가 없었다.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절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다.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도망가다가 풍랑 만난 요나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사는 길임을 배워야 한다. 무슨 말씀을 주시던지 순종해야 한다. 나에게 이익, 손해, 기쁨 여부를 따지지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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