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10228 주일오전예배 설교(룻기 2장 1-7절/이삭 줍는 여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2-28 14:57 조회1,041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zmMzTMq3BV8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직 믿음 하나만 생각하고 이스라엘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2절에 보면 룻은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겠다고 하면서 시어머니의 허락을 요청합니다. “내가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매우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룻의 신앙과 인품이 나타나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살아가는 룻
첫째. 시어머니 공경. 룻은 생계를 책임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집에서 쉬게 하고 자기가 일하러 나갑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섬기며 살아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은 그녀의 몫입니다. 이삭을 주우러 나가면서 시어머니에게 허락을 받는 모습을 보십시오. 며느리 룻이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까 나오미가 "내 딸아 갈지어다" 허락합니다. 시어머니께 허락받는 룻의 모습이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중요한 방법은 말을 공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 예쁘게 해야 집안이 평안합니다. 그런 집은 남편이 잘되고 자식들이 잘됩니다. 사랑받는 여성이 되는 법, 말을 예쁘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시어머니를 존중하는 룻의 모습입니다. 물어보고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집에 돌아와서 주어온 이삭을 시어머니에게 보입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떡을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19절에 보면 어디서 일 했는지 알게 하고 보아스의 밭에서 주었다고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노인들이 섭섭하고 속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제는 물어보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보면 ‘몰라도 돼요. 알 필요 없어요’라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큰 서러움입니다. 그런데 룻은 어머니를 어른으로 대접하며 공경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이나 하나님께 묻고 의논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존중이며 대접입니다.
둘째. 이삭 줍는 정신. 룻은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밭으로 나가서 일합니다. 젊은 여자가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 것은 남이 거두어가지 않는 것을 줍는 것이며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짓는 일도 아닙니다. 룻은 좋은 일만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자원해서 그 일을 합니다. 이삭을 줍는다고 사람이 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죄짓는 일만 아니면 모든 직업은 다 귀합니다. 룻은 ‘나는 죽어도 그런 일 못합니다.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 줍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하면서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간청했다가 큰 복을 받았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는 것이 이삭 줍는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한 후에 부스러기를 버리지 말고 주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적을 행할 능력을 가진 주님께서 왜 부스러기를 주우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은 작은 것이라도 귀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요즘은 천한 일,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빚을 지고 살면서도 편하게만 살려고 하고, 굶어 죽어도 고생하는 일은 안하려고 합니다. 이삭 줍는 정신을 본받읍시다.
더구나 나오미에게는 돈 많은 부자 친척이 있었습니다. 보아스라는 유력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척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일합니다. 밭으로 들어간 룻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일합니다. 7절에 보면 룻이 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17절에 보면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주었다고 말합니다. 룻은 요행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땀을 흘려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이삭 줍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런 룻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이삭 줍는 그 작은 일에서 길이 열립니다. 그 일을 하다가 중요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앞길이 열립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돕는 것입니다.
셋째. 은혜를 구하는 자세. 2절에 보면 룻이 이삭 주우러 가겠다고 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 사람 밭에서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가난한 자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은 율법으로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밭에 가서 이삭 줍는 것을 떳떳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룻은 그것이 ‘은혜를 받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룻은 이렇게 예의를 알고 공손한 덕행으로 남들에게 인격적 감화를 끼쳤습니다. 룻은 모압에서 왔습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릅니다.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막막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 입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자기를 도울 사람을 보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
이렇게 착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려는 룻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신기하게 인도하십니다. 3절에 보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단어가 “우연히”라는 말입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우연히’였습니다. 룻이 전혀 계획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입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성도들은 우연이나 재수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허락하시고 다스리고 주장하신다고 믿습니다. 룻은 모르고 갔으나 하나님께서 그녀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어머니를 따라와서 하나님을 살기로 결심한 룻에게 복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가 찾아간 밭이 바로 보아스의 밭이고 그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였습니다.
4절에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침”이라는 단어입니다. 3절의 "우연히"와 4절의 "마침"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인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간 그 시간, 마침 그때 보아스는 그곳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하나님은 보아스가 룻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룻이라는 여인이 보아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치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갔다가 갈대 상자에 있는 어린아이 모세를 발견하고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아이를 구해서 자기 아들로 삼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십니다. 룻은 이삭을 주우러 나갔다가 보아스를 만납니다. 보아스를 통해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됩니다.

3. 보아스는 어떤 사람인가?
보아스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룻의 인생을 바꿔놓는 이 보아스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친족, 유력한 자(1절). 친족이란 기업을 무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력한 자라는 말은 권세 있는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 지도적인 위치에 앉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보아스는 밭이 많았으며 그 밭에서 일하는 일군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보면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서 장로들과 함께 앉아 나오미 가정의 기업 무르는 일을 의논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면 보아스의 신분이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신앙과 덕이 있는 자(5-7절). 보아스는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부유하고 힘 있는 자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겸손하고 자상하고 너그러운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자기 밭에 나왔다가 낯선 여자 룻을 보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종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 목이 마르거든 물을 마시라고 하고, 14절에는 식사할 때에 떡을 먹으라고 하고, 떡을 초에 찍으라고 하면서 볶은 곡식도 더 주었습니다. 미천한 이방 여인 룻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것을 보면 보아스가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밭에 와서 이삭을 주워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 이유가 없는데 보아스는 자상하게 친절을 베풉니다.
셋째, 기업 무를 자(20절). ‘기업을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꼬엘’이라고 합니다. ‘구속자’라는 뜻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각 지파별로, 각 가족별로 땅을 나눠주었습니다. 그 땅이 기업입니다. 그리고 그 기업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업 무르는 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기업의 땅을 잃어버린경우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다시 사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은 경우 그 사람은 대가 끊기게 됩니다. 기업 무르는 자가 그 죽은 자의 아내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죽은 사람의 대를 이어가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 집안의 기업 무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에게 있어서 보아스는 자기들의 친족으로 빼앗긴 땅도 되찾아주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해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룻이 이런 보아스를 만난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하여 완전히 뒤바꾸게 됩니다.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죽은 남편의 대를 이어주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룻이 복 받은 것은 보아스 때문입니다. 만약에 룻이 보아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가난과 불행한 형편에서 영원히 회복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우리를 회복시키고, 죽게 된 우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원래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복을 잃어버립니다. 영적으로 파산한 자들입니다. 나오미처럼 실패한 자들입니다. 우리를 건져내고, 우리를 구원해줄 구속자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줄 구속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 구속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죄 사함 받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인생이 바뀐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야 복을 받고 인생이 바뀝니다.
룻이 양식을 구하려고 밭으로 나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밭은 어디입니까? 고린도전서 3:9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고 신령한 양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에서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 듣다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자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아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심으로 모든 죄를 완전히 대속해주시고 구원해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복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