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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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3 수요예배 설교(요나 3장 1-10절/순종하는 요나와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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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03 21:19 조회8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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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nU2XBonCRuU

2장에서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간 요나가 기도했다.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다.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고 지옥같은 자리에서 건짐을 받았다.

1절
"두번째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쳤던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주셨다. 불순종한 요나를 버리고 더이상 선지자로 사용하지 않으실수 있다. 하지만 요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다. 싫다고 안하겠다고 도망친 요나를 다시 불러서 쓰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할수 있다. 말 듣지 않는 요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쓰실수 있다. 요나보다 순종 잘하는 자를 얼마든지 찾으실수 있다. 그러나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셔서 니느웨로 보내신다.
요나가 없다고 하나님이 일을 못하시겠나? 하나님은 요나 없이도 얼마든지 일하실수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수 있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전하실수도 있고 천사를 보내실수도 있다. 그런데도 꼭 요나를 보내시려고 하신다. 만약에 니느웨를 회개 시키는 것만 목적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된다. 그런데 꼭 요나를 보내시는 이유는 뭘까? 이 일에 요나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면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요나가 불행해진다. 하나님이 요나를 사용하시는 것이 요나에게 복이요 은혜이다.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왕에게 가서 유다백성을 살려달라고 간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유다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 요나에게는 요나의 할 일이 있고, 에스더에게는 에스더의 할 일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는 일 하라, 봉사하라, 전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나 같은 것도 사용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해야 하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년간 따라다니며 배웠는데 주님께서 붙잡히셨을때 도망하고 세번 부인하며 저주한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부활하신 후에 디베랴 바다로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면서 다시 사명을 주신다. 그 베드로를 기어코 회개시켜서 다시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시려는데 모세가 자기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보려고 하다가 사람 죽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치는 일을 하고 80세의 노인이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신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시면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한번 불러서 일꾼으로 세우시면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그 사람이 실수할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실 일을 다 하신다.

요나는 싫다고 하고 도망쳤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친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요나를 다시 불러서 일꾼으로 부르셨다.

2절
하나님이 주신 두번째 말씀의 내용은 "일어나 저 큰 성읍 느니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동안 요나는 앉은뱅이 생활을 하고 드러누워 잠을 잤다. 니느웨로 가지 않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아주 싫어하고 거역하고 불순종했다. 그 요나를 불러서 일어나라고 하셨다. 앉아있지 말고 잠자지 말고 핑계하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말씀을 전한 경우가 없다. 그런데 요나에게는 특별히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요나가 순종한다.

3절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다. 사명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지 않고 이번에는 일어나서 순종했다. 참으로 회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요나가 처음 말씀을 듣고 이렇게 순종했다면 참 좋을뻔 했다.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배삯 낭비하지 않고 풍랑으로 고생하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될뻔 했다.

성경에는 세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하는 사람이 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때 즉시 순종했다. 핑계대지 않았다. 그냥 가라고 하니 갔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할때에도 군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복과 은혜를 받는 비결이다. 이렇게 순종하는 자를 쓰기가 참 편하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가 있다. 자기 뜻대로 하고 반항하다가 매를 맞는다. 그런 후에 돌이켜서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가 있다. 요나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이외로 많다. 거역하고 반항하고 불순종하다가 매맞은 후에 정신 차리고 순종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역하다가 망하는 자이다. 애굽의 바로왕은 열번이나 재앙을 받으면서도 거역했다. 하나님을 이겨먹으려고 하다가 완전히 망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순종하는 것이 좋다.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자기만 고생한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명 감당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순순히 순종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복받는 길이다.

4절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들어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다. 그가 전한 말씀이 참 간단하다. 꾸미는 것도 없고 보태는 것도 없다. 그냥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해야될 일이다. 말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듣기 좋은 말을 꾸며서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 사역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님이 전하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 말씀 사역의 특징이다.
요나가 기적을 행한 것도 없고 능력을 보여준 것도 없고 말씀만 전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니느웨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회개했다.

5절
니느웨 백성들은 아주 강퍅하고 포악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는 요나를 공격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미쳤다고 취급하지 않고 요나가 전하는 말을 믿었다.
"하나님을 믿고" 이방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들이 요나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요나가 전한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였다. 그 말씀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고 잘 받아들였다.
창세기에 천사가 소돔성에 들어가서 소돔이 멸망할 것을 말했는데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 이렇게 멀쩡한 세상이 하나님의 불로 심판을 당한다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 것 같다. 농담 취급하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홍수심판을 경고할때 아무도 그의 말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나의 말을 니느웨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을 믿은 것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이다.
말씀을 잘 전해야만 믿는 것이 아니다. 예쁘게 꾸며서 말해야만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믿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말씀 자체에 능력과 생명이 있다. 약은 있는 그대로 먹어야지 다른 것을 섞으면 효능이 떨어진다. 말씀 자체가 생명과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금식을 선포하고"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는 모습이다. 요나가 전한 말씀을 보면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말씀이 전부이다. 회개하라는 말씀이 없고 회개의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대로 회개하고 있다.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 참된 회개의 모습을 갖추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했으니 다른 데로 도망가면 살길이 있을 것 같은데 도망가지 않고 회개했다. 이 모습이 참 아름답다. 복받을 모습이다. 핑계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다 통곡하면서 회개했다.

6절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니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다. 왕은 요나의 말을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소문으로 간접적으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셨다. 전무후무한 회개의 역사이다. 니느웨성은 굉장히 큰 성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일시에 회개했다. 회개운동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기는 쉽다. 왕이 법을 재정하여 명령하면 백성들이 따라가기 쉽지만 백성부터 시작해서 왕까지 동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니느웨에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다. 왕이 철저하게 낮아져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7절
왕이 온 국민들에게 조서를 내렸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선포했다. 금식을 선포하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도록 특별법을 만들어서 공포하고 온 성 사람들이 회개했다.
짐승이 회개할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니느웨성의 회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8절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살려달라고 용서해달라고 부르짖은 것 같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말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짓는 죄에서도 다 떠났다.

9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노를 그치시고 멸망하지 않게 해주실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대했다. 어떻게 하나님께 이런 기대를 했는지 참으로 대단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회개하면서 소망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부르짖었다.

10절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께서 니느웨성 사람들의 회개를 보셨다.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셨다.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를 회개하고 악을 떠난 것을 보셨다. 하나님은 죄짓고 악을 행하는 것도 보시고 회개하고 악을 떠나는 것도 보신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뜻을 돌이켰다는 것은 원칙없이 변덕을 부리신 것이 아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고 회개하면 용서하시기로 뜻을 정하신 것이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깨달아야 하겠다.
니느웨성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었는데 회개하니 용서하시고 진노를 그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회개하면 진노를 그치시고 용서하신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 크고 놀랍다.

에스겔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악을 행한 사람이지만 죽기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을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나서에는 회개가 많이 나온다. 2장에서는 요나가 회개했고 3장에서는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했다.

그런데 훗날 역사를 보면 니느웨성 사람들은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후에 막강한 나라가 된다. 그 다음 그 앗수르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다가 망했다. 선지자들을 수없이 보내서 회개하라고 했는데 회개하지 않다가 망한다.
니느웨는 요나가 전한 말을 듣고 회개하고 용서받는데 요나의 조국 이스라엘을 회개하지 않다가 망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회개하지 않다가 망하고, 이방백성은 회개하고 용서받았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하겠다. 회개하면 산다. 하나님이 용서하신다. 죄가 얼마나 큰가도 중요하지만 회개하는가 회개하지 않는가 가 더 중요하다. 큰 죄, 많은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용서하신다.
북이스라엘을 회개하지 않고 망해버린다.

마태복음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지막 심판때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도 회개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하면 산다. 누구라도 회개하면 산다. 그러므로 요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여 용서받은 니느웨성 사람들처럼 회개하여 은혜와 복받는 생활을 해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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