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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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수요예배 설교(요나 4장 1-11절/분노하는 요나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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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10 21:23 조회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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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tEbodJ2Zen4

3장에서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하는 내용을 살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큰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해주셨다. 그런데 당연히 감사하며 기뻐해야하는 요나는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해주셨을때 크게 감사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해주신 것을 아주 싫어하고 불평했다.

1절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니느웨 백성의 회개와 구원은 놀라운 은혜와 구원의 현장이었다. 하늘나라에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이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했다.
니느웨 백성들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할 일인가!
그런데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냈다.
왜 그랬을까? 첫째,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원수이다. 이스라엘에 침략해서 사람을 죽이고 빼앗아 가고 우상을 숭배하게 했다. 그래서 요나 입장에서는 원수 앗수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망했으면 속이 후련하고 좋았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자 화가나고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나 일본이 복을 받아 잘살게 되면 좋아할 사람도 있지만 싫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째, 요나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2절
요나가 기도했는데 기도 내용을 보면 요나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어떤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 설명해놓았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요나의 말대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불순종하고 도망가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건져주셨다. 뿐만 아니라 니느웨 백성들도 회개하자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다. 요나는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실제로 긍휼과 구원을 베푸시자 싫어하고 화를 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셔서 죄인이 회개할때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하시자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항의하면서 불평하고 있다.
머리로는 정확히 아는데 실제 하나님의 역사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나의 모습을 볼수 있다.
지식과 실제 삶이 너무 다르다. 우리도 그럴때가 많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실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까막눈이고 하나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때가 많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실때에는 감사하지만 원수를 사랑하실때에는 감사하지 못한다. 왜 저 사람을 벌 안주시고 용서하시나?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더 나아가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도망갔던 것을 정당화 하면서 말하고 있다. 그럴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니까,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용서를 잘하시는 분이니까 니느웨를 용서하실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참 이상한 말이다. 전도가 성공할까봐, 선교가 잘되어서 죄인들이 용서받고 구원받을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참 못나고 속이 좁은 요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사해야 될 일을 그렇게 될까봐 싫어서 안하려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앞뒤가 안맞는 말이다.
요나는 니느웨가 망했으면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을텐데 망하지 않으니까 속이 상하고 자신의 체면도 손상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가 난다는 것이다.

2절에 "내가"라는 말을 여러번 한다. 하나님의 뜻보다,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내 생각은 이랬는데, 내 기분은 이랬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신앙생활하면서 나 중심이 되면 요나와 같은 상황에 빠지기 쉽다. 갈등하고 혼동하고 성내는 일이 많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불평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시면서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고 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고 상고해야 한다.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면서까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할때 용서하시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마음이 아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기 몫(유산)을 달라고 해서 집을 나갔다가 다 탕진하고나서 어쩔수 없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기쁨으로 탕자를 맞이하고 잔치를 베푼다. 들에서 일하고 돌아오다가 큰 아들이 이 상황을 보고 불평한다. 어째서 저런 아들을 기뻐하시고 잔치를 하냐고 화를 낸다. 그때 아버지는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찾았으니 기뻐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큰 아들도 기뻐해야 할 일인데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동생을 환영하지 않았다.
요나는 그런 면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열심은 있지만 사랑이 없고 수고는 했지만 기쁨이 없었다. 기뻐해야 할 일을 가지고 화를 내고 감사해야 할 일을 가지고 불평하고 있다.
뭐가 옳고 그른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3절
요나는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기도한다.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가소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축제를 벌여야 할 시간에 요나는 죽여달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자기 뜻대로 안되었다고 속상해하면서 죽여달라고 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런 기도는 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지 죽고 싶다고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는 기도이다.

5절
"앉아, 앉았더라" 다시 주저 앉아있는 요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1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도망가는 요나, 2장에서는 회개하는 요나, 3장에서는 열심히 순종하는 요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4장에서느 주저 앉아 있다. 요나가 할 일이 다 끝나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사흘길을 전해야 하는 성읍인데, 하루만 전하고 어떻게 되나 하고 앉아서 보려고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일하지 않고, 앞장서서 봉사하고 헌신하던 사람이 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일하다가 속상하다고 손 털고 주저앉아 있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평가하고 있다.
구경하고 앉아 있으면 일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시험들 일이 많아진다. 열심히 일할 때에는 바쁘고 정신 없어서 보이지 않던 일들이 가만히 보고 앉아 있으면 자꾸 눈에 들어와서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는 앞장 서서 일하고 열심히 복음 전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으면 안된다. 자신이 손해보고 죄만 짓는 자리에 떨어지게 된다.
하나님이 이런 요나를 깨닫게 하신다.

4절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9절에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고 물으셨다. 참지 못하고 화가 나서 펄펄 뛰고 항의하며 따지는 요나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깨우치신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향하셔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셨고 불순종하고 죄짓는 요나에게도 자비의 긍휼을 베푸셨다. 원망불평하는 요나에게 화도 내지 않으시고 자상하게 깨우쳐 주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신 것은 하나님이 잘못하신 일이 아니다. 유대인만 구원받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요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항의하면서 자꾸 따졌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께서 깨우치신다.
우리도 살다보면 속상하고 화가나고 분노가 치밀때가 있을텐데 이 말씀을 생각해봐야 하겠다.
"내가 성내는 것이 옳은 일인가?"

가인이 분노했다. 자기가 제사를 잘못 드리고 아무 잘못도 없는 아벨에게 화를 내고 분풀이하고 죽이고 만다. 아벨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가인은 자기가 잘못해놓고 자기가 화를 냈다.
요한복음에 가룟유다가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자 그것을 보고 화를 낸다. 마리아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마리아를 인정하고 칭찬하셨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도 속상하고 화가 날때 하나님의 이 질문을 되새겨야 하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그런데 요나는 깨닫지 못한다.

6절
하나님께서 실물 교육을 하신다. 요나가 앉아 있는 옆에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빠르게 자라나게 하셨다. 원래 빨리 자라는 식물이기는 한데 기적적인 역사로 아주 빠르게 자라나게 해주셨다. 박넝쿨로 그늘이 만들어지자 요나가 아주 좋아했다.

7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음 날 벌레를 예비하셨다. 그리고 벌레가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셨다. 박넝쿨을 하루만에 죽게 만드신 것이다.

8절
뜨거운 해가 떠오르고 뜨거운 동풍이 불게 하셨다. 요나가 혼미하여 죽고 싶다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은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셨다.

6-8절에 예비하셨다는 말이 세번 나온다. 박넝쿨, 벌레, 동풍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이 이것들을 이용하셔서 요나를 깨우치시고 교훈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자연과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잘 깨닫고 은혜를 받으면 유익이 많다.
그런데 요나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요나는 박넝쿨을 기뻐했다. 하루만에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준 박넝쿨을 기뻐했는데, 박넝쿨이 사라지자 불평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성내고 죽겠다고 하고 못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속상해하고 못살겠다는 것을 보면 박넝쿨 같은 것 때문이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상황에 처해있다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해서 용서받았는데 요나는 거기에 대해서 반응이 전혀 없다. 그들이 구원받고 용서받고 생명 얻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기뻐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박넝쿨 하나 가지고 기뻐했다가 슬퍼하는 모습이 참 어리석다.

9절
하나님이 다시 물으셨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느 것이 어찌 옳으냐?"
그런데 요나는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자기 고집만 앞세우고 있다.

10-11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질문하셨다.
"너 박넝쿨 아꼈지? 그런데 네것 아니잖아. 네가 심지도 재배도 않은 것인데도 그것을 아끼지 않았느냐?"
요나가 박넝쿨을 아주 기뻐하고 그것이 없어지니 속상해하고 안타까워 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고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요나는 박넝쿨을 아꼈다. 사람과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은 박넝쿨 보다 생명과 영혼이 귀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더 귀히 여기면서 살아야 하겠는가? 나는 박넝쿨을 귀히 여기는가? 사람과 영혼을 귀히 여기는가?
우리의 박넝쿨은 무엇인가? 모든 물질이다. 내 집도 박넝쿨이다. 나를 쉬게하고 서늘하게 거하게 하고 안전하게 살수 있게 하는 것이 박넝쿨이다. 직장, 자동차, 돈이 다 박넝쿨이다. 우리는 박넝쿨에 관심이 많다. 조금만 더 생기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조금만 손해가 나면 얼마나 불평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혼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적다. 요나가 그랬고 오늘날 우리도 그런 모습을 가질때가 많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많은 사람들을 아끼신다고 하셨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그런데 요나는 싫다고 하고 항의하고 이 상황을 못받아들이겠다고 속상해 했다. 그 요나에게 묻고 계신 것이다.

박넝쿨보다 사람이 더 귀하고, 영혼이 귀하다. 영혼 구원하는 일에, 생명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힘쓰며 믿음으로 살아갈수 있어야 하겠다.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는가, 싫어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다. 그 사람이 중요하게,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나는 박넝쿨에 가치를 두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진리의 말씀과 영혼 구원에 관심을 두고 믿음 지키는 생활을 해나가야 하겠다.

맨 마직막에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요나의 답은 나와있지 않다. 우리가 답할수 있도록 질문으로 마치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여기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내놓을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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