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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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주일오전예배 설교(룻기 3장 1-11절/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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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14 14:29 조회8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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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SfWIwOPs5uw

룻은 이삭을 주우며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이제는 추수의 시기가 끝나고 거둔 곡식을 타작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삭 줍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며느리의 앞날을 염려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마음을 살피겠습니다.

1. 나오미의 사랑
1절에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나오미는 며느리를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앞날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여기서 ‘안식할 곳’은 룻을 결혼시켜서 남편과 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말입니다.
며느리 룻을 시집보내면 시어머니 나오미는 혼자 남게 됩니다. 그러면 외로워질 것이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며느리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며느리 룻을 혼자 살도록 이대로 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며느리를 잘되게 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남을 이용해서 내가 유익을 누리고, 남을 짓밟고라도 내가 출세해야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며느리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1절에 “너를 위하여”라고 했는데, 진정으로 너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나오미는 룻을 복되게 하려고 하면서 보아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룻을 복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시고 구속자 되시는 분입니다. 자녀들이 예수님 만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여 진정한 안식과 복을 누리게 하실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진정으로 복되게 할 수 있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과 공부와 좋은 집, 그리고 세상의 성공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 것 붙들려고 하다 주님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너를 위하여"라는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권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말로는 자녀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강요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자녀를 주님께로 인도합시다.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고후 11: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우리도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룩한 믿음 위에 인생을 건축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자녀를 위한 것입니다.

2. 룻의 순종
2절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이스라엘은 보리 타작을 마치면 주인이 곡식더미 곁에서 잤습니다. 나오미는 그것을 알고 며느리에게 지시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몸을 씻고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에 보면 보아스가 눕는 곳에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아스에게 청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과 보아스는 나이가 20살 이상 차이가 납니다. 2장에 본 것처럼 보아스는 룻을 향해 ‘딸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나이가 스무 살 이상이나 많은 사람한테 청혼하라는 것은 아주 민망한 것이고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듣고 다 행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5절). 복 받을 자세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 거역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룻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나, 자기의 유익을 따른 것이 아니고, 기업을 무르는 일을 해서 죽은 남편의 대를 잇게 하려는 신앙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룻이 자기 행복만 생각하고, 육신적으로 자기의 욕심만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나이 많은 보아스에게 시집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6절에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룻은 실제로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다 하였습니다. 룻이 이렇게 순종하므로 결국 큰 복을 받습니다,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사람이 된 것은 이런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순종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들면 순종하고 내 마음에 안 들면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바른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면 그 다음에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복을 주십니다.

3. 보아스의 응답
8절에 보면 보아스가 자다가 발에 무엇이 걸려서 일어나 보니 젊은 여인이 누워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9절에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보아스는 룻이 기업을 무르기 위해 청혼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믿음으로 룻의 행동을 이해합니다. 룻이 밤중에 보아스를 찾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날 이상한 여자로 생각하면 어떡할까? 욕하면 비난하면 어떡할까? 혹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스는 밤중에 찾아온 룻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했습니다.
10-11절에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이 말씀은 룻이 자기에게 찾아와서 청혼하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육신적인 정욕으로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기업을 물러 달라고 요청하는 것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읍의 모든 백성이 룻을 현숙한 여인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의 말대로 기업을 물러주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오미 가정의 잃어버린 땅을 사서 주고, 자식을 낳아 그 집안의 대를 이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희생이고 큰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땅을 사서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자식을 낳아서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기업을 무르는 일은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큰 믿음이고 희생입니다. 보아스가 인격적으로 참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의 친절과 세심한 배려가 룻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보아스는 룻이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룻이 밤중에 보아스를 찾아온 것은 물론 보아스에게 구혼하는 의미를 내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한 것이었고, 또 전적으로 시어머니의 지도에 순종한 것이었으니 만큼 룻은 조금도 흠 잡힐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면 공연히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어려움을 주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오해를 사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쓸데없이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정숙한 여인 룻이 오해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보아스의 태도가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다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정도 모른 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현숙함에 손상이 가지 않게 배려합니다.
17절에 보아스는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룻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룻이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가 스스로 생각해서 준 것입니다. 이것이 나오미와 룻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보아스가 훌륭한 것은 그가 땅이 많고, 종들이 많고,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베푸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보아스의 태도를 배웁시다. 누가복음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남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며느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려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마음, 그 시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죽은 남편을 위해서 보아스에게 시집가서 남편의 대를 잇게 하려는 룻의 마음, 그리고 멸망한 친척을 위해서 기업 무르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한 보아스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들은 모두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은 삶입니다. 이들이 룻기의 주인공들입니다.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은 결국은 나를 위하는 것이 됩니다. 이들의 ‘남을 위하는’ 그 마음 때문에 이 가정은 놀랍게 회복되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우리도 이제부터 남을 위해서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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