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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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수요예배 설교(미가 5장 2-9절/약속대로 오실 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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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17 21:14 조회796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dpckBTH-UAU

본문의 내용은 메시야 출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자세하게 예언하셨다.

2절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예언대로 주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베들레헴은 유다 땅 중에 가장 작은 곳이라고 했다. 화려하고 큰 도성에서 나신 것이 아니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오늘날 세상은 큰 것을 추구한다. 누구나 크기를 원하고 크게 되기를 소망한다. 교회도 큰 것을 좋아하고 세속화되고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주님은 큰 자만 쓰시는 것이 아니고 작고 약한 자도 쓰시고 이를 통해 크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다.
작다고 좋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다.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베들레헴에 나셨는데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이 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을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신데 떡집인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알려주셨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정하시고 그 지역의 이름을 이렇게 짓도록 섭리하신 것 같다. 베들레헴이 작지만 생명의 떡이 되시는 메시야가 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떡을 먹고 복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베들레헴이 참 복된 도시가 되었다.
외부적으로 부족해도 주님을 모신 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마태복음 4장에 스불론과 납달리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그곳에 사셨다. 별볼일 없는 곳이었지만 주님께서 사심으로 큰 빛을 비추는 땅이 되었다(마 4:15-16).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있을때 그곳에 호렙산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꽃같이 임하셔서 그곳이 복되고 거룩한 곳이 되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곳이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멸망받을 곳일 뿐이지만 비록 작고 초라한 곳이라도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복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이스라엘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사실 온 세상을 다스릴 만왕의 왕이 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나시는 것이다. 만왕의 왕, 구세주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주님은 영원전부터 계셨다. 사람에게는 전생이 없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나시기 전 상고부터, 영원전부터 계셨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시는데 베들레헴 땅에 탄생하셔서 오시는 것이다.

3절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시기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이방의 침략과 괴롭힘을 당한 후에 주님께서 나셔서 회복시켜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 후에는" 유다 백성들 가운데 택함받은 백성들이 있다. 그들이 믿는자에게로 돌아오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생명운동과 구속운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4절
메시야가 오셔서 목축한다고 했다. 목축은 양을 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로 오신다. 양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 그런데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서 목축을 하니 얼마나 잘하시겠는가? 서서 목축하신다고 했다. 쉬지 않으시고 성도를 돌보시고 기도하시고 구원사역을 계속해나가신다. 예수님이 큰 목자장이시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봐주신다. 주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이 일이다. 양들을 치고 돌보는 목축하는 일을 하신다. 주님의 이런 목축사역으로 양들이 받을 은혜와 복이 있다.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믿는 자가 안연하게 산다는 것이다. 개역에 안연히 거한다고 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고 평안하게 안주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면서 안식 가운데 평안히 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님 품안에서 누릴 평안이다.

이사야 30:15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안연히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염려 걱정 없이 주님 의지하면 주께서 돌보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 중에 은혜이다. 아무리 큰 집에 살고 좋은 것을 먹어도 걱정 근심에 불안해 하면 그것이 어떻게 복이 되겠는가? 사울은 왕이었지만 평안이 없었다. 얼마나 걱정과 근심이 많았는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성경에 많이 기록해 보여주었다.
다윗은 피난 당하고 들로 숲으로 도망다니면서도 주님 품안에서 안연히 거했다.
성도는 주님이 목자이심을 믿고 주님 품안에서 평안히 거해야 하겠다. 주님을 떠나면 염려 근심이 우리에게 들어온다.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이다. 환난을 피해서 도망나와도 피할 곳이 없다. 계속해서 도망갈수 밖에 없다. 주님 품안에 거해야만 평안을 누릴수 있다.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주님의 통치의 범위는 땅끝까지이다. 신약교회가 창대해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만민중에 택함받은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면 주께서 돌보시고 지켜주신다.
지금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 가운데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있다. 주님은 열국의 모든 나라를 통치하신다.

5상반절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평강을 주시는 분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믿는 자마다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주시고 계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인사가 "평강이 있을지어다"였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말로만 하시지 않고 실제로 그들의 마음과 삶 가운데 평강을 누릴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구약 이스라엘은 전쟁이 끊임이 없었다. 외부의 침략과 환난과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래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사가 "샬롬"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평안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런 인사를 한 것 같다. 주님 없이는 평강을 얻을수 없다. 돈으로 평강을 살수 없다. 권력이 있다고 평강을 얻을수 없다. 오직 주님에게만 평강이 있다. 메시야가 평강이다. 예수님을 모시면 그 사람 안에 평강이 임한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평강도 없다.
또 하나는 그냥 평강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평강은 죄사함의 결과로 얻는 것이다.
평강은 전쟁의 반대 개념인데, 성경에서는 죄의 반대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죄용서를 받을때 참 평강을 얻을수 있다.

이사야 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다. 주님께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으니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할때 빛이 있었던 것처럼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으니 평강이 있게 된다.
가까운데 있는 사람이든지, 먼데 있는 사람이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셨다(사 57:20-21).

다윗도 범죄하고 이런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이 누르시는데 진액을 짜는 것처럼 괴롭고 힘들다고 했다. 아무 평강이 없고 삶의 기쁨이 다 사라진다.
죄 사함 받을때 참 평강과 기쁨이 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을수 있다. 예수님이 죄사함을 통해 참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다.

5하반절-6절
원수들을 다 물리치시고 승리하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앗수르는 실제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키기도 하고 여러 대적을 대표해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블레셋, 아말렉, 애굽, 바벨론 등을 총칭해서 앗수르라고 한 것이다. 이들이 침략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대적할때 주께서 그들을 막으시고 물리쳐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걱정, 염려할 것 없다.
영적으로 교회가 원수 마귀에게 늘 공격받고 마귀의 종들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초대교회때 헤롯 왕에 의해서, 조금 지나서 로마의 네로 황제가, 근대에는 일본과 공산주의가 교회를 대적했다.
그러나 주께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서 그들을 치신다고 하셨다.
힘있는 지도자들을 세워서 앗수르를 이기게 하고 물리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적이 아무리 많아도 걱정하고 염려할 것 없다.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메시야가 성도들을 건져내신다. 핍박하고 잡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져주신다.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이다.

7절
"야곱의 남은 자" 3, 8절에도 남은 자가 나온다. 남은 자는 택한 백성, 믿는 성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남은 자가 많은 백성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미 믿는 사람도 있고 아직 믿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여러 민족 가운데 택한 백성들이 있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택한백성들은 이슬과 같고 단비와 같다고 했다. 신명기 32장에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이 이슬, 단비와 같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은 자들이 이슬과 같고 단비와 같다고 했다. 이미 믿은 성도들이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면서 생명 살리는 일을 할 것을 가리킨다. 성도 자체가 이슬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가는 복음이 이슬이다. 복음을 전해서 생명 살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같이 남은 자들이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다.

8절
야곱의 남은 자가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떼중의 젊은 자사와 같다고 했다. 성도가 이긴다는 것이다. 복음과 믿음으로 선한싸움을 싸워서 세상을 이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는 자들이 남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자와 같다. 두려워말고 걱정하지 말고 환난 핍박이 있다고 해서 원수가 나온다고 해서 기죽지 말고 뒤로 물러가면 안된다.
사자가 지나가는데 누가 대적하겠는가? 당할자가 없다. 그처럼 강하고 능력있는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

성경에 사자를 이긴 자들이 누구인가? 삼손, 다윗, 다니엘이 사자를 이겼다. 이들은 실제로 이긴 것이다. 짐승 사자를 이겼다. 이와 같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사자와 같은 자들이다.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신다.
6절에서는 메시야가 앗수르를 이기고 승리하신다고 하셨고 8절에서는 남은 자, 곧 성도들이 이긴다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주님도 이기시고, 주님과 함께 있는 부르심을 받은 택함받은 성도들도 이긴다고 했다.
마지막날 환난과 핍박과 시험과 마귀 역사다 많이 있지만 주님이 이기고 성도들이 이긴다.
어떤 환난과 핍박도 다 이기고 최후 승리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염려 걱정 근심이 다 사라진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다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있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다. 예수님만 믿고 목자 되시는 예수님만 따라가면 이 은혜를 다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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