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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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4 수요예배 설교(요한복음 11장 45-53절/사람들에게 버림받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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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24 21:14 조회1,0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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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3-YpN6FlFkk

이 세상 일에는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놀라운 표적을 행하신 다음 유대인들의 반응을 설명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좋아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반대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

45절
나사로가 살아나는 이적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믿지 않을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요한복음 12: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실제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적을 보았다면 안믿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고 인터넷에 뜨고 온 세상이 난리가 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려고 몰려들 것이다. 죽은 지 나흘 되었고 이미 장사를 지냈고 썩어서 냄새가 나는 형편이었다. 그런 나사로를 무덤 속에서 살려서 나오게 하는 이적을 행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본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46절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믿을만한 증거가 분명한데도 예수님을 훼방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줄을 대고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안믿는 것이 이상하고 이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핍박하고 죽일까 의논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불신자들은 증거가 없다, 이해가 안된다고 핑계하지만 사실은 증거가 많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가 수없이 많고 성경이 진리라는 증거가 수없이 많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도 수없이 많다.
내가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계시다는 증거이다. 아버지가 안보여도 못보았어도 그것은 누구나 알수 있고 믿을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창조주가 계시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계시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안믿으려고 작정하면 아무리 많은 이적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는다.
애굽의 바로왕은 열가지 이적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처음 한두개 때에는 모를수도 있겠지만 점점 강력한 이적을 보여주셨을때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를수 없는데 더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천국 갔다오고, 지옥 보고오면 믿겠다고 하는데 안믿을 사람은 안믿는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다. 더이상 보여줄 것이 뭐가 있겠나? 예수님이 이적만 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구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부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이렇게 명확하고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믿을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47절
바리새인들이 비상이 걸렸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자 걱정이 되고 위기를 느꼈다. 예수님을 부정하고 사회에서 몰아내려고 했는데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니 위기를 느꼈다. 부정할수 없는 증거가 나타났으니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산헤드린 공의회를 소집한 것이다. 한지파당 6명씩 72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최고 의결 기관이다.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시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일을 걱정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하는데도 반대하고 선한 일을 할수록 기분이 나쁜 것이다. 참으로 악한 자들이다.
왜 이렇게 반대하고 싫어하는가? 예수님이 이적을 많이 행해서 인기가 높아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것이고 그렇게되면 자기들의 인기가 약해지고 권위가 축소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신가 아닌가, 주님의 말씀이 참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고 믿고 따르자고 하는 차원이 아니고 무조건 반대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분명할수록 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공의회를 시작하면서 기도했을텐데 의논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다.

48절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많은 예수님을 믿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참으로 불신앙적이다. 참으로 악한 사람들이다. 공의회를 모여서 예수님의 이적이 참이냐 거짓이냐, 진짜라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분명한데 우리도 믿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회의를 해야하는데 무조건 반대하고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만 꾸미고 있다.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하 가리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로마 정부에서 걱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내란이 생길지 모르니 군대를 보내 핍박할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들의 마음은 자기들의 권력 유지와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말로는 나라를 위하고 정의를 세우려는 것처럼,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한번도 정치적인 발언을 하시지 않았다. 백성들을 선동하시지 않았다. 안해도 될 일들을 괜히 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고 미움을 받으셨다. 남을 돕고 죽은 자를 살리는 아름다운 일을 하시고 대적을 받으셨다. 주님이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으신 것은 잘못하시고, 실수하셔가 아니다. 선한 일, 의로운 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복된 일을 하시다가 핍박을 받으셨다.
우리도 믿음 지키다보면 억울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고, 주의 일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시비에 휘말릴수 있다.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고난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나아가야 하겠다.

49-50절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가 공의회 중에 일어나서 중요한 발언을 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을 죽이자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로마 군대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백성들도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실제로 이 가야바의 말이 이루어진다. 그는 악한 의도로 한 말이지만 그의 말이 이루어져서 예수님 한 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 구원받고 살게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가야바의 말과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은 약간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의회로 모여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그들은 자칭, 백성들이 볼때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불신앙적이고 악한 교만한 모습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큰 악을 행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성경을 가장 잘 알고 믿음생활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죄를 짓고 있다. 자기들이 기준이 되어서 자기들 의견에 맞지 않으니 예수님이 틀렸다고 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정을 하고 있다.
사람은 실력만큼 교만이 생긴다. 지식이 생기면 교만해지기 쉽고, 힘이 있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외모만큼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자가 아니다. 내가 틀릴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부분만 아는 것이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30년 이상 강의한 목사님이 "성경을 수십번 읽고, 신학교 강의를 수십년 했는데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껴진다. 큰 산이 있으면 개미굴 하나 정도만 아는 것 같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런 자세로 믿음생활 하는 것이 은혜받는 길이고 하나님을 잘 믿을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다 틀렸고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러니까 죽이자는 것이다.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악한 일을 저지른다. 역사에 남는 큰 죄를 저지르고 교만한 일을 행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선다. 실제로 유대인들을 선동시켜서 대모하게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일에 앞장 선다.

51-52절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이 미워서 죽일 목적으로 한 말인데 하나님은 그 말을 다르게 이용하셨다. 가야바의 말의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은 맞지만 가야바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워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게 하시는 일은, 메시야로서, 택한 백성을 구속할 구속자로서,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시려는 목적으로 죽게 하시는 것이다.
가야바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믿지 않는다. 대속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말을 다르게 이용하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시는 놀라운 일을 하셨다.
그래서 결국 주님은 가야바의 말대로 죽으신다. 그런데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가야바 때문에 죽으시는 것이 아니다. 원수들때문에 죽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대적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대적들을 다 물리치셨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고난받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은 주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어난다고 믿어야 하겠다.
가야바가 다른 목적으로 말했지만 하나님이 그 말을 다르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모든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택한 백성들을 대신하여 죽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택한 백성들을 위한 죽으심이다. 인류 전체를 위한 죽음이 아니다. 만인 구원이 아니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죽으셨다. 염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가 아니고 택한 백성을 위해서 죽으셨다. 만인 구원이 아니고 제한적 속죄이다.
52절이 제한적 속죄를 설명하고 있다.

53절
공의회를 열어서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결의하고 그날부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다녔다.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주님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싫어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다. 왜 이렇게 선한 일 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가? 그들이 마귀의 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도 주님을 찾아다녔다.

56-57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누구든지 예수님 있는 곳을 알면 신고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백성들이 "예수님이 명절에 오지 않겠느냐?" 라고 대화를 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실 일을 전혀 하시지 않았는데 고난 당하시고 미움당하실 일을 전혀 하시지 않았는데 미움을 당하셨다.
선한 일 하시고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시다가, 죽은 자를 살리셨다가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게 된다. 선한 일을 한다고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자에게도 환난과 핍박이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고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마태복음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고난과 희생을 감당하면서 참고 인내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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