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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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1 수요예배 설교(요한복음 11장 17-44절/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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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3-31 21:33 조회7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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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_rRZhwWqKvE

베다니 마을에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삼남매가 살았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었다.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 가정에 유일한 남자 나사로가 죽게 되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전했다.
3절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급하게 달려오셔서 고쳐주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위독함을 아시고도 계신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다. 이것은 나사로를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가정의 위급함을 몰라서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속히 오셔서 병든 나사로를 고쳐주시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이틀이나 더 유하셨다가 나중에 찾아가신다.

15절 내가 거기에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빨리 찾아가서 병든 나사로를 살리시지 않고 늦게 가시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늦게 가시는 이유에 대해서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사로의 가족들은 믿지만 동네의 사람들은 아직 믿지 않기로 믿게 하시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으로 믿게 하려는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때 얼른 사람을 보내 주님을 초청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틀이나 더 유하시다가 가셨고, 나사로는 죽은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나중에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더 위대하신 분으로 자신을 알려주셨다.
깡패에게 붙들려간 사람을 살리려면 깡패를 이겨야 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면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셔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을 행하신 것은 주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고, 사망도 이기시는 능력있는 분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심을 알게하는 사건이다.
만약 예수님이 일찍 오셔서 병든 나사로를 고쳤다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병 고치시는 분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무슨 병이든지 낫게하시는 분이라는 것까지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을 행하자 주님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고 믿게 되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믿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기도할때 즉시 응답하시는 것도 더디게 늦게 응답하시는 것도 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께 병 고쳐달라고 요청했는데 늦게 오셨다. 그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늦게 오셨다. 빨리 오셔서 고쳐주신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더디 오신 것도 지내놓고 보면 더 감사할 일이 되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을 주신다.
주님은 이틀을 더 유하신 다음 제자들을 데리고 나사로의 집으로 가셨다.

11절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3절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생각하니라
14절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깨우러 가신다고 하셨다.

17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가 죽은지 이미 4일이나 되었다. 무덤에 장사 지냈다.

21절 마르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더디 오신 것에 대해서 섭섭하고 속이 상해서 이런 말을 했다. 여전히 병 고치실 분으로는 믿고 있지만 죽은 자를 살리실 분으로는 알지 못하고 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주님은 살리러 오셨다.

24절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주님은 지금 살리러 오셨는데, 당장 살려주신다고 하신 것인데 마르다는 지금 당장 살아날 것으로 믿은 것이 아니고 먼 훗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부활이시고 생명이시다. 마르다는 부활을 믿는다고 하기는 했는데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부활이고 생명이야" 그렇게 믿으라는 것이다. 잘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주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 예수님 믿을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생을 받았다. 이 생명은 죽지 않는다.

살아서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거듭나서 산 생명을 가진 성도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체는 죽을수 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는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26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현재 부활과 현재 영생을 소유한 것을 믿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이 질문은 마르다에게 하신 질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활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주님,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사는 생명,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27절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나서 마리아를 부르신다.

32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리아의 마음과 태도가 겸손했다. 우리도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고 간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두 여인이 똑같은 말을 했다. 주님께서 일찍 오셔서 여기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텐데..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 것때문에 죽었다고 몹시 섭섭해 하고 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으로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33절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주변의 많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이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셨다. 부활되시고 생명 되시는 주님이 오셨는데 깨닫지 못하고 나사로가 죽은 것만 생각하면서 슬퍼하는 그들의 무지함을 보시고 안타까워 하신 것이다.

34-35절 그를 어디 두었느냐? 주여 와소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주님이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주님은 계획을 가지시고 더디게 찾아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은 것 때문에 슬퍼했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믿지 못하고 슬퍼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워서 우신 것이다. 생명의 주님이 와계신데 나사로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사로가 불쌍하다고 울었지만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가난한 것 때문에, 살기 힘든 것 때문에, 세상이 갑박한 것때문에 울수도 있겠지만 주님을 모르고 부활을 모르는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릴수 있어야 하겠다.

39절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을 하시면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무덤을 큰 돌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것이다. 돌을 옮기지 않고서는 나사로를 살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돌도 주님이 말씀 만으로 옮기실수 있고 돌을 옮기지 않고서도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오게 하실수 있다. 그런데도 돌을 옮기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사람이 하라고 하신 것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이 돌 옮기는 일이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돌을 옮기도록 말씀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라고 하면 누가 살릴수 있겠는가? 그러나 돌을 옮기는 것은 사람들이 힘을 쓰면 다 할수 있는 일이다. 주님은 이처럼 기적을 행하시면서도 사람이 할수 있는 일은 사람이 하도록 하셨다.
우리도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우리가 힘을 써야 한다. 내가 힘을 써도 안되는 일은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을 옮겨놓고 나사로를 살려내는 것은 주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했다. 돌 옮겨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40절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으면 볼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이다. 세상은 본 것을 믿으려고 한다. 보여주면 믿겠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믿으면 볼수 있다고 하셨다. 믿고 순종하고 믿고 말씀대로 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다.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순종해보라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은 순종해봐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가서 이 말씀이 진리이고, 말씀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1절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43절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죽은지 4일이나 되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왔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큰 은혜인지 알수 없다.
죽은 나사로가 어떻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왔을까? 육신의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온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듣지 못한다. 나사로가 알아듣고 나온 것이 아니다. 죽은 나사로를 주님이 말씀으로 불러내어 살리신 것이다. 말씀에 이런 권세와 능력이 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이 말씀 속에 있다. 예수님이 이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 말씀 속에는 이런 능력과 권세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믿지 않는 자가 믿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기적이 일어날수 있는 것이다.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현장에 있던 자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신기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나사로가 살아났으니 그를 묶고 있는 모든 것을 풀어놓아서 자유롭게 다니도록 만들어주라고 했다. 베로 손과 발을 묶고 얼굴을 수건을 감싼 것 다 풀어버리라고 했다.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난 사람,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옛 관습, 세상에 얽매였던 것 다 풀어버리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새생명을 얻었다. 자유를 얻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꽁꽁 묶어 놓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풀어놓아야 한다. 자유를 누리면서 하나님 순종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거듭나서 새생명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세상 것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 많다. 다 풀어버려야 한다. 완전히 풀어버리고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하겠다.
얽매이고 있던 것을 다 제거해야 자유롭게 다니면서 주님 섬기는 일을 잘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수 있다.
마귀는 세상 모든 것을 이용해서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럴수록 자유를 누리는 길로 가야 한다.
다니엘 1장에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바꾸고, 사는 공간과 먹는 것과 해야 될 일과 시간이 다 얽매여 있었다. 그때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로 다짐 했다. 그는 포로였지만 자유인처럼 믿음을 지켰다.
우리가 말세에 믿음을 잘 지키려면 다니엘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뜻을 정해야 한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사람들의 허락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코로나 예방을 잘 해야 한다. 전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면 안된다. 우리를 얽어 매려고 하는 것, 시체처럼 꽁꽁 묶어버리려는 마귀의 역사가 강력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기고 신앙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인도하신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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