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10418 주일오전예배 설교(마가복음 10장 17-22절/한 청년의 근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4-18 14:44 조회842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UAtqRjqM1Ws

주님이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주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19:22에는 이 사람이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8:23에는 “이 사람이 큰 부자”라고 했습니다. 재산이 아주 많은 큰 부자인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는 이 사람을 가리켜 “한 관리”라고 하였습니다. ‘관리’라는 말만 가지고는 어떤 직책을 가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한 청년이고, 돈이 많은 큰 부자이고, 존경받는 관리였습니다.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었고,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돈으로도 권세로도 명예로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종교 생활에 힘쓰고 율법을 지켰으나 아직 영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믿음 생활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진지한 질문입니다. 오늘 이 내용을 살피습니다.

1. 구원에 대한 오해
17절에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사람의 질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그 댓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으려고 선을 행하고, 노력을 하고, 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고, 구제도 하고, 금욕생활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잘하게 될 때는 ‘이 정도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조금 위안을 가졌다가, 잘못하게 되면 다시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으로 어떻게 양심을 지키고 착한 마음을 가져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선행이나 노력은 어떻습니까? 로마서 3:10-12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인간들끼리 비교할 때 ‘누구는 선하다 누구는 악하다’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다 악한 죄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사람이 노력하고 힘쓴다고 그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데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십니다. 에베소서 2:8-9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 주님에 대한 오해
17절에 보면 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으로 알고 있었으나 구세주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1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언뜻 보면 예수님 자신은 선하지 않고 하나님만 선하다는 뜻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과 대화를 나누실 때 그 사람의 생각과 지식의 정도를 보시고 거기에 맞추어 대답하십니다. 또 질문한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시고 거기에 맞추어 답하십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은 모르고 예수님을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선한 선생이라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을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선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하신 것은 네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 예수님을 사람으로 알지 말고 하나님으로 믿으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훌륭한 선지자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결국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의 비극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믿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열심히 쫓아다녀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한다면 이 청년처럼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는 말씀 속에 또 다른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너도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너도 죄인이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 청년에게 계명에 대해서 물었습니다(19절).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20절에 보면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0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 말을 보면 그는 자신이 계명을 잘 지켰으니 선하지 않느냐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 한 분 외에 선한 이가 없다고 한 것은 ‘너도 선한 자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서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착하고 선하다는 교만한 생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3. 율법에 대한 오해
영생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계명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19절). 10계명 중에서 이 사람이 잘 지켰다고 생각하는 도덕적인 내용들만 골라서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과연 계명을 다 지켰을까요? 21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은 이 한 가지 말씀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다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문자적으로, 형식적으로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래의 의미대로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지키는 것은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근본정신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더 깊은 의미는 모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도 육체적으로만 간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야고보서에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의 근본정신을 알고 지키려고 했으면 자기는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계명을 형식적으로만 지키고 자기를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기준으로 삼고 크게 나쁜 짓 안 하고, 큰 죄만 짓지 않으면 선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살인을 했습니까, 도적질을 했습니까?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조금 바르게 산 것으로 인하여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4. 물질에 대한 오해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망하시고, 잘못을 지적해주시고, 바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믿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스스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만 문제 삼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고 고쳐나가야 성숙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이 한 가지 뿐이겠습니까?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이 밀씀은 예수님을 믿으려면 돈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부자 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물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질은 이 사람에게 있어서 우상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귀히 여기고 더 의지하고 더 두려워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우상을 깨뜨려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22절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사람은 돈을 포기하기보다는 영생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재물을 버리기보다는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하늘에 있는 보화를 버리고 세상의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재물을 선택하였습니다. 물질이 얼마나 강하게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돈의 노예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불행입니다. 이 사람은 재물을 지키려다가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무엇이 최고로 중요한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보다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성도라면 재물이 많아도 괜찮습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믿음 있는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멋진 부자가 되어서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청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했는데 그대로 살기는 어렵고, 말씀대로 안 하면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을 것 같아서 근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근심은 말씀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근심은 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다면 영생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세리장을 지내면서 물질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 스스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삭개오는 구원을 받고 기뻐합니다.
주님은 이 부자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23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마가복음 10:25에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돈이 많은 부자일지라도 마음이 가난하면 괜찮습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많은 것으로 인하여 마음까지 부자가 되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물질을 의지하고 살려고 한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돈과 지식과 권세가 많은 사람이 마음도 부해지기 쉽습니다.
이 부자는 물질을 붙들려다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를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이 한 가지 부족을 고치지 않고 그냥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큰 문제입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한 가지가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 많은 부품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만 고장이 나도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 가지를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가지 일지라도 그 한 가지를 잘 고치고 해결합시다. 하나 때문에 모두 잃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영생을 얻지 못하면 세상 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다 헛것입니다.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믿으면 얻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