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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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주일오전예배 설교(창세기 2장 21-25절/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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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5-09 15:08 조회8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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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0ZPU5evfsPM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것이 두 가지인데 그것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와 함께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가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잠든 사이에 누구도 개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아담은 자기 아내를 직접 고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고 ‘이 사람이 네 아내다’ 그렇게 정해주셨습니다. 건강한 가정이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모습대로 살아가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기본은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 이 부부를 통해 가정을 만들고 이들로 인해 인간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이 세워지고 그들이 자녀를 낳고, 그들이 자라면 결혼시킨 후 부부를 만들어 떠나보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부부를 짝지어 주시고 가정을 세워주셨습니다. 오다가다 만난 것 아닙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를 짝지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갈등하고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면서 주신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가정을 보면서 우리 가정을 말씀대로 세웁시다.

1.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담에게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담을 향해서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결혼의 원리입니다. 결혼이란 부모를 떠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9:5에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에베소서 5:31에는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결혼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첫 번째로 강조한 말씀이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보살펴주신 부모님 곁을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분들입니다. 나의 보호자요 인도자요 사랑으로 돌봐주신 분들입니다. 그런 부모님을 떠난다는 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반드시 부모와 분가해서 따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인들은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해석해 가지고 결혼하면 반드시 분가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해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든 습관과 풍습과 분위기와 환경을 떠나서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서 습관을 만들고 풍습을 만들고 가치관을 조화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혼하기 전의 취미생활, 생활 습관, 친구, 자기가 좋아하는 것 등도 떠나서 결혼한 이후부터는 아내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부모를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모의 그늘에서 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몸은 부모를 떠나서 분가해서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부모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님도 아들을 장가보내고 딸을 시집보낸 후에는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들 빼앗기는 것 같고 딸 빼앗기는 것 같아도 떠나보내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떠나보내야 자식이 행복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간섭하고 참견하면 자녀들이 불행해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자식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부모를 떠나서 부부가 하나 되어야 그 자식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독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결혼한 남녀가 부모를 떠나서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그런 가정이라야 부모공경도 잘하고, 자녀도 잘 돌보고, 일도 잘합니다.

2. 그의 아내와 합하여
24절에 “그의 아내와 합하여”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난 다음에 할 일은 아내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연합한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서 아내와만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이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100% 헌신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부부의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첫째, 부부의 연합은 먼저 육체적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어떤 부부는 한 집에 살면서 남남처럼 별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삶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운명을 함께 하지 않습니다. “부부는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는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외국에 가서 살고 남편은 혼자서 한국에 남아서 돈 벌어서 보내는 그런 가정이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함께 살고 함께 다녀야 합니다. 한 몸이니까요.

둘째, 부부의 연합은 정신적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아모스 3:3에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 되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한 몸이 되어서 살면서도 마음은 하나가 되지 못한 부부들이 많습니다. 부부가 그렇게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부부는 항상 부딪히고 다투면서 삽니다. 부부는 목표가 하나고 삶의 방향이 하나여야 합니다. 고난, 슬픔, 즐거움,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부부의 연합은 영적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신앙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치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다르면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신앙이 다르면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신앙이 다르면 물질관이 다릅니다. 신앙이 다르면 생활방식이 다릅니다. 자녀 교육 방식이 다릅니다. 신앙이 다르면 내세관이 다릅니다. 신앙이 다르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부부가 하나 되려면 영적으로 하나 되고 신앙적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은혜 받아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성경공부 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부부입니다.

3.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에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셋이 한 몸을 이루는 것 아니고, 넷이 한 몸을 이루는 것 아닙니다. 창조 때부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동성연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고 하나님이 세운 가정의 원리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입니다. 일단 결혼하여 부부된 남편과 아내는 더이상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배운 것도 다르고, 살아온 경험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함께 살다 보니 딴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만나서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부부를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이 감자를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감자 두 개를 하나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삶아야 합니다. 그다음 으깨야 합니다. 완전히 으깬 다음에 다시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가 됩니다. 그것처럼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마음, 내 뜻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의 성품과 욕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럴 때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면서도 완전한 새로운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7:4에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한 표현입니까? 부부가 일단 결혼하면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자기 맘대로만 하려는 사람은 하나 되기 힘듭니다. 부부가 이같이 완전히 하나가 될 때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 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하려고 하면 부작용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나무를 접붙였다고 합시다. 참 감람나무를 돌 감람나무에 접붙였습니다. 그 나무가 성장하려면 먼저 완전하게 접붙여져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잘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부부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발전해 나가려면 먼저 완전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4.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에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의 벌거벗은 것을 볼 때 부끄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던 것입니다. 서로가 숨길 것이 없고 감추고 싶은 것들이 없습니다. 비밀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타락하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아름다운 부부였습니까? 참으로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후에는 부끄러움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이 생기게 되었고, 사람 사이에도 원망과 갈등과 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인이 죄 사함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둘째, 상대방의 벌거벗은 것을 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상대방의 허물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부부는 벌거벗은 것처럼 서로가 약점도 알고 허물도 알지만 덮어주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함께 살다 보면 허물도 보이고 실수도 보입니다. 그럴 때 밖에 다니며 떠벌리고 다니면 안 됩니다. 그럴 때마다 덮어주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 부부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잠언 18:22에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우리 부부를 짝지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건강하고 복된 가정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건강해야 자녀들이 건강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국가가 건강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모시고 살면서 복된 가정 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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