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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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0 주일오전예배 설교(사도행전 2장 1-4절/성령충만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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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5-30 15:01 조회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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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sIEgh_iKpfU

성경에 보면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이 크게 다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말씀을 배우고, 수많은 이적과 능력을 경험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삶을 보면 너무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누가 더 높으냐 하면서 다투고 싸웠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찾아와 자기의 두 아들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졸며 잤습니다. 주님께서는 졸며 자는 제자들을 3번이나 깨우며 기도하라고 당부했으나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주님이 붙잡혀 가셔서 고난 당하실 때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삽십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는 말할 것도 없고, 수제자 베드로도 사람들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부활을 이해조차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크게 변합니다. 제자들이 가장 힘써 한 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제자들은 이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하는 이적을 행합니다. 이런 기적을 행하고 난 후 자기를 높이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높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제자들을 불러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할 때 제자들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은가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해보라” 하며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고난을 피해 도망가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기뻐합니다(사도행전 5:41). 이제는 누가 더 큰지 다투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제자들을 이렇게 바꾸었을까요? 그 답은 성령 충만입니다.

1. 예수님의 분부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분부를 합니다. 1장 4-5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a)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잡아 죽인 곳입니다. 원수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잡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난과 핍박이 심한 곳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다른 것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고, 다른 곳에서도 믿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사 2:3, 눅 24:47)
b)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구약 요엘 2: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겠습니까?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한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도들의 기도
주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1장 13-14절에 보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약 120명이나 됩니다.
a) 13절 끝에 “다 거기 있어” 14절 끝에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약 120명의 성도들이 다 거기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곳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들의 모임, 이 연합체가 초대교회가 됩니다. 성령 받겠다고 혼자 산으로 기도원으로 다니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시험들고, 귀신들고,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들은 마음을 같이하였습니다(14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한 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한 그들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마음만 하나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기도합시다.
b)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14절). 이 말은 기도만 힘썼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까지 열흘 동안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한 시간 기도도 쉽지 않고, 하루 종일 기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10일 동안 기도하는 것은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한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려고 할 때 먼저 기도하게 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도 미스바에 모여서 기도하게 하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한나에게 기도를 시키더니 아들을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하게 하시고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도 기도해야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 시간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
2장 1-4절에 보면 기도하던 성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성령님은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임했습니다.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했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성령의 기운,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거기 앉아 있는 온 집에 가득찼습니다. 성령의 전 인격적인 지배입니다. 생각, 사상, 말, 행동, 삶 등 전 인격을 지배한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신비한 영적인 경험입니다. 우리의 심령에도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여기 ‘바람, 불, 불의 혀처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자체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난 표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오순절 이전에도 성령님은 계셨고 역사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영이 역사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 사람들이 성막을 만듭니다.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도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도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보혜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셔서 성도와 함께하시며 성도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구약 시대에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또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와 일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여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과거에도 계셨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공식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큰 차이입니다. 이전까지는 성령이 개인적으로 임시적으로 임하여 역사하셨지만 성령이 한 공동체에 공식적으로 임한 것은 오순절이 처음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입니다. 이 성령은 우리 성도들 심령에까지 들어오십니다. 이렇게 오신 성령님은 성도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가 탄생합니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난 후 나타난 첫 번째 변화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입니다. 바로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여러 나라 방언으로 전도한 것입니다. 외국 말을 배워서 한 것 아닙니다. 사람이 연습하고 노력해서 한 것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시켜서 말한 것입니다. 말하는 것만 성령이 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도들이 물질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이렇게 놀랍게 변했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성령이 교회를 다스렸습니다. 성령이 주도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온 민족이 하나가 되고, 온 언어가 하나가 되고, 온 문화가 하나가 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을 덮게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서로 높아지겠다고 다투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인하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온 교회는 사랑으로 교제했습니다. 그들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용기가 충만했습니다.
그들을 변하게 한 원동력은 돈도 학력도 사람도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그들의 변화는 상황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변했습니다.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제자들 자신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똑같은 제자들이지만 그들의 영적 상태는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성도의 능력은 바로 성령 충만함입니다. 돈이나 권세나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 돈은 헛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군중에 불과합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거쇼과 성령 충만한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성령이 내 안에서 주인노릇 하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8에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만이 성령 충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게 합니다. 성령은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힘이 있습니다.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성도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기쁨으로 참고 견딥니다. 그러면서도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죽어가면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령 충만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7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립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합니다. 육이 강하고 육의 욕심대로 살면 절대로 성령충만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돈이 없어도, 사람이 많지 않아도 큰일을 합니다. 성령 충만한 120명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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