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10620 주일오전예배 설교(갈라디아서 1장 6-12절/다른 복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6-20 15:26 조회778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e56gt4KKnaA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인데 바울이 선교 활동을 하고 돌아와 보니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가르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헛되게 만들며,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복음과 율법을 구별하지 못하고 율법주의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소식이요, 선물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 다른 복음은 없나니
7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그것은 또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은 다른 하나의 복음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성경에 어긋난 것이 복음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그런 것을 듣고 따라가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은혜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책망합니다. 복음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환경에서도 다른 내용으로 변경되거나 대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복음처럼 생겼는데 조금 다른 것입니다. 성경을 안 가르치고 다른 것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아무도 미혹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면서 조금 다르게 가르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아니면 사람들이 가지 않겠죠? 교회는 교회인데 약간 다른 교회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위조지폐는 진짜 돈과 거의 비슷합니다. 아주 약간 다릅니다. 약간 다르지만 그것을 돈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다른 복음은 아주 위험하고 치명적입니다. 복음이 아닌 아주 다른 것이라면 사람들이 속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처럼 생겼는데 약간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참 복음인 줄로 알고 거기에 미혹을 당하고 결국 생명을 잃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단에 미혹되는지 아십니까? 기독교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같은 성경을 사용합니다. 그들도 하나님 믿는다고 합니다. 예배 방법도 비슷합니다. 그들도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가르치는 내용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조금씩 다른 것이 섞여 있기 때문에 속습니다.

2, 다른 복음의 해악
7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첫째. 교회를 교란시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기독교의 일부가 아니라 복음은 기독교 자체입니다.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떠나면 믿음에서, 구원에서, 은혜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변질시키고 바꾸어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생명이 없습니다. 종자를 심을 때에 그대로 심어야 합니다. 종자가 잘생기지 못했다고 그것을 갈고 깎고 다듬어서 예쁘게 만들어 심으면 싹이 나지 않습니다. 호박씨처럼 넓적한 것은 보기 싫어도 넓적한 그대로 심어야 합니다. 감자는 울퉁불퉁하지만 울퉁불퉁하게 생긴 그대로 심어야 싹이 납니다. 복음을 인위적으로 변질시키고 바꾸어 전하면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교란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함.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변하게 합니다. 다른 복음으로 인하여 참 복음이 피해를 봅니다. 다른 복음은 참 복음을 약화시키고, 참 복음을 가리고, 더 나아가 참 복음을 파괴시킵니다. 가짜 교회가 하나 생겨서 나쁜 짓을 많이 하면 그 가짜 교회가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짜 때문에 진짜 교회들이 많은 피해를 봅니다. 바울 시대나 지금이나 복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전하든 미국에서 전하든 복음은 같아야 합니다.

3.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음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복음은 누구나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0절 이하에 보면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과 같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같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융통성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복음은 구원의 전제 조건입니다. 복음을 누구나 전할 수 있지만 그 전하는 내용은 하나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과거시제로서 복음이 이미 그들에게 전해졌음을 나타냅니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들이 이미 전한 복음입니다. 초대교회에 이미 전해졌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이 바울은 복음의 유일성과 그 내용이 확정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 끝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나”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올바른 복음을 전했는데 바울 자신이 타락되고 변질되어서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자기도 저주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천사가 하늘로부터 와서 말씀을 전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명하다는 사람들, 명성 높은 사람들 말이라고 다 믿지 마십시오. 그들이 하는 말이 성경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각대로 임의로 변경시키는 것은 듣는 사람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매우 악한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무너뜨리는 악한 일입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습니다. 성경은 복음의 절대성, 복음의 순수성, 복음의 완전성을 강조합니다. 9절에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처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 경고는 이전에 이미 했던 것이고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4. 다른 복음이 가짜인 이유

첫째. 다른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른 복음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가짜 복음이 다른 복음입니다. 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 보니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매를 맞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굽히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참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려면 진리를 양보해야 되고 인본주의를 써야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죄를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진리를 양보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자기 믿음과 영적 생명이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참 복음을 전합니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바른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둘째. 다른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
11-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다른 복음이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 인본주의적인 가짜 복음입니다. 바울이 전한 참 복음은 인간적 사상이나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계시는 가려져 있던 것을 열어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이 가려져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바울에게 열어 보여주시고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절대 알 수도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 하거나 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듣기에 좋든지 나쁘든지 자기에게 맞든지 맞지 않든지 순수한 그대로 받고 전해야 합니다. 이 계시는 표준계시를 가리키며 이 표준계시는 사도 시대까지 종결되었으므로 사도 시대 이후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표준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계 22:18-19). 지금은 사람이 성경을 보고 배워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도록 해놓았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바울이 증거한 복음이 하나님의 권위를 보증할 뿐 아니라 그의 사도직의 독립성과 정당성 그리고 신적 권위를 증거합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사람의 생각은 완전하지 못하고 사람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탄의 역사를 따라 온갖 이론과 학설로 복음을 변경시키고 타락시켜서 사람을 망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부활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