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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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장 1-25절/ 세례 요한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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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6-30 21:09 조회7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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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wgXrRqT7HbA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했다. 1-4절까지는 누가복음의 기록목적을 설명한 것인데,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들은 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전해준 것을 사실대로 기록한 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했다. 누가는 예수님을 믿고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때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많이 도와준 협력자 역할을 했다.
그래서 누가는 "그 모든 일의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라고 했다. 처음부터 전부 다시 조사하는 자세로 구체적으로 모든 사실을 확인했다. 말씀을 분명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이 4복음서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고, 마태,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예수님에 대한 사건들이 40%이상 더 많다. 성경 장수로는 마태복음이 많지만 페이지 수로 보면 누가복음이 더 많다. 누가가 자세하게 많은 사실을 조사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조사해서 기록한 것을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다고 말한다. 그가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지만 보다 확실하게 더 많이 알수 있도록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탄생부터 시작을 한다.

5절
세례요한의 부모를 소개하고 있다. 요한의 아버지의 이름은 사가랴이고 그는 제사장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았다. 모든 계명과 규례를 흠없이 행하면서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믿음을 잘 지키고 경건하게 사는 부부였는데 이 가정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7절
그 가정에 자녀가 없었다.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자녀가 없었다. 오랫동안 자녀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13절에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했다. 기도가 하나님 앞에 들렸다고 하고 아들을 낳아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자녀를 위해서 계속 기도한 것이 분명하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자녀를 주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13절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주시고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자, 은혜로 주신자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4절
그리고 천사는 요한의 탄생이 부모의 기쁨인 것은 당연하고 많은 사람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요한이 태어나는 것이 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될까?

15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많은 사람이 그의 태어남을 기뻐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첫째로 그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된다고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큰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격이 크고 믿음이 크고, 깨달은 진리가 크고, 예수님을 밝히 알고 증거할 자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큰 권세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큰 자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세례요한은 큰 자가 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광야로 들어가서 고생하면서 자라난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광야에서 외롭고 쓸쓸히 지내면서 훈련받았다. 나중에는 헤롯왕의 죄를 지적했다가 감옥에 갇힌 후에 순교당하게 된다. 약 30세의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
세상적으로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을 가리켜 주 앞에서 큰 자라고 했다. 영적으로 위대한 자, 믿음이 크고 깨달은 진리가 큰 자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셨다. 세례 요한이 깨달은 진리가 크고 믿음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세례요한은 신약에 소개가 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말라기 이후에 약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중단된 상태로 400년의 암흑시대가 이어진다. 그런 후에 400년만에 세례요한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백성들을 깨우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한다. 그가 깨달은 진리가 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요한에 대해서 큰 자라고 한 것이다. 당시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메시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주님이 오셨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 경배하지 않았다. 세상 지위는 높고 종교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요한은 주님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증거했다. 불로 세례를 주실 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구원주), 키를 가지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실 분(심판주), 그리고 자신은 주님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치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주님이 위대하고 크신 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자기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심을 밝히 증거했다. 이렇게 깨달은 진리가 큰 것을 가리켜 그를 주 앞에서 큰 자라고 한 것이다.
우리도 영적으로 큰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믿음이 크기를 소원하고 말씀을 잘 배워서 진리를 많이 깨달아 큰 자가 되어야 하겠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날때부터 포도주나 독한 술을 금한 것은 나실인의 특징이요 생활 방식이다. 태어날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자,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 자로 구별된 자였다. 세례요한은 하나님 앞에 구별된 거룩한 자로 생활을 해나가갔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자가 아니라고 했다. 부드러운 옷을 입는 사치스러운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선지자보다 더 큰 자라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신다. 그만큼 위대한 자, 믿음 있는 자로 소개하고 있다.
요한이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구별된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았다.
오늘날은 점점 세속화가 되고 있다. 그래서 육체중심으로 기울어져 있다. 편리함과 세상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앞에 소개한 것처럼 세례요한은 그런 것을 철저하게 끊고 세상 재미를 다 초월해서 광야에 들어가서 주님과 교제하기를 힘쓰고 영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것이 세례요한의 독특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으로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세례요한처럼 광야에 들어가서 살수 없지만 그가 추구했던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모든 믿는 자가 추구해야 하는 거룩한 삶이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참으로 크신 은혜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가 무슨 기도를 했겠나? 무슨 의식이 있었겠나?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

41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한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받을때 엘리사벳 복중에 있는 요한이 뛰놀았다고 했다. 마리아 복중에 계신 예수님이 방문하니 요한이 뛰논 것이다. 어머니 복중에 있는 아이도 이같이 성령충만할수 있다. 어머니 복중에 있는 아이도 참 생명체요 인간이다. 이런 어린 아이까지도 성령충만할수 있다. 성령충만은 어른들만 받는 것이 아니다. 어른 되어서 나이 많아서 기도 많이 해서 성령충만한 자들이 많겠지만 어린 아이들도 성령충만할수 있다. 심지어 복중의 태아까지 성령충만할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낙태를 반대하는 것이다. 세상은 낙태를 자유로운 선택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오늘날 자녀들이 온갖 세상문화에 빠져 지낸다. 세상문화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 자녀들을 복중에 잉태했을 때부터 믿음으로 자라도록 기도많이 하고 태어난 아이도 믿음으로 잘 자라날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하겠다.

67절에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 전체가 성령충만한 가정이었다. 온 식구들이 성령충만하고 은혜충만한 모습으로 살면 가정이 천국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도 이것을 사모하면서 힘써 나가야 하겠다.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여기 두 모습이 나온다. 성령이 충만한 자들, 성령이 심령에 오셔서 은혜로 가득 채워준 사람들이 나오고, 사탄이 그 마음에 가득차서 지배하고 그를 사로잡고 역사하는 자들이 나온다.
성령이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충만한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가? 아니면 원망이 가능한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복을 우리가 받기를 소원해야 하겠다.

에베소서 5:18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취하는 것과 성령충만을 대조해서 설명한다. 술취하면 성령충만할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반대로 성령충만하려면 술을 멀리해야 한다. 세상에 취하면 안된다. 술에 취하면 술에 지배를 받게 된다. 성령충만하면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는 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취하면 안되겠다. 세상 물질이나 쾌락에 지배받지 말고 성령충만한 자리로 들어가야 하겠다.
성령충만해지면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신비주의는 성령충만하면 불받아서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성령충만해지면 아주 상식적이고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한다. 죄를 떠나서 깨끗하게 살게 한다. 바른 생각을 갖게 만든다. 생각이 건전해지고 의로워진다. 성령충만하면 은혜로운 말을 하게 된다. 예의 바르고 합리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된다. 내가 손해보면서라도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에 앞장을 서게 된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희생정신을 보였다. 그리고 복음전하는 일에 힘을 쓴다. 핍박 받으면서도 손해보면서도 힘을 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아서 감사하며 찬송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오해하면 안된다. 불 받아야 성령충만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남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참을수 없는 것을 참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게 된다.
예수님이 성령충만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답고 건전한 모습으로 사셨다. 우리도 성령충만해서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다.
요한의 가족 모두가 성령충만했다. 온 가족이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모습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소망하며 추구해야 한다. 정말 본받고 싶은 가정이 이런 모습이다.

16절
세례요한이 말씀을 잘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증거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할 것을 말씀하셨다. 요한이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나중에 세례를 베푼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을 증거한다. 예수님을 깨닫고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나중에는 세례요한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을 예수님을 따르게 한다. 이런 모습이 세례요한의 훌륭한 점이다. 그래서 그가 태어남을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17절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일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엘리야가 죄를 미워하고 안타까운 심령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힘을 썼다. 아합와 이세벨의 악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갈멜산에서 바알 아세라 숭배자들과 전쟁해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세례요한도 그같은 심령과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주앞에 돌아오게 하기를 힘썼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힘썼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큰 자요 많은 사람이 그의 태어남을 기뻐한 것이다.

우리가 요한에 대해서 배우면서 우리도 세례요한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서야하겠다.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을 이와같이 길러야 하겠다. 하나님 앞에 귀한 자녀들 되도록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잘 기르기 위해서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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