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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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1 주일오전예배 설교(고린도후서 1장 3-9절/고난보다 더 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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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7-11 14:28 조회8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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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xG3cHJuOcnI

배고플 때 먹는 밥은 맛있습니다. 땀 흘려 일한 다음에 쉬면 참 즐겁습니다. 감기 몸살을 앓다가 회복되면 아주 상쾌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위로입니다. 만약 우리 인생에 위로가 없다면 세상을 살아갈 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보다 살기 좋아졌고, 편리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기쁘고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돈은 많아졌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은 풍성해졌는데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고난의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이 끊어지고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그러한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풍성하게 경험했다고 밝힙니다. 환난과 시험이 많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위로를 주시는데, 이 위로야말로 고난을 이겨나갈 만한 힘과 용기를 갖게 합니다.

1. 고난은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임
인생의 삶에 고난이 참 많습니다. 죄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 질병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 인간관계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 남을 돕다가 당하는 고난, 믿음 지키다가 당하는 고난 등 평생을 고난 속에서 살아갑니다. 욥기 5:7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입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1:12에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위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4에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는데 ‘곁에 오셔서 돕는 분’ 또는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직접 사람을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 위로자이십니다. 우리가 고난의 현실 속에서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위로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위로하십니까?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중요한 것은 “모든 환난 중에서”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 많지만 그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여 눈물 흘릴 때 하나님께서 모든 사정을 아시고 위로하십니다.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예수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믿음을 지키느라 고난 당하고, 복음을 전하느라 고난 당하고, 주의 일 하느라 고난 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바울이 그런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수없이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앞장서서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고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봉사하고 앞장서서 일하다 보면 고난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섬기며 고난 당합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느라고 당하는 고난도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넘치는 위로를 주십니다. 5절 끝에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여기 보면 “넘치는 위로”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본문에 위로라는 말이 무려 1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위로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위로”는 헬라어 ‘파라칼레오'는 “자기 곁으로 부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심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신 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18:9-10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박해를 받을 때 주께서 범에 환상 가운데 말씀을 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3:11에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데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분쟁이 일어나 바울이 죽을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오셔서 “담대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사도행전 27:23-24에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데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14일 동안이나 먹지도 못하고 풍랑에 밀려다니면서 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 곁에 찾아와서 말씀합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참으로 큰 위로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디모데후서 4:17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노년에 로마 감옥이 갇혀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을 때입니다. 전에 함께 하던 사람이 다 떠나고 추운 겨울에 감옥에서 지내고 있을 때 주께서 바울 곁에 오셔서 바울을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겠습니까? 이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 찾아오시고 모든 고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고난은 사명을 발견하는 시간임
우리는 고난 중에 받은 위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은 이중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보다 더 고난을 당하고, 남보다 더 어려움을 당하고, 남보다 더 큰 아픔을 당하면 그것에 사명이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훈련입니다. 어떤 일에 훈련을 많이 시키는 것은 그 일에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 하셔서 그 환난을 능히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욥이 큰 고난을 당할 때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위로하려고 찾아왔는데 사실 위로는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만 더 주었습니다. 고난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고난 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먼저 당해 보고 체험해보고 겪어봐야 제대로 알고 어려움 당한 사람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통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아둘람 굴로 도망하여 숨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한결같이 환난 당하고, 빚을 지고, 원통한 일을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사울 왕의 폭정에 시달린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이라면 자기들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사명을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은 어머니가 넷이나 되고, 배다른 형들이 열 명이나 있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더구나 요셉의 친어머니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일찍 죽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런 요셉을 형들이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애굽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합니다. 충성되게 일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지만 얼마 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왜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까? 사명 때문입니다. 가족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려고 요셉을 미리 애굽에 보내 훈련시킨 것입니다. 애굽의 말과 문화를 익히고 애굽의 생활을 체험해보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훈련이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서 40년 동안 고생하게 하셨습니까?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광야를 통과해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는 계획과 사명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길을 찾는 법, 천막 치는 법, 위험에 대처하는 법 등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미리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 받고 훈련받게 하신 것입니다.

3. 고난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듬
8-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자기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동정을 사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가라앉듯이, 바울이 당한 고난은 자신의 힘으로는 견디어내기 어려운 가혹한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때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바울 자신이 생각할 때 어떤 구원의 방법이나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방법과 노력과 자신의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참된 위로와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통감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나 환경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려면 큰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될 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극심한 환난을 당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모도, 자식도, 의지할 것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9절에 있는 말씀처럼 자기를 의뢰하지 않게 되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평안하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고난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고난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어줍니다. 고난을 당해야 인생의 깊이를 알고, 고난을 당해야 삶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면 주께서 건지십니다. 고후 1:10에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시기입니다. 고난 때문에 힘이 들고, 고난 때문에 눈물이 나고, 고난 때문에 낙심이 될 때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화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고난보다 더 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오셔서 힘주시고 위로하실 줄 믿습니다. 고난을 잘 이기면 훗날 다른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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