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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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5 주일예배 설교(창세기 31장 43-55절/아름다운 갈르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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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7-25 16:11 조회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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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K6n3aQGmZB0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지낸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을 보고 외삼촌의 가족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절에 보면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자기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자기 아버지의 소유로 재물을 모았다고 말하는 것을 야곱이 들었습니다. 2절에 보면 외삼촌 라반의 안색도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을 위해 2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하며 일해 주었는데 칭찬은 고사하고 욕만 먹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재산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셔서 부자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외삼촌의 식구들은 야곱이 부자 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3절에 보면 때마침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4절 이하에 보면 야곱이 아내들과 의논하니 아내들도 다 자기 아버지 라반을 싫어하면서 떠나자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외삼촌 모르게 도망칩니다. 20절 끝에 “말하지 아니하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라반이 양털 깎으러 간 사이에 몰래 도망쳤습니다. 혹시 라반이 가지 못하게 하거나 자기의 재산을 빼앗아 갈까봐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렇게 도망한 것은 잘못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이며 장인인데 20년이나 함께 살다가 말도 없이 도망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20년 전에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 때문에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왔을 때 외삼촌이 받아주고 보살펴주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외삼촌에게 말하고 정정당당하게 떠났어야 합니다.

22절에 “삼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외삼촌 라반은 3일이나 지나서 야곱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라반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심히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라반은 분노로 가득 차서 형제들을 데리고 야곱을 잡으러 갑니다. 23절을 보면 라반은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7일 동안 쫓아가서 야곱 일행을 따라잡았습니다. 야곱도 부지런히 가고 있었을 텐데 그것을 7일 만에 따라잡은 것을 보면 라반이 분노로 가득차서 밤낮으로 불같이 쫓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쫓아갔을까요? 인사하려는 것일까요? 야곱의 소유를 다 빼앗거나 죽이려고 쫓아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라반에게 꿈을 통해 지시하셔서 야곱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1. 하나님 말씀 때문에 해하지 못함
24절에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 그러므로 라반이 야곱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꿈에 라반에게 지시하지 않았다면 야곱을 죽이고 그의 소유를 다 빼앗았을 것입니다. 선악 간 말하지 말라’는 말은 야곱이 잘했든 잘못했든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실수를 많이 했고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위기에 처했음을 아시고 그 상황 가운데 개입하시고 야곱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도 이렇게 찾아와 도와주십니다. 라반은 하나님 말씀 때문에 애곱을 죽이지 못하고 다른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속이고 도망친 것을 책망합니다.
26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외삼촌 라반은 길르앗 산지까지 쫓아와서 야곱을 만나 책망합니다. “네가 나를 속이고” 사실은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더 많이 속였습니다. 야곱이 결혼할 때 속이고 품삯도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말없이 떠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이나 끝장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안 볼 것처럼,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사람은 끝맺음을 잘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하면 다 좋아 보이지만 마무리를 못하면 다 나빠 보입니다.
29절에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라반에게는 야곱을 해할 만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에 찾아오셔서 금하시므로 야곱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미워했던 마음도 버리고, 복수하려던 마음도 접었습니다.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야곱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려고 했던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또 반대로 안 하려고 했던 것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은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만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하나도 잡지 못하자 새벽녘에 그물을 씻고 고기잡이를 그만두려다가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실 때 순종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악한 일을 계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인입니다. 가인은 제사를 잘못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몹시 분해서 안색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했지만 가인은 듣지 않고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에게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발람 선지자도 그런 사람입니다. 모압으로 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결국은 모압으로 가서 큰 죄를 짓습니다. 이스라엘 망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결국은 자기가 망합니다. 가룟유다도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려던 일을 그만두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드라빔 도둑질 한 것을 추궁합니다.
30-35절을 보면 라반은 자기가 아끼는 드라빔을 왜 도둑질했느냐고 따집니다. 드라빔은 우상의 이름인데 일종의 가정 수호신입니다. 라헬이 그 드라빔을 아무도 모르게 훔쳤습니다. 라반은 드라빔을 찾는다고 야곱의 장막을 일일이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야곱이 크게 노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을 향해 따지며 항변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마치 죄인처럼 취급을 당하다가 외삼촌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울분을 터뜨립니다. 추격을 당하고, 비난을 받고, 도적으로 몰려 짐 수색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야곱이 20년 동안 외삼촌의 양을 치면서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여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충성하였고 도적이나 악한 짐승이 양을 물어 가면 자신의 양으로 그 대신 보충시켜 주었는데 자기를 도적으로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억울하고 분해서 따진 것입니다.

2. 가족이기 때문에 해하지 않음
43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이것을 보면 라반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 자기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집 보낸 딸들도 자기 딸이라고 하고, 야곱의 자식들도 자기 자식이라고 합니다. 야곱이 일해서 얻은 얼룩무늬 양 떼도 자기 것이라 하고, 보이는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라반은 또 자기 딸들과 자식이기 때문에 해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악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보면 상황이 제대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의 분노, 섭섭함, 증오 때문입니다. 라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라반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보니까 야곱은 적대시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사위이며 가족이라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들을 복수하고 죽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싸우고 있는 대상들은 다 우리의 가족입니다. 우리가 원수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바로 우리 형제이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라반은 자기의 딸과 손자들을 자기의 손으로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라반은 드디어 정신을 차립니다. 라반은 더 이상 사위와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화해를 생각합니다.

3. 돌기둥을 세우고 언약을 맺음
44절에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드디어 라반은 화해의 몸짓을 합니다. 그래서 서로 언약을 세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합니다. 야곱도 거기에 응합니다. 45-46절에 보면 야곱은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웁니다. 창세기 28:18에 보면 야곱이 첫 번째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세운 돌기둥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살겠다는 증거의 돌기둥입니다. 이곳에 세운 돌기둥은 두 번째인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싸우지 않고 화평하게 지내겠다는 언약을 맺고 세운 돌기둥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고 해서 큰 무더기를 세우고 그 곁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언약을 체결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돌기둥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이 “갈르엣”입니다(47절). 갈르엣’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50절에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라반이 야곱과 화해조약을 맺은 후 두 가지 부탁을 합니다. 먼저 딸들을 박대하지 말고 잘 대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음으로는 다른 여자를 아내로 얻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라반이 아버지로서 딸들을 염려하는 말들을 합니다. 51-53절을 보면 라반과 야곱이 그 돌무더기를 경계로 하여 서로 넘어가 해하지 않기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싸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서로를 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심히 창성하여 큰 국가의 세력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의 세력이 지금은 숫자가 적고, 미약하지만 장차 반드시 큰 세력이 될 것을 라반이 알고 피차간에 해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54절에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라반과 야곱이 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서 함께 떡을 먹고 화평한 가운데 하룻밤을 지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화해하고 작별하게 되니 라반과 야곱이 피차 기쁜 마음으로 헤어졌습니다. 55절에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놀라운 일입니다. 전날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화가 나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라반이 야곱의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축복하고 헤어집니다.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쌓였던 갈등과 원한이 다 풀어졌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던 마음이 다 풀어졌습니다.
우리 가정과 직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화해를 청하십시오. 용서를 구하십시오. 함께 음식을 나누며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찾아오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태복음 5:9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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