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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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3장 15-22절/예수님에 대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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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8-04 21:15 조회8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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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ow6Mw6Cobco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다.

15절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말씀을 증거하는데 그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많았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그 가운데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례요한의 삶이 기이하다. 그가 전하는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었다. 회개의 말씀을 전하는데 많은 사람이 찔림을 받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거기에 대해 요한은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힌다.

요한복음 1:20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요한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니면서도 그런 것 처럼 하고 있으면 큰 오해가 생기고 나중에 잘못하면 거짓 선지자가 되고 이단이 된다.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아서 망할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아닌데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면 사람들도 망하게 하고 자기도 망하는 일이다. 요한이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 것이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러면서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밝혔다.

16-17절
자신의 할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가 위대하시고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물세례는 죄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해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요한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리스도는 요한보다 능력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특별히 비유로 말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사막기후에서 살았기에 요즘 슬리퍼, 샌들같은 신발을 신었다. 신발끈을 묶고 푸는 일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다. 세례요한은 자신에 대해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기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종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창조주이신 주님과 자신을 비교할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능력이 많으실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대하신 분이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았고 자신에 대해서도 바로 알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창조주요 구세주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고 자신은 피조물이요 종노릇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바로 알았고 자신에 대해서 바로 알았다. 우리도 세례요한의 겸손을 배워야하겠다. 주님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면서 얼마나 존귀하시고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하고 추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점점 겸손해져야 하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쓰신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증거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요한의 세례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만들어서 예수님께로 나아가 예수님을 믿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이다. 직접 죄를 사하고 죄를 없애고 죄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실 것이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씻는 표로,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죄를 도말하고 완전히 불로 태우는 것처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한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성령 세례와 불 세례는 동일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불세례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내용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때 뒤로 넘어지면서 땅바닦에 뒹구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불세례는 성령에 의해서 죄사함 받고 깨끗함을 입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 성령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을때 죄사함을 받는다. 죄에서 깨끗함을 입어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17절
예수님께서 심판주이신 것을 증거했다. 16절은 성령과 불로 죄를 사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구원주의 측면을 강조했다면 17절은 심판주이신 주님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 심판을 베푸신다. 택한 백성은 구원해서 천국 창고로 들어가게 하시고, 불택자는 심판의 불로 던지실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중요한 두가지를 말했다. 주님은 구원주, 심판주이시다. 구원과 심판은 같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 중간은 없다. 구원과 심판 밖에 없다. 심판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어서 믿음을 잘 지키고 주님 오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아야 하겠다.

바람이 불면 쭉정이는 날라가지만 알곡은 남아있다. 쭉정이가 날아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다. 쭉정이 이기 때문에 날아가는 것이다. 같은 바람에 알곡은 날아가지 않는다. 환난의 바람이 불고 많은 시험이 말세에 일어난다. 그래도 알곡은 날아가지 않는다. 믿음 있는 자는 주님을 버리지 않고 환난에 쓰러지지 않는다. 바람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람 불고 창수가 나서 홍수가 나도 반석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진다.
주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놓으신다. 그러므로 믿음 잘 지켜서 마지막 심판때 알곡으로 남아 천국 창고로 다 들어가야 하겠다.

18-19절
백성에게는 좋은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헤롯에게는 책망을 했다.
요한이 이 두가지 일을 했다.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오실 그리스도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지 가르쳤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헤롯왕에게는 책망을 했다. 책망의 이유는 헤롯이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 재혼을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악한 일을 했다.
그 헤롯왕에 대해서 세례요한이 책망했다. 왕을 책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례요한이 생명 내놓고 믿음으로 책망한 것이다. 그가 참 선지자이고 참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라도 죄를 지으면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요 책임이다.
헤롯은 책망을 들을 때 고치고 회개해야 하는데,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그 위에 한가지 악을 더하여" 지금까지 지은 죄도 많은데, 한가지 악을 더했다. 이것이 헤롯의 모습이다. 한가지 악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둔 것이다. 자기를 책망했다고 옥에 가두었다. 나중에 헤로디아의 간교에 빠져 세례요한을 참수한다.
요한은 순교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은 자가 된다.
요한이 회개를 외칠때 그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찔림을 받았다. 그래서 무리들과 세리들과 군인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면서 회개하고 믿음의 길로 가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복있는 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헤롯왕은 지적받았을 때 회개는 커녕 더 큰 악을 행한다. 그가 얼마나 큰 죄인이요 복을 못받을 자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복받을 사람은 죄를 많이 짓지도 않지만 조금 지은 죄도 회개하기 위해 애쓴다.
우리가 헤롯왕처럼 미련한 길로 가면 안되겠다. 말씀을 듣다보면 찔리는 말씀이 있을수 있다. 그럴때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나를 고치고 믿음의 길로 서야 하겠다.

21절
요한은 무리를 위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찾아와서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다.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물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례를 받으셨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나서 세가지 놀라운 은혜의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 하늘이 열렸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문, 은혜의 문, 신령한 축복의 문이 열렸다. 세례와 함께 하늘문이 열리고 천국이 임했다. 하늘문이 열린 것은 기도 응답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하늘문이 열리면 세상에 막힌 것도 다 열린다. 하늘문이 닫히면 세상 축복의 문, 은혜의 문도 닫힌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시기 전에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았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은혜가 충만한 모습으로 감격스러워 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하늘이 늘 열려있어야 하겠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은혜를 부어주실때 우리의 심령이 하늘의 은혜로 만족을 누려야 하겠다. 예배 드리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교제하는 신령한 문이 열리기를 소원해야 하겠다.

둘째,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제로 강림하셨다. 성령은 영이시다. 보이지 않는다. 비둘기 같은 형제로 오신 것은 비둘기는 온유와 겸손을 상징한다. 그리고 비둘기는 새 중에 제물로 바쳐지는 새이다. 예수님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나중에 십자가 제물로 바쳐지실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령이 강림하셔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귀한 일을 해나가셨다. 우리도 성령충만한 가운데 살아야 하겠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믿는 일을 감당해야 하겠다.

셋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는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렸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아들로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세례받으실 때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다. 영원전부터 성자 하나님으로 계셨다. 세례받으셨을 때부터 공적인 메시야의 사역을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실때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이다. 뿐만 아니라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자녀를 키워보면 내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기뻐하지만 기뻐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이시면서 기뻐하시는 아들이시기도 한다. 주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주님과 함께 해주셨다.
우리도 주님처럼 이렇게 살아갈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주님은 항상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항상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다. 그랬더니 혼자 두시지 않고 늘 함께 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동행해주셨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이 흐뭇해하시고 큰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님처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우리도 다 세례를 받았다. 세례 받은 자로서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했다.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
주님은 구원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며, 심판주,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신다고 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좋은 말씀으로 권해주었다. 헤롯왕에게는 책망을 했다. 왕의 죄를 지적하고 꾸짖었다. 그러다가 옥에 갇히고 순교당했지만 담대하게 말씀을 외치고 권세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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