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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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9 주일예배 설교(누가복음 15장 25-32절/큰 아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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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8-29 15:12 조회951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hOEtnMTGino

본문은 집 안에 있었던 큰아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이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밭에 나갔던 큰아들이 돌아옵니다. 집에 가까웠을 때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종을 불러서 묻습니다. “무슨 일인가?” 종이 대답하기를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큰아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8절에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큰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집에 들어오니 이번에는 큰아들이 집을 나가려고 합니다. 큰아들이 왜 노하였으며, 왜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했습니까? 이 큰아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살피고자 합니다.

1.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함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아버지는 날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날마다 고대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큰아들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푼 아버지를 못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심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난 죄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심정,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4절).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한다 했습니다(7절).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에스겔 18:23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흉악한 강도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2.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을 때, 이 집 나간 아들을 걱정하고 찾는 책임이 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아들에게도 자기 동생을 찾을 책임이 있습니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 환영하고 반기는 일도 아버지 혼자서 할 일이 아니고 형으로서 당연히 동생을 반기고 환영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자기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집 나간 동생 때문에 고통받지도 않았고 그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동생을 위해 잔치하는 것까지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30절에 보면 큰아들은 자기 동생에 대해서 “동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제를 형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와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2절에 “이 네 동생”이라는 표현은 아버지께서 의도적으로 강조한 말입니다. ‘이 아들은’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너의 동생’이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말입니다. 집안에 있을 때만 형제고 집을 나가면 형제가 아닙니까? 착한 일을 하면 동생이고, 방탕하고 타락하면 동생이 아닙니까? 큰아들에게는 무엇보다 형제에 대한 사랑, 동생에 대한 애정이 없었습니다.
30절에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동생에 대한 큰아들의 생각입니다. 큰아들은 동생의 잘못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가지고 간 것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 자기 몫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의 살림을 몽땅 먹어버린 것처럼 말했습니다. 더 나가 큰아들은 동생이 돌아온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나갔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 것이지 왜 또 돌아왔는가? 너는 동생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다’ 이것이 동생에 대한 형의 생각입니다. 얼마나 싫어했으면 이번에는 자기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겠습니까? 성경에 이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저 사람은 교회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 사람이 교회 나오면 내가 교회에 안 나간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큰아들의 모습입니다.

3. 아버지 명을 어김이 없다고 함
29절에 보면 큰 아들은 자기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집을 나가지 않았고, 재산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허랑방탕하지도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 있는 동안 계속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섬겼습니다. 집안일을 다 맡아서 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아니하고 율법을 잘 지키고 의를 행했습니다. 다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큰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었겠습니까? 그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에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회개하고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고 그 동생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에도 큰아들은 그 명령을 싫어하며 거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말하면서 남을 정죄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한다고 하면서 남을 비판합니다. 의를 논하고 공평을 논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2:37-40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어떠합니까? 나는 다 옳고, 나는 다 의롭고, 나는 다 잘했고, 다른 사람만 잘못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까?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잘못은 인정하고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자기에게 준 것이 없다고 함
29절에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큰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염소 새끼도 안 주는 아버지, 아주 인색하고 사랑이 없는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에게 분깃을 정해주신 아버지께서 큰아들에게도 분깃을 정해주셨습니다(12절). 방탕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아버지라면, 아버지 밑에서 충성되게 일한 큰아들에게는 얼마나 더 잘해주시겠습니까? 그럼에도 큰아들은 염소 새끼 한 마리 안 잡아주고 일만 시키는 아버지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31절에 보면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큰아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는 사랑하지 않고 동생만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서 돈을 쓰면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이 적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애정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질 아까운 것만 생각하고 동생이 귀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생을 형제로 대하지 못하고 시기의 대상, 미움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아버지가 동생만 편애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까?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에게 송아지 잡아 준 것이 편애가 아닙니다. 정당한 일입니다. 그것은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속이 좁은 큰아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놈이 안 돌아왔으면 저 송아지도 다 내 것이 되었을 텐데, 저 둘째가 없었으면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인기와 영광을 독차지했을 텐데. 저 녀석만 없었으면 내가 이 집에서 왕인데, 저 녀석이 나타나서 내 것을 다 빼앗아가고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9절에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뜻은 자기가 집에서 아버지를 섬기느라고 힘들게 고생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큰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면서 기쁨과 감사로 섬긴 것보다 의무감을 가지고 섬긴 것 같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감사함으로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큰아들은 아들이면서도 아들처럼 살지 못하고 종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계산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품삯을 받으려고 하는 종처럼 계산적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내가 이렇게 수고하는데도 누가 알아주거나 인정해 주지 않고 염소 새끼 한 마리 보상해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 일에 쓰임 받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의무감이나 부담감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염소 새끼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고, 양자로 삼아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염소 새끼가 문제입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합니까? 보상 때문에 일합니까?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일합니까? 일하고 나서 품삯이나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종입니다.

5. 마음은 집 밖을 동경하고 있음
둘째 아들은 비록 몸은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집 밖에서 방황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고 아버지 집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품꾼으로 지낼망정 내 아버지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의 마음은 반대입니다. 비록 몸은 집을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집 밖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한 번도 즐기지 못하고, 집안에서 고생만 하고 있다’면서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 이런 모습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이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의무감으로 교회는 나오고 있고, 마지못해 봉사는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아무 기쁨이 없는 상태는 아닙니까? 때때로 교회 밖에서 방탕하며 타락한 생활을 하는 세상 사람들을 그리워하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분은 큰아들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 방탕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이 집안에서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잘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집 안에 있는 큰아들이, 집 밖에 있는 탕자보다 마음이 훨씬 추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집 안에 있는 큰아들이, 집 밖에 있는 탕자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탕자는 집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저 세상 사람들만 탕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우리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몸은 집 안에 있지만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복음의 참 의미와 감격을 잃어버린 채, 대접만 받기를 원하고, 자기의 특권만 내세우기에 급급하고, 남을 용서할 줄 모르고, 비판과 정죄만 일삼고 있다면 우리가 큰아들과 같습니다. 집 안에 있는 큰아들도 분명히 죄인입니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큰아들도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큰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기쁨의 잔치를 함께 먹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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