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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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5 주일예배 설교(히브리서 11장 1-3절/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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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9-05 15:23 조회6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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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Lvj96IKLvb8

교회를 다니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절대적 요소이며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신자들에게 믿음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순수하고 강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거짓 믿음’을 가진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할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병든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중요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 믿음의 대상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의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즉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참믿음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보면 정성이 대단하고 또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참 간절합니다. 그들은 무당이 써주는 부적이나 점쟁이가 해주는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믿음이 좋다’라고 말하지 않고 ‘미신을 쫓는다.’고 말합니다.
미신과 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헛된 것 즉 우상을 믿습니다. 그들은 신이라고 생각하고 섬기고 있지만 실상은 헛된 것이고 마귀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믿으면 바른 신앙이고, 죽은 것이나 거짓된 것을 믿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신앙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믿음’은 사색이 아닙니다. 혼자서 명상하고 철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신앙에는 ‘나는 무엇을 믿는다.’라고 하는 분명한 신앙의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람보다 못한 것을 믿어서는 안 되고, 못 믿을 것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허무한 것을 믿거나, 거짓된 것을 믿거나, 썩어 없어질 것을 믿거나, 생명이 없는 죽은 것, 예를 들면 해, 달, 별, 나무, 돌, 짐승, 사람, 손으로 만든 것 등을 믿는다면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참 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10:10에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신명기 4:39에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헛된 것을 믿으면 일평생 신앙생활하고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2. 믿음의 근거
둘째로 중요한 것은 믿음의 근거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믿고,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주장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믿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3절에 “믿음으로... 아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보고 아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증명해보고 아는 것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압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개념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란 것은 일종의 신념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의 기분이나 지식이나 생각이나 신념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기분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신념은 자기 속에서 생긴 것입니다. 기분이나 신념은 개인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런 것과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근거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성경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서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했으니까 믿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성경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했으니까 믿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성경에 예수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참믿음은 내 기분이 아니고 내 생각도 아니고 내 신념도 아닙니다.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생겨나고, 말씀을 통해서 자라납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내용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 성경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습니다. 그러면 죽었던 영혼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3. 믿음의 특성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히브리서 11장 1절로 답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나 이 말씀은 믿음의 정의를 말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특성과 결과를 말한 것입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기에 보면 믿음과 바라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라보고, 바라보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은혜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들을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로마서 4:18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바라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가치관과 추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에 있는 것,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은 시시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보내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씀이 실상이 되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바라봐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바란다는 말의 의미는 내가 바라고, 내가 상상하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바람은 내가 원하는 소원이고, 내 희망이고, 내 욕심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개인적인 희망과 개인적인 신념. 그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를 통해서 비교해보겠습니다. 창세기 13:10에 보면 롯이 요단들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두 사람이 다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실패하고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습니다. 롯이 바라보지 않아서 실패한 것 아닙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말씀보다는 물질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요단들을 바라보고 그리로 갔습니다. 롯은 인간의 눈으로 욕심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세상의 좋은 조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소돔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소돔이 불 심판을 받을 때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라고 해서 바라보았습니다(창 13:14). 그것도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믿습니다. 그것들은 장차 이루어질 것이지만 믿음을 통해 현재 우리 속에 있고 장차 우리의 믿음대로 실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증거가 생깁니다. 믿음으로 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고, 하늘나라가 보이고, 천국의 상급이 보이고 영광이 보입니다. 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눈이 없고 영의 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2:14에 보면 영이 산 사람, 영이 깨어 있는 사람만 신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믿습니다.
우리 중에서 천국에 가본 사람이 없습니다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천국의 상급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의 눈으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아에게 홍수는 보이지 않는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앞으로 있을 홍수를 믿음으로 보고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홍수 심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노아의 눈에는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모습이 보였고, 그는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여리고 성은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믿음으로 날마다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믿기에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생기고 그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39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성경에는 믿음의 산 사람들의 증거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해 나가면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참 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믿음은 굉장한 일입니다.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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