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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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주일예배 설교(히브리서 5장 1-10절/대제사장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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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9-12 16:45 조회7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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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9bBVzmrcuhI

히브리서의 주제는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본문은 구약시대의 대제사장과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택한 백성의 죄를 사하고 죄인인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알려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1. 대제사장의 특징(자격)

첫째.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
1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대제사장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와 특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사람을 대표하여 일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택한 백성의 입장과 처지를 잘 이해하고 그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2절에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기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연약한 사람, 무식한 사람, 미혹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너그러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1절 끝에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께 속한 일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의미하고,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합니다. 3절에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제사장은 제사장들 중에서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믿음 좋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직접 택합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 제사 드릴 때 먼저 자기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 제사 드리고, 그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속죄 제사를 드립니다. 왜냐면 대제사장 자신도 연약한 인간이고 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기 떄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7:27에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4절에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대제사장은 존귀한 직분입니다. 매우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스스로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대통령 후보 되듯이 스스로 출마하는 것 아니고 사람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것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임명됩니다.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구약시대 처음으로 대제사장이 된 아론도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이같이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불러 세우셨기 때문에 존귀하고, 앞으로 오실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에 더욱 존귀한 직분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존귀한 직분은 없습니다.

2.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심

5절에 “또한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2가지 특징을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인 아론보다 뛰어난 분임을 강조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로 대제사장이 되심.
5절 끝에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시편 2:7을 인용한 것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메시야 직을 직접 임명하셨습니다. 메시야에게는 제사장과 선지자아 왕, 이 세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며 선지자이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분으로 구약의 대제사장보다 훨씬 우월하십니다. 히브리서 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큰 대제사장은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더 큰 대제사장이심을 강조합니다.

둘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심
6절에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10절에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시편 110:4을 인용한 것인데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신 것은 레위 지파의 반차를 따라서 대제사장 된 것이 아니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다는 말은 멜기세덱의 신분과 유사한 대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7:11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통해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7:1-2에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의 뜻은 의의 왕입니다. 살렘 왕이라는 말은 예루살렘 왕이라는 뜻입니다. 곧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동시에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도 멜기세덱처럼 왕이면서 대제사장입니다. 구약의 아론 계통의 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높고 존귀한 분임을 의미입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7:3에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주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창세기에 한 번 나타난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고 말씀합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생기기 이전 인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도 신비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분으로 신비한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7:6절에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사람만 될 수 있는데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대제사장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고 그를 위하여 복을 빌어준 분으로 아브라함보다 높은 분입니다. 히브리서 7:7에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았으니 아브라함이 낮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먼저 존재하신 분이며 아브라함보다 크고 높으신 분입니다.

3.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한 일

첫째.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룸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합니다. 대제사장이 없으면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죄 사함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제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매일 만나고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생명나무를 실과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사란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애는 의식입니다. 제사는 죄인이 하나님께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사 외에는 죄인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사는 유일한 은혜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제사가 중요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처음 제사를 드렸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어디를 가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사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는 신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가 언제 끝납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끝납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제사는 짐승을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2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처음에 왜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으니까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만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가 완전히 사해졌습니다. 따라서 더이상 제사가 필요없습니다. 히브리서 10:18에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게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둘째.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림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의 정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큽니다. 택한 백성의 죄값을 다 짊어지고 고통을 담당하시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큰 고통을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흠 있는 제사가 될까봐 십자가의 고통을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 고통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 7:25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죄에 빠진다면 이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변호 해주십니다(요한일서 2:1)

셋째.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움
8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고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은 예수님도 배우신 높은 덕목이며 절대적인 신앙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와 영광을 다 내놓고 세상으로 내려가는 일에 순종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면서도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 되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셔서 섬기고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은 전에는 불완전하고 허물이 많았는데 이제 흠 없이 완전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구속 사역을 완성하고 마무리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순종입니다. 그것이 온전해지는 길입니다. 순종하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점점 거룩해집니다. 순종하면 영이 자라고 성숙해집니다. 불순종하면 사람이 점점 타락됩니다. 불순종할수록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불순종할수록 인격이 삐틀어지고 나빠집니다. 불순종할수록 믿음이 퇴보합니다. 불순종하면 결국은 실패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누구냐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다’고 믿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순종합니다. 반면에 세상이 주인인 사람은 세상을 순종하고, 마귀가 주인인 사람은 마귀를 순종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한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로마서 1:5에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했고, 로마서 16:26에 보면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궁극적인 목적은 순종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5:19에 보면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도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순종의 절정입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렵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8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 순종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고 그 의를 우리에게 입혀주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히브리서 3:1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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