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11107 주일오전예배 설교(잠언 18장 20-21절/입술의 열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1-07 15:42 조회637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b2BGhje7C84

지난주에 “혀의 권세”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폈습니다. 지난주 말씀이 이론편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면 오늘 말씀은 실천편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말로 인하여 실수가 많고, 상처와 고통도 많습니다. 말로 인하여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침묵만 지켜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말이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은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해야 할 말에 대해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25:11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1. 성도가 해서는 안 되는 말
첫째. 비방과 판결의 말. 유다서 1:8에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여기 ‘권위를 업신여기며’라고 했는데 누구의 권위입니까?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영광을 비방하는도다’라고 했는데 누구의 영광을 비방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합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합니까? “꿈꾸는 이 사람들”입니다. 이단과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이단들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무지해서 하나님의 권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다가 자기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면 왜 안 되는지 천사장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유다서 1: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천사장 미가엘을 통해서 모세의 시체를 숨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못 가져가게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붙었습니다. 이 부분을 학자들이 해석하기를 모세의 묘지가 있으면 우상 숭배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숨기라고 하셨다고 해석합니다. 그때 마귀는 그 일을 방해하며 미가엘과 다툰 것입니다. 그때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면서도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히’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못할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귀에게 무슨 말을 못합니까? 마귀 새끼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귀에게조차 천사장이 이 말만은 못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방하는 판결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미가엘은 천사장이면서도 자기 위치를 지키고 월권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그 정도만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10에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여기에 보면 특별히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하신다고 했습니다. 주관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을 특별히 형벌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그것이 무슨 짓인 줄 몰라가지고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형벌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데 또 천사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베드로후서 2:11에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주관하는 일을 멸시하는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천사들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판결의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중에 형제와 이웃을 비방하며 판단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야고보서 4:11-12에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우리는 형제를 판단할 자격도 없고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 내가 형제를 판단해 버리면 내가 누구 노릇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노릇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말씀합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판결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재판장이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고,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형벌하실 수밖에 없고, 그것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재판장 노릇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고린도전서 4:5에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언제까지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이 오셔서 뭘 하십니까? 주님이 오셔서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네가 뭔데 이웃을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이냐? 네가 예수님이냐? 그런 뜻입니다.

둘째. 자랑하는 말. 고린도전서 3:21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사람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 자랑, 손자 손녀 자랑, 남편 자랑, 아내 자랑, 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자랑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예레미야 9:23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자기 잘나고 똑똑한 것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자기 실력과 능력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가진 것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랑을 싫어하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랑하던 것들을 다 빼앗깁니다. 기도로 병을 고치고,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기도로 물리칩니다. 그때 바벨론 사신이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신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들을 다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랑하는 것들을 바벨론에 다 빼앗깁니다. 시편 12:3에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다.”

성도가 자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편 20:7에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라는 것은 하나님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24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랑하는 자는 여호와를 아는 것으로 자랑하고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자랑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면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희생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나를 이 자리에 오기까지 축복하신 하나님, 자랑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3:3에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행악하는 거짓 스승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우는데 급급하지만 하나님의 참 종은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가는 데마다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4에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요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얼마나 비난하고 욕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한 것은 회개하고 고쳐야 하겠죠? 그렇지만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 욕하고, 예수님 욕할 때, 성도들이 입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술 더 떠가지고 ‘내가 생각해 봐도 요즘 교회들은 문제가 많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 교회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 주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안 믿는 척하고, 교회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2. 성도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말
첫째. 축복하는 말. 시편 109:17-18에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속으로 들어갔나이다” 악한 자들은 축복하기보다 저주하기를 좋아합니다.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결국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복이 멀리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혹 까닭없이 저주를 들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잠언 26:2에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또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올 축복도 떠난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축복이 내게 임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결국은 나를 축복하는 것이 됩니다. 누가복음 10:5-6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남의 집에 들어가거든 평안을 빌어주라고 했습니다. 그 집 주인이 복 받을 자격이 있으면 그 평안이 거기 머물 것이고, 그 집 주인이 도저히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면 그 평안이 너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도저히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도 복을 빌어주십시오. 그런 사람이 누구입니까? 원수입니다. 원수에게 복을 빌어주면 그 복은 나에게 돌아옵니다.

둘째. 칭찬과 격려의 말. 성도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격려는 꺼져 가는 심지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만날 때마다 혹은 전화할 때마다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년들이 청소하면 “애들아 수고가 많다”하고, 집사님들이 봉사하면 “집사님들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주셔도 일하는 사람들은 큰 힘을 얻습니다.

3. 말에 덕을 세우려면?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말에 실수를 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말을 적게 해야 함. 말에 대한 성경의 첫 번째 교훈은 말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5:2-3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적게 해야 합니다. 말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누구나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어있고 허물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운다고 했습니다. 잠언 17:27-28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이 말씀은 남을 속이고 지혜로운 척하라는 것이 아니고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해 가지고 미련한 것을 드러내고 스스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에 실수를 줄이려면 말을 적게 해야 합니다.

둘째, 기도해야 함. 시편 141:3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다윗 같은 성자가 자기 입술의 문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하면 성령 충만하게 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을 따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기운에 말합니다. 사람이 화가 나면 홧김에 노를 발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게 됩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말에 실수가 많고, 말이 덕스럽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남들에게 믿음의 손해를 준다고 깨달아지면, 혀를 재갈 물리고 피나는 훈련을 해서 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잠언 18:20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어떤 씨앗은 1년 만에 열매를 맺고, 어떤 씨앗음 10년 만에 열매를 맺고, 어떤 씨앗은 30년 만에 열매를 맺습니다. 씨를 심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자기가 거두어 먹습니다. 우리 말에도 열매가 맺습니다. 그 열매를 내가 먹게 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