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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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5 주일오전예배 설교(열왕기상 17장 8-16절/사르밧 과부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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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05 16:23 조회6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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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t6K8awajf84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 아합왕입니다. 아합왕은 부인 이세벨의 꾀임을 받아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의 깊은 늪에 빠뜨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아합왕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3년 반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그 소식을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왕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1절). 엘리야 선지자는 이 기적을 통해서 ‘비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된 신이시다.’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아합은 회개하기는커녕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1. 까마귀를 보내 먹이심(2-7절)
2-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명령해서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에서는 왕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 하시더니 2절에서는 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9절에서는 사르밧 과부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4절에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아합왕도 고통을 당하지만 그 땅에 사는 엘리야 선지자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먹고 마실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5절). 엘리야는 홀로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의 길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6절에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서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이고 사납고 욕심이 많은 새입니다. 까마귀는 먹을 것을 나누는 그런 새가 아닙니다. 상상도 못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많은 고난 당하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할 때 기적도 경험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은혜와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시내가 말랐습니다(7절). 그러자 엘리야를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

2. 사르밧 과부를 통해 먹이심(8-14절)
8-9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다시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사르밧으로 가서 한 과부의 집에 머물라고 명하셨습니다.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르밧 과부를 점 찍어 놓고 그 과부에게로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 과부에게 선지자를 대접할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엘리야 선지자도 먹이고, 그 과부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리로 보낸 것입니다. 엘리야가 스스로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고 걱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먹고 마실 것을 해결해주십니다. 엘리야는 이번에도 순종해서 사르밧으로 갔습니다(10절). 엘리야는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사르밧에 가도 그 과부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사르밧에 사는 과부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집 주소도 모릅니다. 10절에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극적인 만남입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과부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두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첫째는 물을 좀 달라는 것입니다. 이 과부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지,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시험해본 것입니다. 이 과부는 너무나 가난하여 마지막으로 한 끼 먹고는 자식과 함께 죽을 형편에 있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이 물을 좀 달라고 하면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고, 좋은 마음으로 물 떠다 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즉시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둘째는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물을 가지러 가는 과부를 불러서 두 번째 시험을 합니다. 11절에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 당시는 오랫동안 흉년이 계속되고 있고 누구나 먹고살기 힘든 때입니다. 그럴 때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선뜻 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12절에 보면 과부는 자기 사정을 진실하게 다 말했습니다. ‘나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입니다.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참 가난하고 불쌍합니다. 오랜 가뭄 속에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굶어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희망이 없었습니다. 한 끼 먹으면 아무것도 남은 음식이 없었습니다.
13절에 보면 과부가 이렇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말했음에도 엘리야 선지자는 떡을 먼저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엘리야 선지자가 너무 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벼룩의 간을 내먹지 어떻게 그것을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를 들어 과부의 사정이 딱한 것을 알고 엘리야 선지자가 떡을 구해서 그 과부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며칠 더 먹고 지내다 결국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과부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음식이 기적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형편이 기적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과부를 복 받게 만들고, 이 과부를 살리는 길은,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과부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먹게 하시고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 전에 먼저 요구하십니다. 상식을 초월한 것을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기적을 베풀어 수백 배, 수천 배로 채워주십니다.

14절에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않게 해준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과부가 믿음이 없었다면 의심할 상황입니다. 떡 3개 만들어서 함께 나눠먹자고 해도 믿을까 말까 한 상황인데 떡 하나 만들어서 자기를 먼저 주고 가족들은 나중에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루와 기름이 계속 생긴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15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이것이 사르밧 과부의 믿음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자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누가복음 4:25-26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를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지 않고 오직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냄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고 곡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계산을 잘합니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든지 이익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잘 따지고 계산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고 계산적이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도 알 수 있고, 기적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순종할 때 일어난 일(15-16절)
15-16절에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마지막으로 한번 먹고 죽을 생각을 했던 이 과부와 아들에게 계속 먹을 것이 주어집니다. 과부는 놀라운 기적을 맛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죽을 것으로 예상했던 그에게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계속 넘쳐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엘리야 선지자는 과부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먹을 것을 더 많이 주었습니다.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이 과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살린 것입니까? 누가 누구를 도운 것입니까?

첫째. 중요한 교훈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창조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신비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고 치유의 은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많고, 인간의 생각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지금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순종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주장하거나 고집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교만하면 듣지 못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 말씀 앞에서도 자기의 주장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받기 어렵습니다.

둘째. 또 하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나누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가르쳐 주시는 삶의 원리는 나눔입니다.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음식을 준 것은 넉넉하고 먹을 것이 남아서 나눠준 것이 아닙니다. 한 줌밖에 없는 가루를 가지고 자기를 위해 먼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선지자에게 주면 자기 먹을 것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과부는 선지자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남에게 주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밀가루 한 줌, 기름 조금, 그 작은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작은 것 가지고 다른 사람을 먹이고 도와주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을 받는 비결은 나누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작은 먹을거리를 주님의 손에 맡기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에게 베풀며 살면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르밧 과부가 나누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과부와 그 아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소중한 것, 하나뿐인 것을 나누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그 과부의 집에 머무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었을까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기도해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리한 추측이 아닙니다. 목사님도 교인들 가정에 심방 가면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주는데 엘리야는 얼마나 더 했겠습니까? 이것은 물질을 얻은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이 과부는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배웠을 것이고 사르밧 과부와 그 아들이 신앙적으로 큰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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