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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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 주일오전예배 설교(마태복음 20장 1-16절/포도원의 품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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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12 15:23 조회5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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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b6hpd5_cagQ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19:27절에 보면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제자들도 12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 지파를 심판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할 것이라고 하시고 30절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리고 이어서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포도원에 아침 일찍 들어와서 일한 품꾼들이 나중이 되고, 가장 늦게 들어와서 일한 품꾼들이 먼저 된다는 내용입니다.

1절에 “천국은 마치”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기 천국은 교회를 가리키고, 품꾼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교회를 포도원에 비유한 것은 이스라엘에 포도원이 많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가 쉽고 또 포도원은 반드시 주인이 있어서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교회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주인인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일꾼들을 보내 일하게 하십니다. 일꾼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일군들을 불러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예배하고 봉사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먼저 된 자가 왜 나중 되었는지, 나중 된 자가 어떻게 먼저 되었는지 살피겠습니다.

1. 먼저 된 자가 나중 됨
첫째. 집 주인을 원망함.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불러 일을 시킵니다. 1절에는 이른 아침에 나가서 품꾼을 불러왔습니다. 3절에 제 삼시에 품꾼을 불렀습니다. 5절에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불렀습니다. 6절에는 제 십일 시에도 불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시간과 오늘 우리의 시간은 6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은 오전 6시, 제 삼시는 오전 9시, 제 육시는 낮 12시, 제 구시는 오후 3시, 제 십일 시는 오후 5시를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포도원에 일찍 들어온 품꾼들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늦게 들어온 품꾼들은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릴 때부터 예수님 믿고 교회에 다닌 사람, 학생 때부터, 청년 때부터, 장년 때부터, 노년에 예수님 믿고 교회에 다닌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여러 번 품꾼을 불러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날이 저물매 주인은 품꾼들을 모아놓고 품삯을 줍니다. 제일 늦게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먼저 온 품꾼들은 자기들은 더 받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이들은 품삯을 받은 후 주인을 원망했습니다(11절). 이들이 원망한 이유는 자기들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했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이 자기들과 똑같이 품삯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9-10절에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이들은 주인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 직장에서는 이같이 품삯을 주는 직장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인입니다. 1절에 보면 “천국은… 주인과 같으니”로 시작하면서 특히 주인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원리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교회는 세상 기준으로 일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합리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1) 주인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13절에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왜냐하면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2절). 주인은 약속대로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2) 14-15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선하므로”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다 선하십니다. 나중 온 사람에게 일찍 온 사람과 똑같이 품삯을 주는 것이 주인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내 것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네가 왜 악하다고 하느냐고 오히려 책망했습니다. 나중 온 자에게 더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일을 조금 한 사람에게 많이 주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은 이 은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었기 때문에 먼저 주었다고 포도원 주인은 말씀하십니다.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시간적으로는 늦게 왔지만 일하는 것은 더 잘했다는 뜻입니다. 늦게 온 사람들이 더 주인의 마음에 들게 일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늦게 믿기 시작했지만 더 믿음 생활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품삯은 구원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일찍 믿은 사람이나 늦게 믿은 사람이나 믿기만 하면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갈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일찍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불평한 것은 자신들의 근본을 잊었기 떄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형편, 어떤 자리에 있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까? 3절에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6절에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들의 처음 형편을 보면 일할 것이 없어서 놀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일자리도 얻기가 어려워서 하루종일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러서 일하게 하고 또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일할 수 있도록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불평했습니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근본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은혜라고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은혜라고 믿으십니까?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하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다른 품꾼들과 비교함. 10-11절에 보면 자기들이 더 받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와서 일한 자들보다 더 받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와서 일한 품꾼들은 나중 와서 일한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군들이 없고 자기들만 일하고 품삯을 받았다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비교의식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봉사를 망치고 봉사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이 비교의식입니다. 이 비교의식의 뿌리는 마귀, 사탄입니다. 이사야 14:14에 보면 마귀는 하나님과 비교하다가 타락했습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 지극히 높으신 분 즉 하나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다가 쫓겨나서 타락한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비교의식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르게 창조하셨고, 저마다 독특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만의 길이 있고, 나만의 은사가 있고, 나만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드시고,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쓰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웃들과 불필요한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에 먼저 왔는가, 나중에 왔는가를 가지고 비교하고, 누가 직분을 먼저 받고 나중에 받았는가를 비교합니다. 이런 불필요한 비교들이 우리를 상처받게 하고, 쓸데없는 원망하게 만들고, 봉사의 현장에서 기쁨과 즐거움들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교의식을 버리고 동역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동역자입니다. 한 포도원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서로 협력해서 하나님의 포도원을 잘 가꾸고 일하라고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세상의 원리와는 다릅니다. 꼭 순서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선착순입니다. 능력을 따라 더 받고 더 누립니다. 그러나 주님 나라는 선착순이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더 나가서 우리는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믿는 사람은 나중에 믿는 사람들을 섬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섬김의 대상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고, 경계의 대상이 아니고, 시기의 대상이 아니고,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입니다.

셋째. 자신의 공로를 주장함. 10절을 “더 받을 줄 알았더니” 12절에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이 말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더 수고하고, 내가 더 애쓰고, 내가 더 견디고, 내가 더 일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공로를 내세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은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빚진 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이며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에 공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섭섭한 마음입니다. 그 사람은 날마다 시험에 들 것입니다. 누가복음 17:9-10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것이 우리의 섬김의 자세여야 합니다.

2. 나중 된 자가 먼저 됨
8절에 보면 주인은 나중에 온 사람에게 먼저 품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16절에 보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들이 어떻게 첫째가 되었을까요? 아침부터 들어간 사람은 그들이 받을 품삯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한 시에 들어간 사람은 품삯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라고만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종일토록 기다려도 일자리가 없었고 품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포도원 주인이 와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고 하므로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일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보든지 안 보든지 충성되게 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 받았을 때 감격했을 것입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하루 품삯을 받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일한 것이 없는데 많이 받았습니다. 공로가 없고, 자격이 없는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기뻤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나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일도 잘하고 힘 드는 줄 모릅니다. 나중에 온 사람은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마음에 들게 일을 잘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여러 모양으로 섬기며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앞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에서 봉사할 텐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받을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이웃과 관계에서 비교하지 말고 동역자자를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더 공로가 많다는 생각을 버리고 종의 정신을 가집시다. 그때부터 우리의 봉사와 섬김은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주님께 더욱 귀하게 쓰임 받는 일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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