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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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2 주일오전예배 설교(이사야 43장 14-21절/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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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1-02 15:21 조회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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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K3FfkNnyj28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로운 결심을 하고 희망을 꿈꾸어야 할 때인데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끝나기를 기대했던 코로나는 더 기승을 부리고, 경제는 더욱 침체 되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걷는 것 같고, 물 없는 사막을 헤매는 것 같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과 같은 이 땅에 샘이 솟아나게 하시고, 사막에 꽃이 피는 은혜를 기대합시다.
본문은 훗날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회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소망을 말씀을 주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들도 나를 찬송하리라”

1.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1) 14절 “너희의 구속자요” 구속이란 종이나 노예를 살려내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고 사서 건져내는 것을 구속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배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는 어떤 댓가라도 치루기를 원하시니 하나님 백성 된 자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2) 14절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어 계신 분, 죄와 구별되어 계시며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3) 15절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여호와란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언약대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며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4) 15절에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으면 걱정이나 불안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며 거룩한 분입니다. 나의 창조자이시고 나의 왕이십니다. 16절에 “나 여호와가” 19절에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절에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절에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이 메대와 바사의 군대를 보내 바벨론을 멸망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신 일입니다.
16-17절에 보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만히 있어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 됨을 알게 하겠다.” 그리고는 모세에게 지시합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모세가 손을 내밀자 큰 동풍이 불어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전혀 불가능했던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것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는 등불이 꺼지듯 한 순간에 홍해에 빠져 죽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와 같은 능력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홍해 바다에 길을 내셨던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사막에 길을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홍해를 가르고 바다에 길을 내신 하나님께서 사막에 길을 내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길을 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이전 일은 홍해 바다를 가르고 바다에 길을 내셨던 그 일을 가리킵니다.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은 눈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기억하지 말며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홍해를 가른 기적보다 훨씬 더 위대한 기적을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이 아무리 놀랍고 찬란해도 지난 일이고 과거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전 일, 옛날 일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어떤 일인가?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보라”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말씀입니다. 기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새 일”은 이전에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일을 의미합니다. 이 새 일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이 곧 이스라엘의 목전에 나타날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는 하나님께서 하실 새 일을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하실 새 일을 믿고, 기대합시다.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광야는 길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길을 내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사막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그 불가능한 일을, 그들이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른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일 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명령입니다. 새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셨습니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맞이하고 자유가 주셨습니다. 그리던 조국 이스라엘로 돌아갔습니다. 시편 126:1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 일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노래한 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국들을 움직여서 강대한 바벨론 나라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혀에는 찬양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예언적으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과거 출애굽 할 때의 구원 사역이 무색할 만큼 크고 놀라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복음이 전파되고 생명의 역사가 강같이 흐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시고 생수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은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홍해 바다를 가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새 일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셋째. 영적으로 새 일은 죄인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들짐승 같고 승냥이와 타조와 같은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새 일입니다. 승냥이는 물어뜯고, 싸우고, 다투고, 잡아먹는 잔인한 짐승입니다. 타조는 아주 무정한 짐승입니다. 욥기 39:13-16에 보면 타조는 사막에 알을 낳아 놓고도 땅에 버려둡니다. 땅의 열기에 부화되어 새끼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발에 밟혀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냥 버려둡니다. 자기 새끼에게 모질게 함이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합니다. 이렇게 승냥이와 같고 타조와 같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새 일이고 진정한 영적 부흥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새 일을 행한 결과 어떻게 되는가?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목적을 여기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서 건지신 것도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송한다는 말은 경배한다. 예배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할 일은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삶의 매 순간마다 기쁨과 감격이 넘쳐 천국을 경험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삽시다. 우리 앞에 있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과 같은 이 땅에 샘이 솟고 강이 흐르게 하시고, 사막에 꽃이 피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대합시다. 새해에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고 생명의 역사가 충만하고 기도가 응답되고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나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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