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20130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복음 10장 1-15절/선한 목자와 양)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1-30 15:49 조회511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xzEH30055og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그리고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1. 선한 목자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주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했습니다. 반면에 1절에 보면 절도와 강도도 있습니다. 12-13절에는 “삯꾼”도 있습니다. 양들 곁에는 어느 시대나 양을 잡아먹으려는 절도와 강도 삯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와 삯꾼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선한 목자를 만나면 양들이 행복하고 삯꾼을 만나면 양들이 불행합니다. 양의 운명은 선한 목자를 만나느냐 못 만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살펴봅시다.

첫째. 선한 목자는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감
1-2절에 보면 “양의 우리”가 있고, “문”이 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양의 우리이고, 예수님이 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우리 안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성도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양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데 문을 통하여 정정당당하게 들어가는 이는 선한 목자입니다. 그런데 문을 통하여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 즉 담을 넘어 들어가거나 담을 부수고 들어가면 절도요 강도입니다. 신천지 이단처럼 자기 정체를 숨기고 슬그머니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강도가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이유는 양을 잡아먹고 죽이려는 것입니다. 강도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죽이고, 뻬앗고, 싸우고, 결국은 멸망시킵니다.
7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1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양의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7절에서는 “내가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라 하시고,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문입니다. 이 문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갑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님 밖에 있으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생사를 가르는 문입니다. 문이 없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 통해서만 구원을 얻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문은 없고,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러 길 중의 하나가 아니고 유일한 길입니다. 많은 진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진리입니다. 많은 생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생명입니다. 요즈음 기독교 내에서도 예수님 믿지 않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아니라도 좋다는 사람들, 십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고 박식한 사람이라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적입니다. 목적지는 같은데 길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이 길로 가고, 불교나 유교나 마호메트교는 저 길로 가지만 결국에는 같은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도적질하고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양을 앎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압니다. 주님은 자기 양을 아십니다. 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64에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믿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양의 탈을 쓰고 양들 가운데 있지만 믿지 않는 자를 아십니다. 3절에 보면 예수님은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십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각 사람의 특성과 성품과 형편과 사정 등 그 모든 것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나를 사랑하며,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14절 끝에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목자도 양을 알지만, 양들도 진정한 목자를 압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압니다. 또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압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 거듭난 참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예수님을 압니다. 부모 자식은 그냥 압니다. 무슨 증명서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압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셋째, 선한 목자는 앞서가며 인도함
4-5절에 보면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목자가 앞서가십니다. 양은 약한 동물이라 심하게 몰면 병이 납니다. 따라서 목자는 양들이 자율적으로 따라올 수 있도록 서서히 인도해 나갑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까지 인도하십니다.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여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시간적으로 먼저 온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예수님과 같다고 하거나 자기를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단의 교주들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자기를 구원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자기를 예수님과 동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누구라도 주님보다 앞서가면 안 됩니다. 주님없이 혼자 가면 안 됩니다. 성도는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넷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끝에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염소나 이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렸습니다. 불택자를 위해 피흘린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양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여러분 애완동물 기르시는 분 있죠? 강아지나 고양이 등. 먹을 것을 사주고 병들면 치료도 해줍니다. 그러나 강아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입니다.
삯꾼은 어떻게 합니까?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12절에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삯꾼은 양에게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의 유익만 생각합니다. 삯꾼이 양에게 다가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10절 끝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양들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양들을 살리고 양들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는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양을 위해 목숨까지 주면서 양들이 풍성한 삶을 얻기를 소원합니다.

2. 양
목자에게도 선한 목자가 있고 삯꾼이 있는 것처럼 양에게도 진짜 양이 있고 가짜 양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 믿는 성도를 양이라고 칭합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목자로 삼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가 양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염소라고도 하고 ‘이리’라고도 했습니다. 염소를 잘 먹인다고 양이 되는 것 아닙니다. ‘이리’에게 양의 탈을 씌워서 잘 꾸민다고 양이 되는 것 아닙니다. 양이 되려면 양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죽은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양으로 태어나야만 양입니다. 마태복음 7:15 이하의 말씀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했습니다. 가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겉도 양이어야 하고 속도 양이어야 진짜 양입니다.

첫째, 양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아주 약합니다. 아주 미련한 동물입니다. 따라서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양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자가 없는 양이란 죽음뿐입니다. 예수님 잃어버려도 아무 걱정이 없고 예수님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은 양이 아닙니다. 양에게는 먹을 것보다, 좋은 집보다, 친구보다 목자가 중요합니다. 양은 혼자서 자기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양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아무런 자구책이 없습니다.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도 못합니다. 내가 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자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호랑이처럼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힘이 없고 미련하고 약해도 괜찮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 의지하고 따르면서 살면 됩니다.

둘째,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3절에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4절에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양은 약한 동물이지만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아주 예민한 능력을 가지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발자국 소리까지 구분합니다. 이것이 양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양은 시력이 나빠서 2-3미터밖에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양들이 가면서 음매 음매 하는 것은 자기들끼리 신호를 보내는 것이랍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듣는 것입니다. 양은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듣는 것으로 사는 것처럼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삽니다. 내가 양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만 듣습니다. 타인의 음성은 듣지 않습니다. 5절에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마태복음 7:22 이하에 보면 주여 주여 하면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주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한다고 말씀합니까? 선지자 노릇한 사람입니까? 귀신을 쫓는 사람입니까? 권능을 행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신앙의 핵심은 기적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과 오묘한 학설과 이론을 가르쳐도 예수님의 구속의 진리가 아니면 성도는 듣지 않고 도망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지 분별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말씀을 듣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요한일서 4:5-6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세상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누구 말을 듣고 따르는가를 보면 그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양은 목자를 따릅니다.
4절에 보면 목자가 양을 다 내놓고 앞서가면 양들은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신앙생활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고 예수님보다 앞서서 가는 것은 양이 아닙니다. 성경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주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양을 삼키려는 사단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헛된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교회 생활에 만족하십시오. 교회에서 목사의 인도를 잘 따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통계적으로 이단에 미혹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교회 생활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 교회에서 말씀을 잘 배우고, 자기 교회 목사에게 잘 순종하고, 성도들과 아름답게 교제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단에게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교회에 충성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혼자 방황하다가 이단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미혹이 되면 사람이 완전히 이상해집니다. 들어야 할 말은 안 듣고, 듣지 말아야 할 잘못된 교훈은 참 잘 듣고 따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양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좋은 목자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따라가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