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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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2 주일오전예배 설교(다니엘 3장 16-18절/그리 아니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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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6-12 14:38 조회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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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TOSk2C0D_l8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 살면서도 믿음을 잘 지키던 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게 큰 시험이 왔습니다. 이들의 바벨론식 이름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1. 금 신상에게 절하라

1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높이가 약 30m, 넓이가 3m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신상을 만들어 놓고 낙성식을 행하며 나라의 중요한 관리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때 왕의 명령을 선포하는 자가 외쳤습니다. 5-6절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이것은 느부갓네살왕이 자신의 통솔력을 강화시키고 자신의 권세를 드러내기 위한 오만한 행동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바벨론 신을 높이기 위한 일입니다. 백성들이 그 큰 신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금으로 그 큰 신상을 만들려고 할 때 얼마나 돈이 들어갔겠습니까? 나라의 큰 돈을 우상을 만드는 일에 허비하고 죄짓는 일에 열심입니다. 인간이 힘을 가지고 교만해지면 이렇게 자신의 권세를 함부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힘이 있을 때 힘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힘을 주신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 시대에 바벨론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면서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예언입니다. 말세에 세속 국가와 마귀의 종노릇하는 적그리스도가 성도를 핍박하기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게 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14-15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받아 이적을 행하고,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에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이 말세에 그대로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험이 올 것임을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금 신상같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하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왕이 시키는 대로 우상에게 절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믿는 성도에게는 문제가 다릅니다. 성도가 우상에게 절할 수는 없습니다.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심기지도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도 성도에게는 그것이 큰 시험이고 큰 문제가 됩니다. 어떤 직장에서 인공위성을 만들어 발사하면서 고사를 지낸다고 절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청년이 회사에 입사하려고 시험을 치는데 주일날이었습니다. 코로나 유행한다고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안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성도에게는 큰 시험입니다.

7절에 보면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악기 소리가 들리자 모든 사람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나 금 신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거부했습니다. 처음에 무너지면 두 번째 세 번째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라, 술을 마시자, 죄를 짓자고 할 때, 처음부터 거절해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는 것을 본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이들을 참소했습니다. 많이 사람이 이들을 시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포로 잡혀 온 사람들이 고위직에 오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가 이때다 하고 참소한 것입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1) 14-15절에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것이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사랑하는 척하면서, 위해주는 척하면서 달래고 설득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작전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주고 잘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2) 15절에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위협입니다. 협박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이처럼 양면 작전을 씁니다. 달래고 위협하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다시 요구합니다. 기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달랐습니다. 왕의 설득도, 협박도 이깁니다.


2. 세 사람의 대답

첫째. 16절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아무리 줘도 대답이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에게 감히 누가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마음에 확신이 없고, 믿음이 흔들릴 때는 뭐라고 할까요? ‘기도해보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신앙생활은 세상과 타협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의논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에게 틈탈 기회를 주지 않게 됩니다. 이런 신앙을 불변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둘째. 17절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만능을 믿는 신앙입니다. 왕이 그들을 풀무불 속에 던져도 하나님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낼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신뢰입니다. 왕의 권세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이 건지려고만 하시면 얼마든지 건져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도 애굽의 바로 왕의 손에서 건져냈습니다. 사울 왕의 손에서 다윗을 건져주셨습니다. 다니엘도 사자굴에서 건져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생명을 건져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18절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은 순교적 신앙입니다. 더 위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구해주시고 잘해주니까 믿음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선택으로 내 생명이 죽고, 이 결정으로 내 인생이 끝장이 나고, 이 믿음으로 내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때 마귀의 시험이 강한 때입니다. 모든 것을 바치고 믿음을 지키고, 목숨을 걸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았을 때, 마귀는 강하게 시험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렇게 시험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가 흔들 수가 없습니다. 뭘 가지고 어떻게 시험하겠습니까? 복을 주시지 않을지라도, 병을 고쳐주지 않을지라도, 기적을 베풀어 주지 않을지라도, 환난에서 건져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만 따르겠습니다. 말씀만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정말 큰 믿음입니다. 불 속에서 살아는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불속에 들어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믿음을 지키며 들어가는 그것이 기적입니다. 왕의 미움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불 속에서 살아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는데도 계속 기도하고, 환난과 시험에서 건져주지 않는대도 계속 믿음을 지키는 것, 그것은 기적보다 더 큰 믿음입니다. 


3. 풀무불 시험을 이김

19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얼굴빛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던져 넣게 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든지 그들을 던지던 사람들이 타 죽었습니다. 24-25절에 보면 세 사람이 던져진 후 보니 불 속에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의 모습은 신들의 아들 같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 오셔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풀무불이 다른 사람에게는 환난과 고통과 죽음의 장소이지만 이들에게는 평안과 위로와 생명이 넘치는 곳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환난 속에서도 지켜 주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풀무불 입구에 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불렀습니까? 26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28절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29절에 보면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리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멋있습니까? 세 사람이 풀무불 가운데서 나왔는데 전혀 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이들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28절에 느브갓네살 왕이 놀라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칭찬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할 것입니다. 30절에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더욱 높였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여주십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고 세상과 다르게 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세상 위에 높이 세우십니다. 풀무불은 우리를 시험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잘 통과한 사람들을 지극히 높이시는 하나님입니다. 

말세로 갈수록 마귀의 유혹과 시험은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1)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불변의 신앙입니다. 2) 하나님이 건져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만능을 믿는 신앙입니다. 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은 순교적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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