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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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6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장 18-31절/멸망하는 자와 십자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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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7-06 21:03 조회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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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vDyXtxscZQE


18절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대속의 진리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택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다. 이것을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구원받는 도리가 십자가의 도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진리이다. 십자가의 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만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좋은 말씀을 인정하고 산상수훈을 찬성하고 동의하지만 십자가의 도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십자가의 도를 기준으로 둘로 나눠지게 된다. 멸망하는 자들, 즉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인다. 2천년 전에 사형받아 죽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죄를 사하는 능력, 구원하는 능력,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십자가에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믿는 자에게 능력이 된다. 믿기만 하면 죄사함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믿지 않는 자들은 미련하게 보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된다. 십자가의 도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구원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임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십자가의 도를 내버린다. 


19절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로 하는 모든 것들을 폐하시고 믿음으로 하는 것만 성공되게 하신다. 인간의 지혜로만 살려고 하면 십자가와 복음을 미련하게 보고 거부하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수 밖에 없다. 십자가의 도는 하늘로부터 주어진 신령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지혜이다. 성령을 통해서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성령의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십자가의 도리가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아무나 믿을 수 없는 십자가의 구속의 도리를 우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다. 


20절

지혜 있는 자는 헬라의 철학자를 가리킨다. 선비는 서기관과 학자들을 가리킨다. 웅변가는 말 잘하는 자들이다. 인간적으로는 이들이 위대하게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 자기들은 지혜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영생 얻는 길을 찾지 못한다. 스스로 어둠 속을 헤매다가 실패하고 만다. 


21절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지혜를 가져도 그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받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범죄타락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락함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 1:21~22)

타락한 인생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 생각이 허망해진 상태이다. 생각이 정상적이지 못하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미련해졌다. 스스로는 지혜자라고 생각하지만 죄를 지음으로 미련해졌다. 스스로는 지혜있는 자라고 착각하지만 어리석은 자이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0~11)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자랑하지만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악만 행하고 죄만 짓는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미련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이것이 타락한 인생들의 실상이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전도의 방식도 안믿는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전도를 해야 한다.

전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힘써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 


22절

기독교 안에 기적이 많다. 구약, 신약에 기적의 역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만 추구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기적만 쫓아가려고 하면 안된다.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셔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

표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바로가 표적이 없어서 안믿었나?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지만 그래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

헬라인들은 지혜만 추구한다. 기독교는 지혜만 추구하지 않는다. 성경에 지혜를 가르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지혜만 추구하지 않는다. 현대 종교는 철학과 기독교를 혼합시켜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늘날 이적만 추구하는 신비주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에 맞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신신학자(자유주의)들도 있다. 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23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만 전한다고 했다. 복음만 전한다고 했다. 이것이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다. 기적만 귀하게 여기는 자들이기에 십자가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 


24절

"부르심을 받은 자들" 누가 믿고 구원받을 수 있나?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복음과 성령을 통해 부르신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된다. 택함받은 자들만 복음을 믿고 죄사함받고 구원을 받는다(행 13:48).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복음이 지혜와 능력이 된다. 


25절

하나님에게 어리석음과 약한 점이 없으시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에게 어리석고 약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사람이 보기에는 약해 보이고 미련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지혜 있는 것이고 강한 것이다. 성경대로 바로 믿고 성경대로 바로 살아가는 성도를 보면서도 불신자들은 어리석고 미련하게 본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 진짜 지혜자이고 강한 자이다.

예를 들어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였다. 홍수가 어떻게 세상을 다 덮겠나? 왜 산에다가 방주를 짓는가? 그러나 홍수가 났을 때 방주만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불신자는 다 멸망당했다. 십자가가 이와 같다. 불신자는 미련하게 보지만 십자가에만 구원이 있다. 


26절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예수님을 믿도록 부르신 것, 일꾼으로 부르신 것이다. 부르신 자들을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대부분 세상적으로 부족한 자들을 부르셨다. 


27-28절

바울이 믿는 사람들을 분석해본 것 같다. 믿는 자 중에 세상적으로 지혜 있고 능력 있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한 자들이 많았다. 이들이 마음까지도 가난해서 복음과 주님을 잘 받아들인다. 세상적으로 지혜와 능력이 있는 자들은 마음도 부요해져서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세상적으로 약하고 천한 자들에게는 복음에 소망이 있다. 


누가복음 14장 18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큰 잔치를 베푸시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

그러자 주인이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니 이들은 즉시 초청에 응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불러 쓰신 일꾼들이 낮고 천한 자들이 많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어부가 많았다. 평범하고 천한 사람들이었다. 지혜자, 능력자, 권세자가 아니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었다, 다윗은 목동이었고, 아모스는 농부였다. 내세울 것 없는 천한 자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셨다.

성경에 보면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그대로 쓰시지 않고 약하게 만들어서 쓰셨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한 사람만 고르라고 하면 단연 모세이다. 모세가 40년간 애굽의 학문을 다 배우고 스스로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하다가 애굽 사람 하나 죽이고 도망쳐서 40년간 미디안에서 연단받는다. 철저하게 낮아지고 깨어졌다. 80세가 되어 아무 힘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신다.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자는 바울이다. 바울은 혈통적으로나 학벌로나 열정으로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가시를 주셨다. 제대로 일하기 힘든 약한 모습으로 쓰셨다.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고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고 쓰셨다. 

우리가 연약함을 핑계할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사람은 도구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심부름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만들수 있나? 믿음을 가지게 할 수 있나? 은혜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나?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나? 우리는 한가지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늘 구해야 한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의지하고 나아가야 한다.  


29절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 받는 자를 불러 쓰시는 이유가 뭔가?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면 자기가 한 줄 안다. 스스로도, 남들도 오해할 수 있다. 약한 자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해주신 것을 모두가 알 수 있다. 

결국 미련한 자가 지혜 있는 자를, 연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긴다. 미련하고 연약한 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못한다고 하지 말고 나의 약함을 자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야 하겠다. 


30-31절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예수님만 자랑하라는 것이다. 은혜만 자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렇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래서 약한 자들을 쓰신다. 살아계신 하나님만 영원히 영광 받으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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