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20803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4장 1-21절/그리스도의 일꾼에 대한 권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8-03 21:04 조회350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FmY6oncQiB4


1. 그리스도의 일꾼의 자격(1-5)
2. 일꾼의 모본을 보여줌(6-13)
3. 바울의 권면(14-21) 

1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면이 있어도 멸시하면 안되고 하나님이 쓰시는 것을 보고 존경해야 한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다. 하나님의 비밀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다(골 2:1). 넓게 말하면 성경 전체가 비밀이다. 성경 말씀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것이고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바울은 비밀을 맡은 자로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바울은 비밀 취급 인가자이다. 인류 전체가 죄로 인해서 죽어간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살수 있다는 것을 알려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 바울이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자이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멸망당할 자리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일을 힘써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복음을 맡겨 주셨다.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하나님이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일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이다. 충성하지 않으면 일이 그르치게 된다. 일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 하나님이 일꾼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충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이것이 바울의 자세이다. 사명을 완수하려는 충성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우리도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자들은 충성을 다했다. 바로 가서 장사해서 배를 남겨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충성을 칭찬받았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충성되지 못했다.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얼마나 남겼느냐 를 보시는 것이 아니고 충성을 보시는 것이다. 

3절
바울은 비밀을 맡은 일꾼으로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했다. 바울은 사람들의 판단을 작은 일로 여긴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판단만 정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반면에 자신도 자신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금 잘한 것을 생각하면 교만할 수 있고, 조금 잘못한 것은 비관하고 낙담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도 평가하지 않았다. 

4-5절
오직 주님의 판단만 귀하게 본다고 했다. 바울은 스스로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대충대충 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의롭다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판단만 정확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넓게 적용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당파를 만들어서 바울, 아볼로, 게바 편으로 갈랐다. 바울이 좋다, 아볼로가 더 잘 가르친다, 게바가 더 낫다고 하면서 판단을 많이 했다. 이런 판단을 그만하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의 판단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판단하지 말고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마음의 생각과 모든 행함을 정확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충성스럽게 일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따라서 우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칭찬받도록 믿음을 쓰면서 살아야 하겠다. 

6절
"이 일에" 당파를 만드는 일이다. 당파를 만들어서 자기 편은 위해주고 보호하고 자기 편이 아니면 공격하고 멸시했다. 이 일에 대해서 바울과 아볼로가 본을 보였다고 했다. 바울은 심는 자이고 아볼로는 물 주는 자라고 했다. 경쟁하며 다투는 자가 아니고 협력자라는 것이다. 바울이 심으면 아볼로가 뒤에 와서 물을 주었다. 그래서 교회가 잘 되기를 둘이 협력하며 힘을 썼다. 경쟁하지 않았다. 대적자가 아니었다. 
너희도 당파 만들지 말고 서로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 대적하는 것은 교만한 일이다. 교인들끼리 대적하고 서로 교만한 마음을 먹어서 우월하다, 못됐다고 판단하며 대적하는 일은 바울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성경이 그만 두라고 한 것은 그만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했는데 왜 자꾸 하냐는 것이다. 판단하는 것, 당파 만드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중요한 원리이다. 말씀을 울타리같이 경계선을 쳐서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 순종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을 벗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고 방종이며 교만이다.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면 달릴 수 없다. 자동차가 차선을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말씀은 우리를 옥죄는 것이 아니고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안된다. 절대로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 

7절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당파 만들어 판단하는 자들을 향해 '누가 그런 일을 해도 된다고 허가했느냐?' 는 의미이다. 스스로 높아져서 남을 판단하는 주제 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런 일을 시킨 것이 없고 성경이 그런 일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하느냐?고 책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이것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하며 부족한 자들을 판단했다. 

8절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왕노릇 하는 자리로 올라간 것이다. 스스로 높아져서 안하무인의 자리로 올라갔다. 이것은 심각한 잘못된 모습이다.
교회에서는 사람이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성도는 일꾼이고 섬기는 자이고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왕노릇하는 자들이 있었다. 권세를 쓰고 주장하고 편을 가르고 으뜸이 되려는 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진정한 왕이 되려면 이 땅에서 섬기고 종노릇해야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생활을 많이 해야 진짜 왕이 될 수 있고 사도들과 함께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왕이다. 

9절
장차 왕노릇하게 될 사도들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이 사도들을 죽이기로 작정된 자와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다고 했다.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두셨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심한 고난을 받아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당시 사형의 방식 중에 사자 밥으로 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유배를 보낼때 지나가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도록 하고 멸시천대를 하게 했다. 

10절
우리와 너희를 비교하는 중요한 표현이 나온다. 대조하면서 설명한다. 우리는 사도이고 너희는 고린도교인 중에 당파를 만들어서 왕노릇하는 자들이다. 사도들은 주를 위해서 산다. 온전히 희생하고 충성한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약한 자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왕노릇을 했다.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했다. 사도들의 길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이렇게해서 나중에 천국에서 왕노릇 하겠느냐? 상을 받겠는냐? 책망하는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만 전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주님만 위하는 삶을 살때 사람들이 바울을 어리석은 자로 생각을 했다. 
고린도교인들은 자기들의 유익만 추구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약해졌다.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질까봐 한없이 낮아졌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당파 만들어 다투고 싸우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했다.
우리는 사도들의 길을 가는가? 고린도교인들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바울의 길을 가야 한다. 낮아지는 길, 멸시천대 받는 길, 고난 받는 길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가는 길이고 천국에서 상받을 모습이다. 

11절
바울은 제대로 먹지 못해서 주리고 제대로 마시지 못해서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정처가 없었다. 고난 받으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복음 전하느라 고통을 당했다. 

12절
바울은 친히 수고하며 일을 했다. 자기 생계를 자기가 책임을 졌다. 물론 성도들이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직접 일하면서 전도하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모욕을 당하면 축복을 해주었다. 박해를 받으면 참았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복음이 잘 전해지고, 주님이 높아지기를 원하면서 낮고 천한 길을 가면서 믿음을 지켰다. 

13절
바울은 비방 받을 때에도 사랑으로 잘 권면했다. 그리고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했다. 

14-15절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면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권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승과 아버지를 비교해서 설명했다. 바울은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고린도교인들에게 사랑으로 권면한다고 했다.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지식을 전하면 끝이다. 그 후에는 책임이 없다.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양육한다. 사랑으로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신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권면하고 있다.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복음으로 거듭나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해산의 수고를 한 것이다. 

16절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앞의 내용을 다 연결해서 결론적으로 말한 것이다. 왕되려고 하지 말고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라고 되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바울은 굉장한 사람이다. 왠만큼 잘해서는 이렇게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일꾼으로서 충성을 다했다. 하나님 앞에 서면 판단해주실텐데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만큼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향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런 바울을 본받아야 하겠다. 이런 충성, 희생,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을 본받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으면 훌륭한 아버지이다. 그 정도만 살아도 잘 산 것이다. 

17절
디모데를 보낼텐데 바울이 각처에서 어떻게 행하는지, 어떻게 가르치고 희생하고 충성하는지 설명해줄 것이라고 했다. 

18-19절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서 잘 권면하고 책망하고 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해주는데 듣지 않는다. 오히려 교만한 마음을 먹고 대적한다. 고린도교회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바울의 권면을 듣지 않았다.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시면 고린도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서 말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당파 만드는 자들은 말은 그럴듯 한데 실제 능력이 없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자들이 말이 많다. 그들에게 능력이 있는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기도의 능력, 전도의 능력, 겸손히 섬기는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자인지, 말만 하는 자인지 보겠다는 것이다. 참된 종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에 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을 살려야 한다. 고린도교인들에게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다. 생명 살리는 능력, 복음으로 영혼 구원하는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다. 

21절
다음에 고린도교회로 올 때 회개하고 돌이켜서 잘 순종하면 온유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의 말씀으로 대할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당파 만들어서 계속 싸우면 매를 가지고 와서 책망할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인지 책망하실 것인지 우리가 믿음생활한 것에 달려 있다. 칭찬 받으려면 말씀 순종하고 말씀대로 희생하고 고난의 길을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종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고 섬기고 주인만 높여야 한다. 종이 높아지려고 하면 안된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 종의 자리에서 섬기는 위치에 있어야 하겠다.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