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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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7장 1-16절, 결혼의 원리, 강우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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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8-31 21:24 조회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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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LF2XMHS3Krg


고린도전서 7장 1-16절 결혼의 원리(강우용 목사님) 


1. 하나님이 내신 결혼제도(1-6)

2. 독신 생활의 장단점(7-9)

3. 이혼하지 말 것(10-16) 


7장부터는 고린도 교인들이 써서 보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문제의 근원이 뭔가? 1절에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했다. 이 진술이 "바울의 말인가? 고린도교회의 슬로건인가?"에 대한 신학계의 갈등이 있다. 그런데 병폐가 생겨났다. 천주교 신부들이 독신생활을 하고 사제들이 수도원에서 독신생활을 했다. 그래서 칼빈은 바울이 특수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여 말한 것이지 보편적 선물은 결혼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천주교를 비판했다.

그런데 오늘날 다른 주장이 있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표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번역본 중에는 이 부분에 따옴표를 붙였다.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결혼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2절을 보면 명백하게 말씀한다.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라고 했다. 

본문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단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다. 

바울은 결혼이라는 주제를 언급하지만 신학적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결혼관을 정립하여 올바른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의 근거는 뭔가? 창세기 2장 18절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아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아담이 완전한 존재로 태어났느냐? 아니다. 완성된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고,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대로 하와의 창조 이후에 완성형이 된 것이다. 


3절을 보면 남편과 아내를 평등하고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다. 1절을 다시 보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라고 했다. 여기서 주어는 남자이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면 남자가 더럽혀진다는 인식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다. 바울은 이것을 간파하고 남자와 여자를 상호 동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계약적 의무를 말한다. 빚을 진 자는 마땅히 상환을 해야 한다. 남자도, 여자도 서로 동등하게 자신의 성욕으로 인해 부부관계를 갖고 싶다고 할 때 남자가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여자가 일방적으로 무시하면 결혼의 원리에 합당하지 않다. 현재적 정서로는 안맞을 수 있다. 

요즘 결혼이 무너져 가고 있다.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것이다. 서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랑은 하지 않고, 결혼을 통해 내가 좋은 것만, 이익을 취하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다. 


4절에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라고 했는데,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에 자기 부인의 원리가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주님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피값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은 신부인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랑 신부의 언약적 사랑의 관계를 결코 깨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결혼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지상에서 드러내는 표상이다. 결혼 제도의 원형은 예수님과 몸된 지체인 교회이다. 이 원리를 모르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자기 만족, 자기 유익을 위해 결혼을 한다. 자기는 정결하고 여자는 더러운 것처럼 생각한다. 

이 당시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이 영향을 끼쳤기에 남성우월사상이 팽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자는 완전한 존재, 여자는 불완전한 존재, 기형적 존재라고 했다. 어떤 철학자는 신이 남자만 만들었는데, 남자가 죄를 짓자 그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시대상에서 바울이 말하는 남녀평등의 발언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다. 


5절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이것이 요점이다. 1절에서 말한 "너희가 쓴 문제"를 논하고 있다. 왜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고린도 교회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안썼을까? 교회가 게바, 아볼로, 바울, 그리스도파로 분열되었는데 그것은 쓰지 않았다. 근친상간의 죄도 기록하지 않았다. 음행에 관한 문제도 숨겼다. 그러면 지금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써 보낸 것에 대한 의도가 진실된 것 같은가? 아니다. 

바울의 조언을 구하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진실되게 써 보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써 보낸 것이다. 바울은 그 의도를 알면서도 질책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지식만 취할 것이 아니고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다. 맨 마지막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바울은 이것을 실천하면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5절에 분방하지 말라고 하면서 예외조건을 세가지 말했다. 첫째, 기도하기 위해서, 둘째, 합의상 할 수 있고, 셋째, 얼마 동안만 하라고 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보편적 선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한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것인데, 결혼한 부부 관계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가 얼마든지 경건한 신앙생활, 영적 충만한 기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언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서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기도할 때 잡념이 들어오면 기도에 전념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독신으로 가야될까? 결혼한 부부가 육체적 관계는 부정한 것이니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 독신생활로 가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하나님이 결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다시 합하라" 분방했을지라도 다시 합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사람은 성적인 문제를 절제하기가 어려운 존재이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창조하신 목적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는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해야 할 책무가 인류에게 있다. 이것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독신은 정상이 아니고 우월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다. 단순히 남녀가 성적으로 연합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6절에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고 했다. 이 구절도 신학적으로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뭔가? 6절 앞부분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고, 6절 뒷부분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다. 설교자는 6절 앞부분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생육과 번성의 목적의 발판을 마련한다.

7-9절

결혼이 기본적인 원칙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절대 깨뜨리지 말아야할 것인데, 절제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독신생활을 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독신을 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일생을 헌신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겠는가?

이사야 43장에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자기를 위해 창조하셨다고 했다. 궁극적 목적은 육체적 결합으로 낳은 자녀를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예배자로 키우는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것은 결혼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신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실 증거가 바울이 디모데를 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를 영적 아들로 삼고 자기 목회를 넘겼다. 로마서 16장에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라고 말한다. 교회가 이런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서를 시작하면서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다. 교회 구성원인 성도는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는 자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결혼 관계가 기본 원칙이고, 꼭 지켜야 하고,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신도 하나님의 자녀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을 썩을 것이지만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그래서 몸이 귀하다. 더럽고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9절에 다시 결혼으로 환원을 한다. 불같이 타오르는 성욕을 제어하기 어려운 존재요 사탄에게 시험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10-11절

핵심은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를 보면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라고 할 때에는 수동태로 쓰였고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할 때에는 능동태로 쓰였다. 이것은 여자들이 받는 핍박을 잘 견디라는 것이다. 

여기 괄호가 나오는데, 어떤 사본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기록되지 않은 경우에 괄호로 표기를 한다. 


12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오해하면 안된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고린도는 그리스 지역에 있고 대부분 이방인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직접 가르치신 내용이 없다. 그러나 그 전통을 고스란히 가져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것은 권위가 있고 뒤의 것은 권위가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버리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그 전까지는 좋았다고만 하셨는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부부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인간적 잣대로 판단해서 믿지 않으니 버려버려, 나에게 도움이 안돼, 그를 버리는 것이 신앙적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14절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도 거룩해야 한다. 그런데 믿지 않은 자들도 믿는 가정을 통해 거룩하게 만들어가신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 신랑 예수님과 신부 교회.. 주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언약적 사랑을 깨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결혼과 가정을 통해.. 가정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육적인 자녀를 낳아서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그들의 믿음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들이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결혼, 가정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바로 세워야 한다.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다. 출산률이 최저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혼하기 힘들다.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결혼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 안다면 변화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먼저 앞장 써서 힘을 써야 한다.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있는데, 우리 자녀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다. 기도하고 물질로 헌신하고 직접 참여하여 몸으로 봉사해야 한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언약적 사랑을 신실하게 믿음의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게 못하니라" 가정을 통해 자녀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가정을 통해 믿음의 후손들로 이어갈 수 있도록, 거룩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 


16절

우리는 알 수 있는가? 없다.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내신 제도이다. 신성한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시면서 부부관계를 통해 믿음의 계대를 이어가도록 역사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결혼관을 확립시켜줘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시고 아름다운 우리의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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