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20928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9장 23-27절/신앙의 달음질)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9-28 21:46 조회351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5QmgJCQzCOc


1.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23)

2. 면류관을 얻도록 달음질하라(24-25)

3. 자신이 버림이 되지 않기 위하여 달음질하라(26-27) 


23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모든 일을 했다고 고백한다. 복음이 가장 중요하고 인생의 최우선 가치이고 복음을 위해 인생을 바치며 살아왔노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앞에서 자신에게 사도의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고 오직 복음만을 위해 충성했음을 밝혔다. 여기서도 그 말씀을 다시 한다.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이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인들이 구원받고 영생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복음을 위해서 부르셨다고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바울은 자나 깨나, 감옥 안에 있느나 밖에 있으나 복음만 생각하고 복음만 전하는 일에 전심을 다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한다고 했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했다. 복음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서 살았고 앞으로도 복음을 위해서 살겠다고 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을 위해 모든 형편에 처하겠다고 했다. 복음을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으로 평생 살아왔다.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이유가 자신이 복음에 참여하고자 한다는 목적이다. 복음을 남에게 전하고 남을 구원하는 일을 귀한 것인줄 알고 평생 충성해왔는데, 자신도 복음에 참여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 뭔가? 복음을 소유하고 그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누리고 그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을 남에게만 전해주고 자기와는 상관없이 사는 것이 아니고 이 복음을 소유하고 믿고 누리면서 그 은혜로 살기를 소원한 것이다. 이것이 다 복음을 위하여 라는 말씀 속에 들어있는 의미이다. 


복음을 위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목적과, 자신이 복음으로 살기 위해서, 영이 자라고 은혜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면 남을 살리는 일도 되지만 자기가 사는 일도 된다. 설교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은혜를 받고 자신을 살리는 일도 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0)

바울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소원이요 목적이라고 했다.

바울은 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갔다. 밥을 잘 만들고 반찬을 마련해서 남을 잘 먹였어도 자신이 굶고 병들어 죽어가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바울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복음을 남에게만 전하고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기 원치 않았다. 자신이 말씀으로 은혜와 능력을 받고 기쁨을 누리길 소원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24절

바울 당시에 고린도 지역에서 2년마다 한번씩 운동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경주에서 상 받는 사람은 한사람 뿐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달리지만 1등을 해야 상을 받는다. 바울은 이것을 비유해서 성도의 삶을 설명한다.

당시에는 운동경기에서 1등을 하면 월계관을 주었다. 그 월계관은 며칠 지나면 시들고 만다. 순간은 영광스럽지만 월계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 영광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다. 오늘날은 금메달을 주는데 그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다. 그러나 금메달도 사라질 영광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살면서 잠깐 누리는 상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다. 세상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훨씬 가치있고 보배로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찮은 썩어질 영광을 위해서도 달음질하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서 달음질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바울은 면류관을 바라보고 살았다. 앞에 있는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달음질을 했다. 모든 성도들에게 그것을 바라보라고 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바울에게는 푯대가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이 위해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기 위해 그를 전도자로 부르셨다. 바울은 그 상을 바라보고 달음질을 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8)

열심히 달음박질 한 다음에 노년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면류관을 얻도록 달음질을 해야 한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우리도 이같이 해야 한다. 온 성도들이 상급을 바라보고 달음질 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경주와 같다. 산책이 아니다. 여기저기 구경하는 모습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선수와 같이 달음질해야 한다.

세상 경기에서는 1등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 그러나 신앙의 경주에서는 열심히 달리고 충성하면 다 상을 받는다. 충성스럽게 달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 다섯 달란트 사람이 가장 많이 남겼는데 그만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충성하므로 칭찬을 받았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할 필요 없다. 나 자신이 열심히 달리고 충성스럽게 복음을 위해 달리면 된다. 자기의 경주는 스스로 해야 한다. 누가 대신 달려주지 않는다. 대신 봉사해주고, 말씀 지켜주고, 기도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내 경주는 내가 해야 한다. 내가 복음 전하고 말씀 지키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리석은 자이다. 믿음생활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갈 5:7)

갈라디아 교인들이 달음질을 잘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가 들어와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을 듣고 달음질을 멈췄다. 믿음 생활 못하게 하는 것은 나를 망치는 것이다. 신앙의 달음질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해야 한다. 


25절

상을 받으려면 이기기를 다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힘써서 몸부침치고 애쓰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이 마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이 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 마음 자세부터 틀렸다. 그렇게 해서는  열심 내지 못한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 


이기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절제를 해야 한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힘쓰고 달음질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자는 선수촌에 들어가서 세상 일을 절제하고 훈련에 집중한다. 밖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한다.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계획에 따라 철저하게 훈련한다. 먹는 것을 조절하고 휴식도 조절하고 잠도 조절한다. 이른 새벽부터 훈련하고 늦은 시간까지 훈련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기는 길로 가는 것이다.

바울은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해야 한다.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육신의 욕심대로 하면 안된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는 상 받을 수 없다. 절제해야 한다.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 절제가 나를 위한 것이다. 나에게 유익과 복을 가져다 준다. 


26절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해야 한다. 방향을 바로 하고 푯대를 향해 달음질을 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열심히 가도 헛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달음질을 한다. 초 스피드로 달린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무엇을 향해 달음질하는지 모르고 달려간다. 

바울은 그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방향이 있어야 한다. 푯대가 있어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달음질을 해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 가야 한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딤후 2:5)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을 못받는다.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권투 선수들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면서 훈련한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는 허공에 주먹질해서는 소용없다. 우리의 대적은 마귀이다.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한다. 적을 모르고 허공에 주먹질 하고 자기 편끼리 싸우면 손해보는 일이다. 


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 몸이 원하는대로 살면 안된다. 육체가 원하는대로 따라가면 반드시 실패한다. 몸에는 육체의 부패성과 타락한 죄성이 있다. 그래서 말씀과 반대되는 길로 가려고 한다. 이 육체의 소욕을 쳐서 복종시키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한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라고 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남이 해줄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고 이기고 절제하면서 믿음 지키는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이기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이기지 못해서 진다. 오늘날은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려고 한다. 세상을 다 정복하고 그것이 부족해서 우주까지 정복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기지 못한 것이 있다. 자기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져서 죄짓고 후회하고 실패한다. 제일 많은 실패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이기면 세상을 이기는 것보다 위대한 사람이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2~13)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육신의 쾌락, 방탕, 나태한대로 쫓아가면 실패한다. 영적인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중생한 영이 육체와 싸워 이겨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슬러 싸운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도록 거슬른다. 그것을 죽이고 승리해야 한다. 가장 큰 원천이 내 안에 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 당할수 있다. 바울은 이것을 두려워 했다. 


상 받는 사람이 되려면 우선 상급을 바라봐야 한다. 면류관을 바라봐야 한다. 면류관을 바라보지 않고 소원하지 않고 푯대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상 받도록 달음질해야 한다. 그 상을 내것으로 삼기 위해서 달음질해야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급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 복음을 위해서 달음질하고, 상받기 위해서 힘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향방 없는 것같이 하지 말고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법대로 해야 한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기도, 말씀순종, 복음전도 모두 자신을 이겨야 가능하다. 영적인 달음질에서 승리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바울은 달음질을 잘하고 사명을 잘 감당했다. 그리고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우리도 신앙의 달음질을 잘해서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