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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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1 주일오전예배 설교(빌레몬서 1장 17-25절/내 앞으로 계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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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2-11 15:07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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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lqRvF3aFVBg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만나 변하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그를 잘 영접해달라고 부탁합니다.

1. 오네시모를 영접하라(17절)
첫째.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17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부탁하면서 자신과 빌레몬과 관계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선생이고, 인도자이고, 동역자였습니다. 함께 하나님 일을 하면서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적용해봅시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고, 예수님이 나의 왕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둘째. 그를 영접하고(17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말합니다. 잘 대접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법대로 한다면 죽여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부탁합니다. 오네시모를 받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빌레몬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도망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부탁을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의 원수가 된 사람을 주님이 받아주라고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대신 피 흘려 구원한 성도를 내가 외면하고 있다면, 주님이 용서한 사람을 내가 정죄하고 있지 않다면 옳지 않습니다. 로마서 14:15에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 고린도전서 8:11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내가 미워하는 그 형제도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성도의 존엄과 가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세리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새사람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세리를 미워하고 정죄했습니다. 세리를 용서하고 받아준 예수님까지 정죄합니다.
셋째. 내게 하듯 하고(17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대할 때 내게 하듯이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이 말은 종을 형제로 대하라는 말이고, 원수를 형제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영접하고 받아준 사람을 빌레몬이 영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을 무시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영접하고 받아준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고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했고(10절).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16절)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여 형제가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6장에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엡 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5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6:1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4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5에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엡 6:9에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같이 하고” 우리가 이웃에게 주님께 하듯이 하면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변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거기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2. 내 앞으로 계산하라(18절)
18절에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바울이 계산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대신 지불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갚을 빚을 바울이 대신 갚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빚진 것을 대신 갚아주신 분이 계십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대신 책임지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대신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으면서 내 죄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19절에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중요한 말은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이 바울 사도에게 어떤 빚을 졌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사랑의 빚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것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오네시모를 용납하고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받아야 할 것을 안 받고, 주지 않아도 될 것을 자기가 대신 주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빚을 대신 지불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0절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1절과 7절에서 바울은 이미 빌레몬을 통해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도들도 평안을 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기쁨을 얻기 원한다고 한 것은 오네시모를 잘 영접해 달라는 것입니다.
21절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바울은 빌레몬이 순종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신뢰했습니다. 빌레몬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실천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말한 것보다 더 행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보통 부탁을 받으면 몇 가지 중 하나만 들어줍니다. 대충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은 바울이 부탁한 것 이상으로 더 행할 것이라는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3. 바울 곁에 있는 동역자들(23-24절).
23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 바울은 이 편지 서두에서 디모데가 함께 갇혀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함께 갇혀있는 사람 에바브라를 소개합니다. 그가 바울 곁에서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일군이었습니다. 에바브라 때문에 골로새 교회가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골 1:7-8). 바울은 사도이고, 하나님의 일군이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런 바울과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결국 유익입니다. 악한 자와 함께 하면서 유익을 누리는 것보다 의로운 자와 함께 하면서 고난받는 것이 복입니다.
24절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바울은 1절에서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또 다른 동역자를 소개합니다. 그들로 인해 서로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
“마가” 바울의 동역자 중에 마가가 나옵니다. 마가는 바울 곁에서 함께 고난을 당하면서 동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마가가 바울의 1차 선교 사역에 동참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 일행이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가가 지금은 변했습니다. 훌륭한 동역자가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다고” 이 사람의 행적이 많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29, 27:2에 보면 바울이 큰 고난을 당할 때 이 아리스다고가 항상 곁이 있었습니다.
“데마” 바울의 동역자이고 로마 옥중에서 함께 수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어떻습니까? 디모데후서에서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 사도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잘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실패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도 중도에 실패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누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고 바울의 아주 중요한 동역자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하고 로마 옥중에서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하며 바울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11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는 의사였습니다. 바울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마다 주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 곁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함께 일한 동역자들입니다. 중도에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고, 끝까지 함께 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복을 받습니다.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의 마지막 축복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힘들어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면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은혜는 기대하면서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는 받고 싶지만 어렵고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에도 함께해야 영광에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함께해야 은혜에도 함께 합니다.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심령이 건강하려면 은혜가 필요합니다. 심령이 강건해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장하실 때 기록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심령이 강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심령이 건강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심령이 강해집니다. 심령이 강건하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를 배신하고 손해 준 사람도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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