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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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1 수요예배 설교(이사야 7장 14-16절/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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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2-21 21:34 조회3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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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URFP-2fIXmQ


1. 주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 것이다(14상)

2. 임마누엘이라 이름하셨다(14하)

3.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하셨다(15-16)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말씀이다. 유다 나라의 구원과 연결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한 죄인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잘 살펴야 한다(1-13절).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아람의 르신 왕이 동맹하여 유다로 쳐들어왔다. 북 이스라엘과 일대일로 싸워도 승산이 없는데 연합군이 쳐들어오니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인생들, 멸망할 죄인들의 상황을 연상케 해주는 내용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삼가며 조용하라" 원수들이 많다고, 대적들이 강하다가 두려워 떨면서 흥분하거나 낙심하거나 도망치려 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조용히 삼가라는 것이다.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궁이에 나무에 불을 뗄 때 부지깽이가 필요하다. 부지깽이를 한참 사용하다보면 불에 타서 점점 작아져서 조그만 막대기가 된다. 동맹군의 기세가 대단하고 큰 불을 피우며 달려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부지깽이 같이 보잘 것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들이 유다를 멸망시키고 원하는 자로 왕을 세우려고 계획했지만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아람의 수도는 다메섹이고 왕은 르신이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고 왕은 르말라야 아들 베가이다. 이들은 인간일 뿐이다.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남 유다는 하나님이 지키시고 다스리고 계신다. 사람과 하나님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수가 많아도, 아무리 왕이라도 하나님을 이길 자는 없다. 오히려 북 이스라엘이 65년 내에 패망하고 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가? 안전하고 소망이 넘치는 은혜의 말씀이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귀한 말씀을 주셨다. 멸망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히려 북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 라는 소망의 말씀을 주셨지만 믿지 않으면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복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믿고 붙들어야 한다. 말씀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 성경에 얼마나 복된 은혜의 말씀이 많은가? 하지만 믿지 않는 자와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 믿어지지 않다면 징조를 구해보라고 했다. 말씀대로 이루어주신다는 특별한 징조를 요청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믿게 하시려고 애를 쓰고 계신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서 병을 고쳐주시고 생을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자기 병이 낫는다는 징조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래서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나님께서 이 요구까지 들어주셨다. 천체를 움직이는 기적을 통해 히스기야의 요구를 들어주시고 그의 병을 낫게 해주셨다. 이처럼 아하스에게도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여기에 대한 아하스의 대답이 12절에 나온다.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대답을 잘 한 것 같은가? 잘못된 대답이다. 얼른 보면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징조를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의심이 나고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구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거부하면서 믿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징조를 구하는 것은 믿지 못해서 하는 것이니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시험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걱정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다 변명이고 핑계이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했다.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왕하 16:7~8)

강대국 앗수르 왕에게 나는 왕의 신복, 왕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자기 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사정하면서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가져다가 바쳤다. 아하스는 믿음 없는 왕이다. 


그런 아하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사 7:13)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를 책망했다. "다윗의 집이여" 다윗의 계통으로 왕위를 이어받는 아하스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왜 괴롭게 하냐고 꾸짖고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고 기도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을 믿으라고 하신다. 은혜와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주시면서 믿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구하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은혜와 복을 받는다. 그런데 말씀을 믿지 않고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기뻐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반대로 믿지 않는 자를 안타까워 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믿어야 한다. 그런데도 믿지 않고 거부할 때 안타까워 하신다.

아하스 왕의 모습은 참 한심하고 불신앙적이고 하나님을 괴롭히는 철없는 모습이다. 그런 아하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14절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그러므로" 가 중요하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믿지 않는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지 않는 아하스에게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앞의 내용과 14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문맥상으로는 책망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갑자기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순간이다.

원수들의 침략으로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이 다 죽어가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짖지 않는 죄악의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징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와 같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말 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의 표시이다. 놀라운 축복의 징조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택한 백성들을 살리시고 구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가시는 일이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6~7)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주님께서 오셔서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말씀이다. 독생자를 보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친히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이 열심을 내셔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죄인들을 믿게 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아하스 왕을 보면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기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은혜로 주신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징조의 내용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징조이다. 이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되어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2~23)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사야가 예언하고 약 700년 후에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셨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죄인들을 살려내셨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거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징조이다. 사람이 구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보내주셨다. 이것이 은혜이고 사랑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기적, 징조를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 나신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징조이다. 중요한 것은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믿지 않으면 예수님, 말씀과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한다. 


15절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가 없으시다. 택한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택한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해주신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의를 이루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의를 완성하셔서 믿는 자들에게 입혀 주신다.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신령한 젖과 꿀이다. 은혜를 누리며 신령한 복에 참여할 것을 말씀해주신 내용이다.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주님의 탄생을 예언하셨고, 2천년 전에 주님께서 탄생하셨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이 모든 구원의 징조가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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