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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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3장 1-5절/그리스도의 편지, 강우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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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2-01 21:09 조회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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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ji1YQWo8x4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그리스도의 사도(1:1)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롬 1:1) 그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만을 전했습니다(4:5). 증거는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너희는 우리의 편지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편지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고린도 교인들의 바울의 편지임(1-2절)

2.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임(3절)

3. 하나님의 은사(4-5절)


1-2절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상황을 볼 때, 자신이 말하고 썼거나, 읽고 전했던 모든 것들이 변질되기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고후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추천서를 빌미로 바울을 공격했던 것 같습니다. 거짓 교사들과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니 검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물론 바울에겐 이런 것이 필요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추천서를 가진 사람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증서를 갖고 있는 자신들을 가리켜 ‘큰 사도’라고 자처했던 것 같습니다. 


고후 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자신이 큰 사도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정작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 사도는 다시 자천하거나, 너희에게 추천서를 부치거나 너희로부터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면서 자신의 사도직을 변증합니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추천서 자체가 나쁘다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뵈뵈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롬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추천서를 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기 위해 추천서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큰 사도임을 과시하려는 증거로 추천서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추천서로 진정한 사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도 바울에게 추천서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바울의 추천서는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었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다같이 해볼까요?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그러면서 어떤 편지인지를 설명합니다. 


“우리 마음에 썼고” 

 당시는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가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파피루스나 양피지가 종이 대신 쓰였는데요, 바울은 그런 것이 아닌 ‘우리 마음’에 썼다고 밝힙니다. 무슨 뜻일까요? 마음에 쓴 편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워질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들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늘 함께 합니다. 이런 비유를 통해 바울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추천서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과 얼마나 깊은 신앙적 관계인지를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바울이 가서 복음을 전해 개척하고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가르치고 양육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복음과 말씀으로 교인들의 심령이 살고 영혼이 자라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인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요 참 사도”라는 편지이며 추천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만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다른 사람들도 고린도 교인들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편지인 고린도 교인들을 통해 무 사람이 바울을 읽고 알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바울은 너희는 우리의 편지일 뿐 아니라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씀합니다. 바꿔 말해, 그리스도께서 편지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을 사용하셔서 기록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믿기 전에는 죄 중에 살면서 악하고 불량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후에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새 사람,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선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거룩하고 진실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성도가 불신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죄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의 편지가 아니라 마귀의 편지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편지는 봉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썼으나 실제로는 마귀의 편지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신자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도의 길을 내가 스스로 막아버리는 셈이 됩니다. 불신자가 성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으면, 복음 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잘못 읽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짧은 생각,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탄방교회 성도님들 모두 항상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아시고, 편지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고, 

둘째,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먹과 하나님의 영, 돌판과 육의 마음판을 대비시킵니다. 


돌판 하면 ‘십계명’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편지는 돌판에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육의 마음판에 쓴 것입니다.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은 성도의 신앙 인격을 가리킵니다. 성령으로 인해 중생한 영혼의 역사가 마음과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신앙 인격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중생한 영혼이 성령으로 마음을 이용하고 또 그 마음이 육체를 이용해서 신자의 인격(몸)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써나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편지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말씀을 받아 중생한 영혼이 그 말씀대로 자라가야 합니다. 성도가 중생한 영혼이 자라난 만큼 마음과 육신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많이 쓰여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많은 상을 받습니다.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5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편지를 쓰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를 통해 기록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종이요 복음의 일꾼이며,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해 일하신 결과임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결과, 열매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통해 일하신 그리스도의 열매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자신은 전적으로 무능함을 고백합니다. 


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바울 사도는 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뭘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로, 업적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함 되십니다. 우리가 무능할 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만족’은 충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족할 만한 능력, 충분한 자격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누구였습니까? 유대 민족주의자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예수님께서 친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던 자를, 교인들을 잡아다 옥에가두던 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 직분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자격 없는 자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자로 살게 하신 은혜!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라고 심령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을 바울 사도는 일평생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송영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충성하며 헌신하십니다. 그런데 남들이 알아줄 때도 있지만, 인정해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떠십니까? 무거우시죠. 어쩌면 “내가 다시는 봉사하나 봐라”라는 투정이 나도 모르게 나올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낙담할 만한 일이 있었음에도, 다음날 보면 또 팔을 걷어 부치고 봉사하고 계십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못 본 체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기억해 달라고, 함께해 달라고, 능력의 장중에 붙들어 달라고... 그분들의 신앙인격과 삶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아달라고... 그렇게 조용히 기도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교역자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일하고 봉사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택해주시고 불러주시고 세워주셨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자격을 주신 분도, 능력을 주신 분도, 만족케 하는 분도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부터 36절까지 말씀 읽고 마치겠습니다.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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