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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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5장 1-10절/땅 위의 장막과 하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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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3-01 21:16 조회3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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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UBATRx4WOrg


1. 땅에 있는 장막(1)

2. 구원을 이루기 위한 성도의 탄식(2-5)

3. 사도 바울의 거룩한 소원(6-10) 


1절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육체를 가리킨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 영혼이 주체이고 본질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체를 집처럼 거하고 사는 것이다.

장막 집은 임시로 사용하는 천막을 의미한다. 따라서 육체, 장막 집은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집으로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집이다. 영혼이 육체를 장막 집으로 삼고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육체를 벗고 하늘나라로 들어간다.

장막은 영원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다. 임시로 사용하고 무너질 약한 집이다. 우리의 육체가 그렇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안개와 같다. 잠시 후면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우리의 인생이 잠시 지나가는 것과 같은 짧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 1:24)

육체는 풀과 같다. 육체의 영광을 풀의 꽃과 같다. 잠깐 피어나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금방 시들고 떨어진다. 풀도 금방 말라지고 베어지고 없어질 것이다.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육체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아무리 건강하고 아름답고 젊은 사람도 잠시 후면 다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불신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죽은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한다. 믿는 자는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 형벌을 받게 된다. 


다른 집을 하나 소개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하늘나라, 천국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다. 그런데 손으로 지으신 집이 아니다. 영원하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집이다.

이 집은 성도들이 육체의 장막을 벗은 다음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집이다. 

이 두 집에 대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알고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육체의 장막이 잠시 후에 무너질 것을 알아야 하겠고, 하늘의 집이 영원하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11) 


죽고나서 알면 늦는다. 육신 중심으로 살다가 죽어 보니까 지옥과 천국이 있다. 믿는 사람만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것을 죽은 다음에 안다. 그러면 늦는다. 

알고 있는 성도들 중에도 지금 준비를 잘해야 한다. 하늘나라에서 많은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께 상받는 인생이 되려면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아야 하고 덧입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늘나라 중심으로 살았다. 아브라함도 천국을 본향으로 두고 살았다. 세상에서는 나그네로서 장막을 짓고 살았다.

우리의 인생은 잠깐이다. 여름에 휴가가서 바닷가에 텐트 쳤다가 하루 이틀 후에 걷는다. 그와 같다. 본향에서 잘 살아야 한다. 영원히 살 곳이다.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 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집이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지으신 새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 생활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2절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탄식이 많다. 많은 고통과 환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탄식한다. 이것이 육신의 삶이다. 바울도 자신의 육체의 부패성과 죄성 때문에 탄식을 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실제로는 죄를 짓는 것 때문에 탄식했다. 왜 온전하게 육체의 죄성을 벗지 못하고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는가 를 생각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탄식했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져야 하늘에 있는 신령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국에 들어가 영광스러운 곳에서 살 수 있다. 성도는 죽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 육체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죽음이 복이고 천국 문에 들어가는 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탄식했다. 그리스도로 옷입어 거룩해지기를 원했고,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구원을 많이 이루어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잘사는 것을 소망하며 탄식한 것이 아니고 잠깐 살다가 끝나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예수님을 닮은 신령한 자가 되기를 원했다.

좀 더 말씀을 잘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예수님을 닮은 새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다. 이를 탄식하며 힘을 썼다. 육체의 부패성을 이기고 신령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날마다 애썼다.

우리도 이런 탄식을 해야 한다. 이런 애통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3절

부끄러운 구원을 면하려는 소원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구원받았고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고, 전부가 아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간 사람 중에 상을 많이 받는 사람과 적게 받는 사람이 있다. 그것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3장에 집 짓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터는 예수 그리스도, 건축 재료는 여섯가지이다. 금과 은과 보석, 나무와 풀과 짚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집 짓는 것으로 비유하여 설명했다. 크게 나누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사람, 나무, 풀, 짚으로 짓는 사람이 있다. 다 짓고 나면 공적을 나타내는데, 불로 나타낸다고 했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4~15)

무엇으로 공적을 밝히나? 불로 태워봐서 그대로 남아있으면 상을 받고 다 타서 없어지면 해를 받는다. 나무, 풀, 짚은 불에 잘 탄다. 이것으로 집을 지으면 공적이 없어진다. 그러나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으면 불로 태워도 없어지지 않는다.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은 자는 영광과 칭찬과 상을 많이 받는다. 면류관 쓰고 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런데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지은 자는 세상 중심으로 산 자이다. 불로 태우면 공적이 남지 않아서 벗은 자로 발견되게 된다.

예를 들어 밤에 자는데 집에 불이 났다. 갑자기 "불이야!" 라는 소리를 듣고 속옷 바람으로 뛰쳐 나왔으면 살았지만 부끄럽게 된다.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 있게 된다.

하늘나라에서 옷 입은 자, 공적이 없어지지 않은 자로 발견되기 위해서 바울은 탄식한다고 했다. 좀 더 주를 위해서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생활하기를 힘쓰고 애쓴다고 했다. 


4절

바울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탄식한다고 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한다고 했다. 짐진 것 같이 탄식한다고 했다. 벗고자 함이 아니다. 사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탄식이 아니고, 덧입고자 하는 탄식이다. 빨리 천국에 들어가 주님 만나고 영광을 누리고 신령한 사람으로 발견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탄식하는 것이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2~13)

믿는 사람이 사는 방법이 두가지이다. 육신 중심으로 사는 생활이 있다. 말씀을 들었지만 육신에 진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지 하면서 육신에게 진다. 육신의 쾌락과 욕심을 따라 자기 편한대로 이기적으로 산다. 그런 삶은 죽는 삶이다.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삶이다.

반대로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면 승리하는 삶이 된다. 육체로 사는 삶은 죽을 것이다. 그것을 이기고 그것을 극복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힘써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5절

죽을 것이 생명에 삼켜지는 것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우리가 힘쓰면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6-7절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 아노니" 육신을 갖고 세상에 사는 동안은 주님을 직접 모시고 사는 삶은 아니다. 주님과 분리된 상태로 육체에 메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육체를 벗어서 주와 함께 거하는 삶을 살게 되면 신령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주님을 믿음으로 행한다. 말씀을 믿음으로 행한다. 천국을 믿음으로 행한다. 눈에 보이는대로 육체 중심으로 살지 않는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대로 세상, 육체 중심으로 살면 늘 실패한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상 받을 것이 없는 삶이 되고 만다. 


8절

바울이 담대한 마음을 갖고 원하는 바를 말했다.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다. 죽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고 소망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천국의 삶을 소원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3)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2)

바울이 천국을 체험했다. 그런 바울이 이 땅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고 너무너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오직 바울에게는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라면 바울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천국가고 싶지 않다면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소원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있는 삶이다.

불신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러나 바울은 죽는 것을 더 좋아하고 천국에 가기를 소원하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9절

바울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했다. 빌립보서에서는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소망하는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천국에 가도 주님과 함께 있게 되니까 더 좋다고 했다. 


10절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자이시다. 믿는 모든 성도들도 마지막 때 심판대 앞에 선다. 심판은 공심판과 사심판이 있다. 공심판은 신자와 불신자를 갈라서 신자는 천국에 가고 불신자는 지옥에 간다. 공심판은 신자는 받지 않는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심판을 다 받으셨기 때문이다.

사심판은 주님 앞에 서서 행한대로 상받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았으면 칭찬과 상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칭찬과 상이 없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눅 19:22)

행한대로 상을 받는다. 충성하고 순종을 잘 한사람은 상을 많이 받고 칭찬을 많이 받는다. 이런 사심판을 우리가 다 받는다. 


"우리가 다" 한사람도 예외없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때 행한대로 받는다. 그때 칭찬과 상을 많이 받으려면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 믿음을 잘 지키고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한다. 세상 것으로 살지 말고 하늘나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상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장막에 거하고 있다.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잠깐 지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육체를 입은 기간동안 잠깐 세상에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육체를 벗고 영혼이 천국에 간다. 그런데 천국에서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 집을 잘 지은 자는 공적이 남아서 칭찬과 상을 받는다. 집을 잘 짓지 못한 자는 공적이 없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나그네로 있는 동안 헛된 시간 보내지 말아야 한다. 육신 중심의 허송세월을 살면 안된다. 짧지만 아주 중요한 인생이다. 왜냐하면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 어떻게 살았느냐가 나의 역사요 흔적이요 인생이 된다. 앞으로 사는 모습이 나의 흔적이 되어서 심판대 앞에서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을 것이다.

짧은 인생이 내세의 영원한 삶을 결정짓는다. 말씀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칭찬과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인지 이 땅에서 얼마나 믿음을 지키느냐 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탄식하며 덧입기를 힘쓰라고 한 것이다. 천국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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