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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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주일오전예배 설교(신명기 33장 26-29절/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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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3-05 16:06 조회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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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h1ukSFqqtlM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 묻는다면 ‘예 나는 행복합니다.’ 하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세 시대, 광야 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당신은 행복합니까?’ 물었다면 아마 대부분은 ‘나는 행복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본문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지 않고 그냥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이 행복한 자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33장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한 말씀입니다. 33:1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향해서 축복하고 결론적으로 한 말씀이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다가 해방되어 나왔습니다.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학교도 없고, 의복도 충분치 못합니다. 먹는 것도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밖에 없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광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들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 잘 되어 있는 것이 없는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행복한 사람입니까? 무엇을 보고 행복하다고 말씀했습니까? 오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했던 그 배경과 이유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행복의 근거를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행복한 모습이라고는 별로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특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데 “의롭다. 정직하다. 사랑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이사야 44:2에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누가 하나님 같겠습니까? 비교 불가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민족이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지만 하나님 같은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신이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것같이 그런 일을 행한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요 구원자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근본이요, 이스라엘의 축복이요, 이스라엘의 기업이요, 이스라엘의 상급이요,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창세기 15:1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방패이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상급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큰 상급, 이보다 더 좋은 상급이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목숨도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27절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하나님이 안전한 처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방패가 되십니다. 대적이 있어도 문제 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0:1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보호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품에서 안전히 거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는 아무리 세상이 험해도 안식과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27절에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팔로 붙들어서 그들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앞서가시면서 대적을 쫓아 주시고 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28절에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처소가 되어주시고 친히 능력의 팔로 보호해 주시므로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합니다. “야곱의 샘”은 생명의 역사를, “곡식”은 진리를, “새 포도주”는 은혜를 가리키고,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은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내리는 곳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영적으로는 교회입니다. 이런 은혜의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이며 주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것은 예배드리는 모습이고, 은혜받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발아래 앉아야 합니다. 그곳이 성도의 자리입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2. 여호와의 구원 때문입니다.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최고의 복을 받았다는 말이며,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집이 없고, 좋은 직장이 없고, 옷이나 먹는 것은 충분치 못해도 구원받았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부잣집 문 앞에서 구걸하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개들을 친구삼아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았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돈이 많고, 날마다 모여서 잔치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구원을 받지 못했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권세를 잡고, 박사가 되어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살다가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불 가운데서 영원토록 고통과 저주와 형벌을 받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그렇습니다. 구원의 가치는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크고 귀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혹시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은 안 계십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기뻐했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즐거워했고, 바울은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했습니다. 구원의 은혜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다가 붙들려 아그립바 왕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때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6:29에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보통 왕을 부러워하고 ‘나도 한번 왕이 되어봤으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왕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자를 뽑아서 둘씩 짝을 지어 보냈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전도하다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들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20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구원받은 것 때문에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십니까?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살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는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모세는 그 하나님의 선한 손길과 능력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보호하시는 백성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스라엘이여 너야말로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인 이스라엘, 그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오시고,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심 있게 이스라엘을 도우시는데 누가 감히 이스라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29절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여기에 ‘방패’와 ‘칼’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방패는 적의 창과 칼과 화살을 막아주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고 든든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의 칼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말렉과 싸워주시고, 아모리 왕 시온과 바산 왕 옥과 싸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날마다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21:5-8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지켜주는 사람, 하나님께서 도와주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29절에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대적들을 다 정복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대적이 아무리 많고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의 팔로 정복하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최후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구원 때문에 행복하고, 도우심 때문에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깨닫고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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