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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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7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11장 16-33절/바울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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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5-17 21:19 조회2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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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sfO17TiktLw

 

1. 바울이 부득불 자랑하게 된 이유(16-20)

2. 자랑의 내용(21-33)

 

은사와 지혜가 풍부한 사람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가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거짓 선생, 거짓 사도들의 미혹에 쉽게 넘어간 것이다. 바울은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이 거짓된 자들에게 그렇게 쉽게 속을 수 있을까 안타까웠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와 같이 속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한다.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삼가 조심해야 한다.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잡아 먹고 뺨을 치고 모든 것을 약탈하는 잔인한 일을 지절렀다. 교회를 흔들고 교인들을 분열시켰다. 바울이 이런 것을 바로 세우고 성도들을 믿음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자랑한다고 했다.

 

16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울은 원래 자랑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의 미혹과 거기에 속는 고린도 교인들을 보면서 부득이 자기자랑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돈 많은 사람들은 돈 자랑하지 않는다. 진짜 믿음 있는 자는 믿음 있다는 자랑을 하지 않는다. 진짜 사도는 자기을 사도라고 말하고 다닐 필요 없다. 그냥 주의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진짜 부모는 아들, 딸 앉혀놓고 자기가 아빠, 엄마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짜들이 자랑을 많이 한다.

그런데 바울이 부득이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26:5)

미련한 자를 가만히 두면 자기가 지혜로운 줄 아는 경우가 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해주므로 그를 깨우쳐 줘야 한다.

 

17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주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주님은 자기를 자랑한 적이 없다. 그래서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성령의 감동으로 한 말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18

자랑하는 자들은 육체를 따라서 자랑하는 것이다. 문벌, 학식, 가문, 의식 등 세상 것들을 앞세우면서 자랑을 많이 한다. 바울도 그런 것에 맞서서 자기 자랑을 하겠다고 했다.

 

19

풍자적인 말이다. 너희가 지혜롭다고 하더니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꾸짖고 있다. 이단에 넘어간 사람들을 보면 배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진짜 무지한 자는 이단에도 잘 빠지지 않는다. 계시, 은사, 체험, 예언을 조금 안다고 하는 자들이 더 잘 빠진다. 고린도 교인들도 그런 특징을 보였기에 책망하는 것이다. 지혜롭다고 하더니 어리석은 자들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서 진짜 지혜로운 자냐고 책망하는 것이다. 진짜 지혜가 있다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20

거짓 선생들, 이단들의 특징이 사람을 미혹해서 자기 종으로 삼는다. 미혹 받으면 거짓 선생들의 종이 되는 것이다. 잡아 먹는다. 온갖 것을 시키고 부려 먹으면서 이용한다. 물질을 약탈하고 시간과 힘과 재능을 다 착취한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자기를 한없이 높인다. 굉장한 사람인 것처럼 자기 자랑을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자리까지 자기를 높인다. 그래야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기에 자기를 높인다. 자기를 하나님, 구원자, 메시야라고 하는데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많다.

누가 미혹 받으면서 뺨 맞으면서 따라가는가? 실제 뺨 맞을 수도 있겠지만 업신 여김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끌려 다니고 종노릇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일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바울이 부득이 자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자기 자랑을 한다고 밝힌다.

 

21

바울이 무엇을 자랑했나?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 강한 것을 자랑했다. 바울은 자기 약한 것을 자랑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약점을 감추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약한 것만 자랑하면서 알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22

히브리인은 건너온 자라는 의미인데, 아브라함이 유브라데를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왔다. 그때 붙여진 이름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냐는 것은 메시야를 약속받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거짓 선생들은 자기를 특별한 자라고 자랑하면서 높인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그런 것이다. 바울도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너희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거짓 선생들만 그런가? 바울만 그런가? 고린도 교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23

고난 받는 것을 특별히 자랑한다. 바울이 정신 없는 말을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 일꾼이면서 내가 하나님의 참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정신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고난 받은 것을 낯낯이 밝힌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누구보다도 수고를 많이 했다. 주를 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수고를 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이런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됐다. 주를 위해 일하면서 이런 수고를 하고 고난을 당했다.

바울은 수없이 옥에 갇혔다. 빌립보, 예루살렘, 가이사랴, 로마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히는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러 차례 투옥됐다. 매도 참 많이 맞았다. 죽을뻔한 일도 많았다. 한두번이 아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또 복음을 전하고 목숨을 내놓고 주의 일에 힘썼다.

 

24

율법에는 태형을 가할 때 40을 넘기지 말라고 했다.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25:3)

40까지만 때리고 그 이상 넘어가지 말라고 하나님이 율법으로 주셨다. 40을 넘기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에 미리 하나를 감해놓았다. 이것을 가리켜 40에 하나 감한 매라고 부르는 것이다. 39대씩 맞는 태형을 다섯 번이나 맞았다. 이 태형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

 

25

태장은 로마의 태형을 가리킨다. 돌로도 맞았다. 배를 타고 전도를 가다가 세번이나 파선을 경험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면서 고난 받고 매맞은 것을 잔뜩 밝힌다.

 

26-27

바울이 30여년 선교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고난 받은 것이 사도의 표라고 했다. 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면서 이런 고난들을 당했다. 이것이 참 사도의 표이다. 바울만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모든 사도들이 고난을 당했다. 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당하고, 순교를 하면서 다 죽는다. 스데반도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고난을 많이 당했다. 한 곳에서 모여서 끝까지 믿음 생활하지 못하고 박해가 너무 심해서 흩어지는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이런 고난의 표가 없다. 그들은 인기만 얻으려고 하고, 영광만 누리려고 하고, 대접 받고, 높아지려고 한다. 자기 자랑만 하고 영광 받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누가 참 사도인가?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한다.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면서 표시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 부모의 삶이요 모습이다. 자녀에게 밥해놓고 자랑하고, 빨래해주고 상받는 자가 있는가? 누구나 다 고난 당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길을 간다. 이것이 참 일꾼, 참 사도의 모습이다. 가짜와 진짜가 뭐가 다른지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고난은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주님도 하님의 뜻을 순종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런 고난을 당하셨다. 수없이 고난을 당하시고 맞으시고 조롱과 수치를 당하시고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참 신앙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다 이와같이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쓰임받은 일꾼들이 다 이와같이 고난을 당했다.

우리도 믿는 일 하면서 고난을 당하면, 말씀 순종하다가 어려움을 겪으면 참 신앙의 표시인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의 삶이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모든 선배 신앙인들이 고난을 당했는데 우리도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되겠다.

주를 위해서 고난 당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5:11~12)

구약 시대 선지자들도 다 이와같이 박해를 당했다.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이 다 이같은 고난을 당했다. 그러면서 상이 클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다.

참 사도의 표징이 고난이다.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다. 우리도 참 성도의 표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다.

 

28

위에 열거한 것 외에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이후에도 고난을 많이 당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순교를 당한다. 이런 것 다 제쳐두고 교회를 위한 염려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바울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 걱정은 하지 않는다. 자기가 편안해지고, 높아지고, 잘 살고, 욕심 다 채우는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한가지 바울의 관심은 교회를 위한 염려이다. 교회만 잘되고 성도들만 잘 세워지면 자기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교회를 위한 염려가 없다. 그냥 자기 높아지고 자기 영광 얻고 욕심 채우는 것에 있다. 교회가 분열되어도 상관하지 않고 교회가 넘어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 욕심만 채우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자세와 목표와 태도가 다르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0:11~12)

목자와 삯군의 다른 점이 뭔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양을 위해서 산다. 그러나 삯군은 이리가 오면 도망간다. 양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참 사도인 바울의 자세는 교회를 위한 염려, 늘 교회가 잘되게 하는 것이 바울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거짓 선생들의 마음 속에는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만 가득했다. 누가 참 사도인지, 하나님의 일꾼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29

바울은 이렇게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다. 약해지면 자기가 약해진 것처럼 실족하면 가슴 아파하고 붙들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30

바울은 자랑한다고 했는데 모든 자랑의 내용이 고난 받은 것, 자신의 약한 것 뿐이다. 자기가 이루어놓은 업적, 큰 일, 귀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해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부족한 것만 드러내고 자랑했다.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면서 고난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의 약한 것만 자랑해야 하겠다.

 

31

"하나님이 아신다" 뭘 아는가? 바울이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이 보증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말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다.

주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자가 되어야 하겠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상이 어디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의 말에 대해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고 있다.

 

32-33

바울이 자신의 약한 것을 말하고 있다. 아레다 왕은 아라비아 사람으로 헤롯 안디바의 양자이다. 다메섹 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울을 잡으려고 성을 지켰는데 바울이 그것을 알고 광주리를 타고 창문 밖으로 탈출했다. 이것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스스로 이것을 밝힌다. 자신은 이렇게 약하고 자랑할 것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복음과 십자가만 자랑하는 모습으로 살았다.

바울의 이런 자랑이 귀하고 놀라운 일이다. 우리도 늘 예수님을 자랑하는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입을 열면 주님만 자랑해야 하겠다. 언제나 주님만 높이고 주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 낮아져서 멸시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겠다. 이것도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이것이 참 사도요 성도의 길이다. 바울은 본받아 믿음을 잘 지키면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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