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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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2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2장 1-4절/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강우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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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7-12 21:32 조회194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mJBeinnhF6g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본문은 앞선 1장과 연결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을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할 것(1)

2. 복음을 등한히 여기지 말 것(2-4)

 

1. 복음을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할 것(1)

 

그러므로

앞선 1장에서는 비교가 나타납니다. 누구와 누구를 비교했죠? ‘천사예수 그리스도’. 이를 통해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므로를 풀어 쓰면,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우월하시므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들은 것은 복음을 가리킵니다. 구원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경은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주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그리스도의 말씀”(3:16), “생명의 말씀”(2:16), “화해의 말씀”(고후 5:19)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 신자는 이미 복음, 구원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들은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더욱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유념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욱 유념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히브리서 독자, 청중들이 흘러 떠내려갈 만한 어떤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예를 들어, 영적 침체에 빠졌다든지, 복음을 경시한다든지, 배교의 길을 걷는다든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다든지...

 

마땅하니라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여러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히브리서 첫머리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선언했습니다.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따라서 말씀을 잘 듣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도마 이야기가 나옵니다.

 

20:25-29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 우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 주님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뜻을 모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만유의 주로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보고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 역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열매 맺을 때도, 버림 당할 때도 기준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시류에 휩쓸려 가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주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 가버리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복음을 듣고도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들을 때 자신을 그 말씀에 화합시켜야 합니다.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도록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해산의 수고,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말씀을 새김질하여 그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고 열매를 맺도록 힘을 써야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도가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내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병규 목사님은 다섯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삼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을 따르지(착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넷째, 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성령의 감동을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가 조심하면서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늘 말씀을 따르고 구원을 귀히 여기며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십시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이 마땅합니다.

 

2. 복음을 등한히 여기지 말 것(2-4)

 

1) 천사들로 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도 벌을 받음(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

말씀11절의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율법입니다.

 

견고하게 되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이루어졌음을 뜻합니다. 신적 권위로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고 율법을 범하다가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고 일깨웁니다. 보응의 기준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누구에게나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말씀을 굳건히 붙잡고 약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옛적에 공정한 보응을 받았음을 먼저 확실히 하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뒤따르는 내용에 더욱 무게를 싣기 위해서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 더욱, 더더욱 명명백백하다는 것을 논증하려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등한히 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3)

 

큰 구원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을 통해 구원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을 왜 큰 구원이라고 했는가를 살펴보면,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주어졌지만, 복음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3:20)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였으나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두려워하는 종을 낳게 하지만 복음은 양자를 삼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기 때문입니다(8:15).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보응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의 권면을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살과 피를 (십자가에서)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같이 친히 말씀해 주시고, 살과 피를 직접 주셨으니 복음이 얼마나 더 위대합니까! 그런데 이같이 큰 복음을 등한히 여긴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들은 자들, 즉 사도들이 성령으로 인하여 확증하여 주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 내용을 성경책에 기록해 주었습니다. 큰 구원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기면 더 큰 심판을 하나님께 받게 될 것임이 자명합니다.

 

3) 하나님께서 증언하심(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

복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큰 구원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증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의 역사로 증거해 주셨습니다.

 

표적 중에 제일 큰 표적은 요나의 표적입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보여줍니다(16:1-4).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에게 사죄와 영생을 주셨으니 이것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을까요!

또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놀라운 행적으로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물 위로 걸으셨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파를 잔잔하게 하시고,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불러 주시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회개하게 하신 일 등 여러 가지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왜 이런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셨을까요? 구원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과 상관없이 표적과 기사만 목적이 된다면 표적이 가진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복음적 큰 구원을 친히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증거는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결과입니다.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성령을 통해 능력과 은혜를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구원은 100%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요?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구원에 우리의 공로는 단 1% 지분도 없으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는 거듭남의 은혜를 깨닫고 기뻐하며, 복을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하나님의 보응, 심판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도에게 고난이 있습니다. 때론 시험도 닥쳐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리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뭘까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받은 구원, 믿음의 확신을 상기시킵니다.

말씀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책임이 먼저 나 자신에게 잊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로도 우리의 시선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흔들리는 성도가 있다면, 멀어지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먼저 붙들어주고 확신의 자리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이 답입니다. 구원의 복음이 해결책입니다. 복음을 등한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보응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복음을 흘러 떠내려 보내지 않고, 복음을 등한히 여기지 않는, 믿음 위에 더욱 굳게, 견고히 서 나가는 우리 복용교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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