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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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2장 5-10절/낮아지심과 높아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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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7-19 21:30 조회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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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hvANCbyJ3Kc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1. 낮아지심(5-7상)

2. 높아지심(7하-10) 


히브리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너무나 위대하시고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 특별히 히브리서를 통해 주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조금씩 깨달아갔으면 좋겠다. 


5절

"장차 올 세상"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살게되는 구원과 은혜의 세계이다. 예수님 재림으로 완성되어서 예수님이 왕노릇하실 세계를 가리키는데 은혜와 영광이 충만한 세계이다. 마귀는 잡아서 옥에 가두고 성도들은 왕노릇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은혜롭고 복된 세계를 가리키는데, 그 세계를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은혜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되시고 다스리시는 세계이다. 

천사는 왕과 같은 권한은 없다. 성도들도 천사를 섬길 이육아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만 경배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구원의 세계, 은혜의 세계는 천사들에게 맡기시지 않으셨다. 주님이 다스리시고 주님이 왕이 되셔서 은혜의 세계를 통치하신다. 주님이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시고 위대하신 분이시다. 


6절

유대인들의 표현법으로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라고 했는데, 시편 8편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 더구나 범죄하고 타락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죄 가운데 방황하며 끝없이 멸망 길을 가고 있는 불행한 인생들이다. 그런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구원하시는지, 은혜와 사랑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는지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 제가 뭔대, 저 같은 것을 생각해주십니까? 저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까? 저를 살리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까?' 아무리 이해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일이다. 

시편 8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려야 하겠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고 놀라운 구원의 기쁨을 주시는가! 

저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작은 공처럼 보인다. 이 지구 안에 80억 인구가 우굴우굴 살고 있다. 넓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작은 지구 안에 80억 인구를 살게 하시고 그 가운데 나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인가? 관심 가지시고 생각하시고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다. 타락하여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인데 독생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주셨다. 이해되지 않을만큼 크고 놀라운 은혜이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신다. 우리가 무엇이길래 그러시는가? 내버려 두셔도 되고, 무관심하셔도 되는데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시면서 세밀하게 감찰하시고 돌보시는가? 놀라운 은혜이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 7:17~18)

욥의 감탄이며 찬송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크게 여기시고 시험과 연단을 하시면서 믿음을 키워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순전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애쓰시는지 놀랍다. 모든 것이 은혜이다. 은혜 아닌 것이 없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15~16)

손바닥에 쓰는 것은 중요한 것을 급할 때 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낙심할 때가 많다. 

성도의 입에서는 감사와 회개만 나와야 한다. 잘못한 것은 찾아서 회개하면 되고, 나머지 것은 감사할 것 밖에 없다.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고난을 주시고 시험하시고 징계하시는 것까지 다 감사할 일이다.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끼실 것이 뭐가 있겠나? 


7절

그리스도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권세를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주님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시공을 초월한다. 천사는 고난을 받지 않는다. 죄도 짓지 않는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이 자체가 주님에게는 큰 고난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신다. 영적인 세계에 자유롭게 계시다가 시공의 제약을 받으시니 얼마나 크고 힘든 일이겠는가? 육신을 입고 사시는 동안 여러가지 고난을 받으셨다. 멸시, 천대, 굶주림 등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것이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잠시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다.

왜 낮아지셨는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낮아지신 예수님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승천하셨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신령한 자리에 올라가게 하시고 왕의 자리에 앉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는 영광이 주어졌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6~11)

주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자기를 비우셨다. 스스로 낮아지셨다. 그리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창조주가 피조물, 인간이 된 것이다. 가장 높으신 거룩한 분이 낮고 천한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 사람이 구더기가 된 것보다 더 낮아진 일이다. 주님이 그렇게 낮아지셨다. 사람의 몸을 입고 살면서 낮추시고 복종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주님이 이렇게 낮아지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높여 영광 얻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낮아지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셨다. 부활하게 하시고 승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예수님 앞에 하늘과 땅의 모든 자들을 무릎 꿇게 하시고 주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낮아져서 고난 받으시고 멸시 천대 받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셨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주님이 가신 것처럼 낮아지기를 힘써야 한다. 낮아져서 섬기고 죽기까지 복종해야 한다. 그러면 이후에 높여주실 것이다. 주님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고 왕노릇을 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 왕되는 것은 세상에서 왕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 나라에서 왕되는 것은 낮아져서 섬기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사셨다. 그리고 높아지셨다. 우리도 주님 발자취를 따라 살아야 하겠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위해 고난 받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성도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주님 가신 그 길을 가야 한다. 고난의 길, 낮아져서 섬기는 길로 가야 한다. 


8절

낮아지고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주시고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하게 하셨다. 주님을 만물 위에 가장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왕권을 주셨다. 예수님이 만물의 머리가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높여주시고 존귀하게 해주신 것을 말씀하셨다.

아무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일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높여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복종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완전하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만물을 이용하고 종 삼아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마귀를 가두시고 천년동안 왕노릇하실 때 모든 만물이 주님께 복종한다. 주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은혜의 때가 된다. 지금은 만물이 복종하지 않고 있다. 그 증거가 만물이 죄 짓는데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그렇다. 그리고 우상숭배하는데 이용당하는 것이 많다. 만물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은 자기가 그렇게 쓰임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1)

모든 만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악한 일에 이용당하면서 탄식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와서 자기들을 말씀으로 잘 다스리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에 쓰임받기를 고대하고 있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왕노릇하실 때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 15:27~28)

주님 재림하실 때 모든 만물이 통일된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만물에게 전해져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게 된다. 지금은 그런 상태가 다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만 모시고 왕으로 섬기고 모든 만물은 발 아래 두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물질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섬기면 우상숭배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을 발 아래 놓고 무시하고 있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에 모시고 순종하고 만물은 지배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완전하게 그런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9절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잠시동안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뭔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인류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모든 택한 백성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실제적으로 죽음을 경험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죽음을 당하시므로 죽음의 맛을 보셨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셨다. 주님은 이처럼 택한 백성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맛보셨다. 죽음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것인지 몸소 체험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죽음 가운데 건지시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10절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마암은 이"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생겼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셨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영광에 들어가도록 예정하셨는데,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구원의 창시자"는 그리스도이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와 생명을 주셨다. 그 예수님이 구원의 창시자이신데, 택한 백성을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

우리도 주님이 가신 발자취를 닮고 따라가야 한다. 고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고난을 통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야 한다. 죄를 벗어버리고 정금 같은 믿음을 만들고 주님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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